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골짜기
임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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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철우는 신간을 챙겨보는 몇 안되는 작가이다. 임철우를 왜 좋아하게 됐을까? 한 비평가가 그를 두고 '순한 마음'을 지닌 작가라 말했는데, 난 그 표현이 참 좋았다. 난 아직 순함과 착함을 사람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 생각한다. 임철우를 아끼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가 내가 자란 곳을 집요한 문제 의식을 지니고 그려왔기 때문이다.  

  임철우가 1985년에 펴낸 소설집 <그리운 남쪽>에는 <사산(死産)하는 여름>이란 단편이 있다. 소설은 80년 광주를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을 처음 대했을 때 낯이 간지러웠다. 소설의 공간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소설속엔 향민의원과 돌고개가 나온다. 실제 광주의 돌고개 근처엔 양민의원이 있었다. 내가 알기론 광주에서 돌고개란 고유명사-일반명사로서의 돌고개야 숱하겠지만-를 쓰는 곳은 내가 지냈던 곳이 유일하지 않은가 한다. 돌고개를 넘기 바로 전 양민의원이 있다. 

    오월 광주를 문학적 고향으로 삼은 임철우는 1998년 <봄날>을 완성하곤 갈 길을 못 찾는 듯 했다. 전에 냈던 자전적 소설(<등대 아래서 휘파람>, 1993, <등대>, 2002)을 손 보기도 하고, 현대사를 갈무리하는 소설(<백년여관>, 2004)을 내기도 했다. <묘약-황천읍 이야기3>(<문학동네>, 2008년 봄호)에선 형식적 실험도 감행하는데, 난 '잘 하고 있나?'하는 일종의 걱정을 했다.   

  <이별하는 골짜기>를 읽으며 그 동안의 걱정이 기우임을 알았다. 비평가 신형철의 말대로 '이 작가는 변하지 않는다.'('신형철의 문학사용법', <이별하는 골짜기> 서평) 임철우를 처음 알던 그 시절과 지금의 내가 같지 않아서일까? 난 아마 그에게 '이제 그만'이란 말을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허나 그의 선한 마음자리가 어디 가겠는가? 그것이 오월이든, 한국전쟁이든,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따스하다.  

  KTX 같은 자본과 시선의 맹렬한 속도 앞에 이젠 자신의 상처입은 몸과 마음을 말하기조차 겁이나고 미안해지는 시대에 임철우는 그들의 이야기를 마음 아프게 듣고, 대신 말을 꺼낸다. <이별하는 골짜기> 속에 그려진 인물 누구 하나 미움이 가지 않는다. 심지어 위안부 여인들로 돈을 벌던 악마 같은 조선인 출신 남정네들도 그들이 개처럼 처참히 죽어갔음을 목격할 땐 그들이 불쌍했다.  이별을 겪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을까? 삶과의 이별이 죽음일진대, 이별 없는 삶은 있을 수 없을테다. 어떤 삶이든, 이별 앞에선 마음이 아파온다.

  임철우를 처음 알던 시절의 나를 만나고파 <사산하는 여름>을 다시 꺼내본다. 소설은 오월 이후 사람들이 역한 악취를 맡고 있다고 말한다. “그(김씨)는 손바닥으로 둥지를 틀어 물을 받는다. 그리고는 코를 들이대고 흠흠 물냄새를 맡아본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비릿하고 역겨운 악취. 김씨는 가벼운 구토증을 느낀다.” 김씨는 거짓 냄새를 맡고 있다. 김씨 뿐만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나지도 않은 냄새를 진짜인양 맡고 있다.    

