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이 중앙일보와 인터뷰 했다. 그는 할말이 많은 듯했다. 기자는 그의 넘침을 다독여 하나의 기사로 뽑아냈으나 썩 와닿지 않았다. 글쟁이가 한 말이 그의 글처럼 명쾌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김훈의 '다름'을 기대했던 내 높은 기대 탓일까.
김훈은 기자출신이다. 한국일보 공채다.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기자시절 그녘이 얼마나 담담한 마음으로 취재에 임했는지 드러난다. 특히 김지하가 감옥에서 나오는 날, 먼발치서 사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박경리에 관한 이야기는 진솔하지만 덤덤하다. 차갑지는 않지만 회색의 느낌이다. 남한산성의 비참함을 내려다보던 전지적 작가, 김훈의 아우라 그대로다. 제 감정은 있지만 그저 형용할뿐이고 제 생각은 있지만 말 그대로 사견일 뿐이다.
김훈과 박민규의 책을 구입하고 내 회원등급을 보니 일반회원으로 떨어져 있었다. 김수영마냥 사소한 것에 곧잘 분노하는 나는 항의 메일을 날리고 회신을 기다린다. 2009년 서재의 달인으로 선정되었기에 나는 플래티늄 회원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기한이 아마 올해 까지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 잘못됐다면 내 불찰이니 괜시리 바쁜 직원하나에게 일 하나를 덤으로 준게 된다.
내일은 주말이니 김훈과 박민규의 책을 읽어야 겠다. 책을 읽는 이에게 아름다움을 느낀적이 적잖이 있었느나 스스로가 근자에 책을 멀리하다 보니 책읽는 이를 한량이라 폄하하고 스스로의 근천스러움을 추어 올리곤 했다. 과거를 지우면 현재가 아름다워 지는게 아닌데도 나는 그런 미욱함을 드러내고선 자신을 변호하곤 한다. 불현듯 김훈 관련 기사에서 이 말 하나가 생각한다.
'서사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를 스타일리스트라고 하는 것은 나에 대한 비판과 바투 이어져 있다'
매일경제 기사와 중앙일보 기사를 같이 읽어 그 둘에서 읊조렸던 말이 혼용돼 있음을 이해하라.
그렇다. 그는 겉멋들고 세상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시지프스다. 시지프스에게 서사란 무엇이 중요한가. 그저 돌을 어떻게 지고 올라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서사란 그렇게 돌덩이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는 것마냥 특별한게 없다. 특별한 건 오직 책을 보고 있는 나와 내 어깨 위에 놓인 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