운문이 산문보다 살갑다. 

산문은 글의 이어짐으로 제 몸을 바로세우지만
운문은 문장의 맛으로 제 살갗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시는 구술로 전해져 내려온 탓에 
말하나하나 더해진 운율이 화자를 흥분시키고
겉치레 가득한 말이 설 때가 없어 
문장하나 씹어 삼켜도 온전한 글이 된다. 

말로 맺혀진 마음 글로 풀어낼 적에
내 피안에 단군이 
내 몸안에 토끼와 거북이가 어우러 지는데

미당이 짊어지고 소월이 읊조렸던 세상이  
내 잗다란 언어에도 수줍게 녹아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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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 하루키가 배두나에게 묻는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좋아하나요? 내가 그이에게 묻는다. 


봄은 쇼팽에게 영감을 주고선 젊음을 앗아갔다. 


다가올 봄을 견디는 힘은 흩어진 옷매무새와 추억서린 마음 한켠. 


가지런하지 못한 부름이 애써 짓누른 울음을 밀어낸다. 내일은 오늘보다 덜 봄날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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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다가 그이가 고팠다. 

밥솥은 비었고 나가긴 싫었다. 


전화를 하고선 그이가 받길 기다린다. 

빨래를 하다가 그이를 불렀다. 

젖은 빨래는 가을이 될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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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 던졌다. 아이는 울었고 친구는 웃었다. 돌 두개 던졌다. 아이는 울었고 친구들은 웃었다. 


돌이 쌓여갈 때마다

아이는 사라지고 비웃음만 남았다. 


마음 한곳 둘 곳 없어 돌무덤만 쌓여갈 적에

어른이 된 아이는 그때처럼 운다. 엄마도.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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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녘 거기 있소

그대 거기 있소


미루지 못해 던진 말로

미욱한 나를 돌봐주소

웅크린 몸이 가여워

손하나 내밀적엔


벽에 걸린 저 그림하나

심상하게 살펴주소


밤이 여물지 못해 닿지 못한 말들이


이적지 기억해준 

마음이 마음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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