  그 냄새의 정체는 무얼까? 데리다는 로고스 중심주의가 폭력의 시대를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 폭력은 이념을 위해 기능한다. 상습화된 폭력에 병든 이들은 이성의 정점에 광기가 도사리고 있음을 감각적으로 깨닫는다. 감각적이다. 감각이 아니고선 깨닫지 못한다. 광서형의 절규이다. “내 손, 내 뼈, 내 옆구리, 내 어깨, 내 손톱, 내 콧구멍, 내 입, 내 혀 ․․․․․․ 하느님이 주신 내 유일한 확신인 나의 육신 ․․․․․․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이성이 육체를 지배했을 때 우리에게 돌아온 건 광기에 젖은 폭력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감각을 되살려야 한다. 감각으로 부딪쳐야 한다.  이 도시의 시민들이 나지 않는 냄새, 들리지 않는 소리(광서형, “소리. 목소리.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어.”)를 듣고 있다는 것은 감각적 차원에서 진실을 향한 이들의 힘이 모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이별하는 골짜기>에서도 상처입은 이들의 이야기가 모아지고 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 자살한 탈영병의 아들, 인생의 저주 앞에 고통하는 외로운 여인, 이들 역시 외친다. "나는 물건이 아니에요. 사람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임철우(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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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의 땅>이후로 아주 하얗게 잊어버리고 있었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7:4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소설집은 김현의 호평 덕분에 많은 이들에게 임철우를 알리기도 했죠. 개인적으론 80년대 임철우가 내놓았던 문제작들은 김현이 껴안긴 버거운 감도 있었을듯 해요. 소재만 놓고 보자면요. 스타일면에서야 김현이 임철우를 아꼈지만요.
<이별하는 골짜기> 좋은 소설입니다. 임철우의 존재에 다시 감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루쉰P 2010-11-02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 소설에 대해서는 뭐랄까 선입관이 깊어서요. 뭐랄까 읽으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곤 해요. 그러다 보니 손도 안 가는 것이 사실이구요. 좀 이상한 취향이긴 한데. 조정래 작가 빼고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안 읽어요. 고전 작가의 작품들은 열심히 읽거든요. 현대 일본 소설이나 한국 소설이나 너무 가볍다는 생각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매국노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ㅋ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1:24   좋아요 0 | URL
'너무 가벼운' 소설도 있을테죠. 하지만 조정래만이 진중한 소설을 쓰는 건 아니니까요. 기회가 되면 다른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 보세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를테지만 가치 있는 소설을 써내는 작가들이 꽤 있답니다. 임철우는 제게 그런 사람이구요.

다이조부 2010-11-0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간을 챙겨보는 또 다른 작가가 궁금해지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3:26   좋아요 0 | URL
한국작가로는 최인석, 정찬, 전성태의 소설을 챙겨 봅니다.
최인석의 신작이 출간돼서 읽어보려 합니다.
혹시 '앞으로 10년을 책임질 작가' 설문에 응하셨어요? 누구라고 하셨을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0-11-02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코너에 글 쓴 사람중에 이름이 익숙한 사람은 주인장 밖에 없더군요.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 천명관 이라고 적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2 18:15   좋아요 0 | URL
천명관은 데뷔할 때 이름을 기억해 두었던 작가인데 여태 소설을 접해보지 못했네요.
얼마전에 이 작가의 소설에 대해 서평 남기셨죠?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다이조부 2010-11-0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명관은 데뷔할때 정말 핫하게 데뷔했죠~

근데 저도 읽어본 소설이 달랑 한 권인데.

차근차근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을 읽어볼 계획입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3 20:52   좋아요 0 | URL
<고령화 가족>을 읽어보셨죠? 이게 최근작인가 보군요.
관심작가로 염두에 두고 있겠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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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이 아니면 언제?(Se non ora quando?)>는 번역된 프리모 레비의 책 가운데 유일한 소설이다. 한 블로거와 얘기도 나눴지만 레비의 소설은 수기에 비할 때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그것은 소설이란 갈래 자체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레비가 지닌 소설을 다루는 힘이 약한 탓이기도 할테다. 허구라는 장치를 만들어 말을 건네기엔 작가 안에 담긴 슬픔과 괴롬이 너무나 많고, 그에게 남겨진 시간도 짧다. 그의 소설 두어 편이 번역중에 있다니 만나 보면 생각이 좀 더 정리될 듯 하다.  

  소설엔 파시즘과 싸웠던 유대인 빨치산 부대가 나온다. 실제 레비는 이탈리아 빨치산 부대에서 활동한다. 소설의 내용은 레비의 경험과 지인으로부터 전해 들은 빨치산 부대의 이야기를 섞어 놓은 것이다. 레비는 소설의 내용과는 달리 빨치산 활동 중 나치에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진다. 소설의 결말은 어찌됐든 무난히 맺어진다. 부대원들은 전쟁이 끝나 이탈리아로 향한다. 빨치산 활동 중 아이를 가진 부대원 이시도르와 로켈레인데,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낳는다. 끝부분에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소식이 전해지며 비극적 색채가 더해지긴 한다.  

  레비의 책들을 읽어가며 그가 지녔던 인간관이 궁금해진다. 전장과 수용소는 인간의 적나라함을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대머리는 수용소에 갇혔던 유대인 포로인데, 100여 명의 유대인을 창고에 몰아넣고 석유를 뿌려 불태워 죽였다.  

   
  "지포라이터를 다시 대머리에게 건넸다. 대머리가 혹시 자기 손에 석유가 묻어 불이 옮아붙을까봐 옷자락에 손을 몇 번씩이나 싹싹 문지르며 닦았다. '탕! 탕!' 이 때 갑자기 귀를 찢는 두 발의 총소리가 나더니 대머리가 라이터를 떨어뜨리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 그녀는 수많은 동료유대인들이 갇힌 창고에 불 지른 대머리가 자기 몸에 불이 옮을 걸 두려워해 기름 묻은 손을 자꾸 닦고 닦는 모습이 너무나 역겨워 방아쇠를 당겨버린 것이다."(319-320면)
 
   

 동료 포로들을 불태워 죽인 이가 자신의 몸에 불이 조금이라도 붙을까봐 안절부절하고 있다. 그 모습이 역겨운 빨치산 대원이 그를 사살한다. <휴전(La tregua)>에 등장하는 모르도 나훔의 말처럼 '인간을 잡아먹는 늑대는 바로 인간이다.' 이번엔 점잖은 늑대이다. <이것이 인간인가(Se Questo e' un Uomo)>의 한 장면이다.   

   
  그 때 나는 3층에 있는 내 침대에서 쿤 노인이 머리에 모자를 쓰고 상체를 거칠게 흔들며 큰 소리로 기도하는 모습을 본다. 그 소리를 듣는다. 쿤은 자신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신께 감사하고 있다. 그 어떤 위로의 기도로도, 그 어떤 용서로도, 죄인들의 그 어떤 속죄로도, 간단히 말해 인간의 능력안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절대 씻을 수 없는 혐오스러운 일이 오늘 벌어졌다는 것을 쿤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신이라면 쿤의 기도를 땅에 내동댕이 쳤을 것이다.('1944년 10월', 198-199면)  
   

   자신이 살아남았음에 감사 기도를 드리는 쿤 노인이다. 동료를 죽이는 데 가담한 앞의 대머리보다 쿤 노인은 도덕적인가? 레비가 쿤의 기도를 신이 내동댕이 칠 것이라고 말하는 건 그렇지 않다는 뜻일 게다. 내동댕이 쳐질 것은 쿤의 기도만이 아닐 것이다. 지옥을 경험한 레비는 칸트의 이 같은 말도 내동댕이 칠 것이다.    

   
  악덕은 오직 도덕적 악덕으로부터만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근원적인 소질은 선의 소질인 것이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악덕의 최초 발생 근거로서 파악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마누엘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칸트에 따르면 도덕적 악덕이란 생각조차 불가능한데, 그 악덕은 순수 의지가 자신이 지닌 자유를 아무런 동기 없이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의 자유를 포기한 자들과 숱하게 만난 레비에게 "당신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는 칸트의 정언명령은 행복한 헛소리일 수 밖에 없다.   

  그럼 왜 숱한 사람들이 의지의 자유를 포기한 것일까? 철학자 김영민은 <동무론>에서 하이데거를 들어 한 가지 실마리를 보여주고 있다.   

   
  야스퍼스가 히틀러를 교양 없는 인간으로 비난했을 때, 하이데거는 교양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면서 히틀러의 그지없이 우아한 손을 그 변명으로 내세운다.('회의와 신뢰의 사이')  
   

   히틀러의 '우아한 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 우아한 손은 부하 아이히만에게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잡아가 절멸하라 명령한 손이기도 하다. 왜 그토록 위대한 철학자 하이데거에겐 그 손이 우아하게만 보였을까? 아니, 독일 국민 90%가 히틀러의 광기를 우아하고 위대하다 여겼을까?  

  프리모 레비가 빨치산과 수용소 생활 중 마주친 유대인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언제고 광기의 노예가 될 수 있는 자들이다. 소설에서 빨치산 대원 모텔이 유대인이 죽어간 수용소 담벼락에 'VNTNV'이란 단어를 적는다. 복수를 뜻하는 히브리어이다. 광기에 휩싸여 애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유대인을 보자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레비의 전언을 슬프게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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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0-10-29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이라는 이해 할 수는 거대한 존재에 레비는 계속 물음표를 간직한 듯 보입니다. 이 소설에서 파고세운닥님의 서평에서 지적해 주신 대로 자신의 손에 불이 붙을까봐 움츠리는 독일 병사 모습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타인은 몇 백명이든 죽이면서 죄책감을 못 느끼는 인간이 자신이 죽을까봐 움추려 드는 모습. 레비는 그런 인간의 불균형에 계속적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님의 서평을 읽으며 그냥 스캔하듯 읽는 자신을 반성합니다. 써 주신 서평의 글들에서 제가 놓치고 읽은 부분들이 많이 보이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레비가 왜 죽었을까?라는 의문은 참 많은 답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여튼 레비의 이번 소설은 읽기가 힘들었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9 19:16   좋아요 0 | URL
조금 정정할 게 불을 지르는 이가 독일 병사가 아니라 유대인이에요. 함께 수감된 동료 유대인을 태워 죽이는 거죠. 빨치산 대원들 역시 유대인이라 그 분노가 더했을 거구요.
레비를 좋아하려면 그의 소설에도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다이조부 2010-10-30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모 레비와 관련된 글을 접하면 연동으로 서경식 선생이 생각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0-30 09:10   좋아요 0 | URL
두 사람의 인생과 글이 닮았다는 생각을 더러 합니다. 서경식 선생이 레비를 좋아하다 보니 닮아가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생의 마지막은 달라야 할텐데요......

다이조부 2010-11-01 0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10년후의 문학판을 책임질 작가에 전성태씨를 꼽았네요.

음 그 사람의 작품을 읽어본게 없는데 찾아봐야겠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1:21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근데 소설을 많이 안 써서 애가 타요. 많이 읽고 싶은데 말이죠^^
비평가들 사이에선 꽤 좋은 평가를 받는 걸로 아는데, 독자가 그리 많지는 않는 듯 해요.
읽어보시고 얘기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0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성이 게으른데, 주인장 덕분에 읽을책이 산더미 처럼 쌓이기만 하네요.

십분의 일도 소화하지 못하지만 말이죠 ㅎㅎㅎ

천정배 블로그 모임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어요. 모임 자체 보다도 비슷한 연배 사람끼리

나가서 따로 한 잔 했던게 더 즐거웠지만~ ^^

파고세운닥나무님은 술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할걸 같아요~ 맥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데

말이죠. 같이 녹색평론 독자모임에 나가보는건 어떨까요? ㅎㅎ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1 13:2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술을 안 하는 사람이라서요.
안 먹으려 마음 먹으니, 그거 지키는 게 또 그리 어렵진 않네요.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만......

2010-11-01 1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1 1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0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계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
시마자키 도손 지음, 노영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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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破戒)>는 걸작이다. 1906년 작품이니 1887년 첫 근대소설이라는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 구름(浮雲)>이 발표된 지 20년이 지나서였다. 그 20년 사이에 누가 있었나? 소설엔 모리 오가이와 다야마 가타이가 있었다. 모리 오가이는 나쓰메 소세키와 더불어 근대문학의 문호로 추앙받는 작가이다. 낭만주의 계열의 소설을 주로 썼는데, <무희(舞姬)>와 <청년(靑年)>이 대표작이다. 다야마 가타이는 자연주의 문학을 주창한 작가이다. <이불(蒲團)>이 대표작이다. <이불>이란 소설은 꽤 문제적인데,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이 무렵의 일문학사를 이렇게 정리한다.    

   
  메이지 20년대 초에 씌어진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 구름> 쪽이 훨씬 나중에 씌어진 소설보다 더 서양적인 의미의 소설을 실현했으며, 그 후에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가 그것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야마 가타이의 <이불>에 의해 방향이 비틀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대충 이상이 문학사의 상식이다.('고백이라는 제도')  
   

  가라타니가 말하는 '비틀어짐'은 일본근대소설의 주류인 사소설의 효시가 바로 <이불>이라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불> 이후 사소설은 일본 천하를 제패하고, 지금까지 일본 소설의 주류가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파계>의 존재는 기이하다.  

  소설의 대종은 이렇다. 교사 세가와 우시마쓰는 백정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백정임을 절대 밝히지 말라는 계율을 남긴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우시마쓰가 백정 출신임이 밝혀지고,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소설의 제목은 계율을 깨뜨렸다는 의미에서 '파계'이다.  

  신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이 이 시대에 나올 수 있음은 대단한 것이다. 20년 후에야 계급주의 소설인 <게공선(蟹工船)>(고바야시 다키지)과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미야모토 유리코)가 나오니 말이다. 해서 나프문학(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 쪽에선 <파계>를 사회소설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럼, 이 소설은 완벽한가? 내 개인적인 생각인데, 두 가지 정도 흠을 잡겠다.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우시마쓰는 어디로 향할까? 자신의 사상적 은사인 렌타로의 유골을 들고 도쿄로 향하는 우시마쓰인데, 이후 그는 오히나타를 따라 미국 텍사스로 향한다. 신분에 따른 박해가 없는 미국으로 향한다는데, 이 모습은 낯이 익다. 이광수가 <무정(無情)>의 끝을 이형식의 시카고행으로 맺고 있기 때문이다. '선지자도 고향에선 핍박받는다'던데, 계몽적 지식인의 도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또 하나는 이런 대목이다.   

   
  우시마쓰의 아버지는 말한다. "집안의 조상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도 그때였다. 도카이도 연안에 사는 많은 백정 종족처럼,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또는 이름도 모르는 섬에 표착하여 귀화한 이방인의 후예와는 달리 ....... 가난하기는 해도 죄악으로 더럽혀진 가족은 아니라고 했다."(16면)  
   

   재일 조선인을 '죄악으로 더렵혀'졌다고 말하는 작가이다. 작가가 백정 신분에게 동정심을 쏟듯 같은 처지의 재일 조선인에게도 관심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한다. 일본 사회에서 신분의 문제가 이제는 많은 부분 해결되었지만, 재일 조선인 문제는 여전히 무관심 속에 있음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작가 개인을 놓고 보더라도 아쉬움은 남는다. <파계>에서 가졌던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더이상 유지하지 못하는데, 특히 <집(家)>(1911)을 보면 그렇다. 자연주의 문학이 더 이상 사회에 대한 관심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어 사소설로 귀결되는데 작가 역시 적은 몫이나마 하게 된다.

 

              島崎藤村(1872-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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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0-29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근대문학 계보가 한눈에 보이는 군요. 소세키를 읽으면서 <청년> <이불>등을 찜해두었는데 아직 근처에도 못가보고 있어요. 차츰 리뷰의 내용이 길어져서 제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9 10:52   좋아요 0 | URL
대학 때 아주 오래된 번역으로 봤던 소설인데, 새 번역으로 읽어봤어요. 옛 번역은 세로판이었는데요. 리뷰 적어보며 대학 때 들었던 일본근대문학사 수업도 떠올리며 문학사 책도 좀 찾아보구요. 제게도 도움이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청년>과 <이불>은 번역이 되어 있죠. 특히 <이불>은 사소설을 알아가는 데 지침이 되는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론 후대 소설가들이 이 소설을 오독하지 않았나 싶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부분만 쏙 가져간 듯도 하구요.
언제고 읽어보시면 얘기 나눴으면 합니다^^

루쉰P 2010-10-29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읽으며 사실 파고세운닥나무님께서 언급한 부분은 주의 깊게 읽지를 못 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자신의 신분에 괴로워 하며 몸부림치는 묘사가 너무나도 신랄하여 거기에 흠뻑 빠져서 읽었습니다. 저는 주로 독서가 감정 몰입적인 경험이 있어 저런 부분들에 대해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기사 <파계>의 결론이 사실은 자신의 은사처럼 사회를 향해 외치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피해서 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 좀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나쓰메 소세키 역시 신문 기자로서 조선도 여행을 한 사람 이었지만 일본의 조선 침략에 문제에 대해서는 죽는 날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일본 근대 문학가들의 한계는 거기인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지를 못한다는 점 말이죠. 근데 한국의 작가도 비슷하지는 않을까 고민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9 18:03   좋아요 0 | URL
지금에 와서야 현실도피라 쉽게 비판할 수 있지만 당시엔 신분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용기가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용기만으로도 <파계>는 걸작이라는 말을 붙여도 아깝지 않은 소설입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스타일이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따지기를 좋아해 저렇게 적어 본 거구요.
일전에 <요코 이야기>라는 소설 때문에 꽤 시끄러운 적이 있었죠. 한편으로 부끄러웠던 게 한국 문학도 일본인을 비하하는 데 만만치 않은 노력을 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본인이 가해자는 아닐 뿐더러, 작품을 대하는 한국인들이 필요 이상의 반일 감정을 갖는 것도 경계해야 하니까요.

다이조부 2010-10-30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은 기존의 전집류와는 전적으로 다른 기준으로 책을 선정하나봐요?

주는 거 없이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이지만 참 이 출판사는 얄미울 정도로 장사를 잘한단

말이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0-30 09:17   좋아요 0 | URL
전집 편집자 가운데 일문학자인 박유하 교수가 있는데, 이 분이 일본 소설을 전집에 많이 넣는듯 해요. 여타의 세계문학전집보단 일본문학이 많죠. 중문학이 전혀 없어 아쉽지만요.
그거 제외하곤 크게 다르지는 않은듯 해요. 늘 번역되는 작품 다시 하고 말이죠. 타 출판사에서 번역된 작품들 다시 살리기도 하고 말이죠. <킴>처럼 안 넣어도 되는 소설을 넣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론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를 좋아합니다.

소나무 2021-04-09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년이 지났지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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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10-10-27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죽음> 서평 예약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7 20:26   좋아요 0 | URL
여우님 덕분에 서평 예약을 다 받아봅니다^^
반드시 새달엔 읽어야 되겠네요!
읽어보곤 상흔문학과 반사문학도 한번 정리해봐야겠어요.

반딧불이 2010-10-2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의 죽음>서평 예약 2.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8 00:5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이 기회에 전공인 중국현대문학을 홍보해야겠네요.
 
울지마, 톤즈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리 살아간 한 남자가 있다. 48세 되던 해에 선종(善終)했다. 아프리카로 보내진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다. 내전으로 몸과 마음이 병든 수단에서 살았다. 의대를 졸업하지만 돌연 사제가 된다.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의과대학을 다닌다. 음악을 좋아해 악기 연주와 작곡을 즐겼다. 열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10남매 가운데 아홉째였다.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성자의 삶을 살게 했을까? 이태석 신부는 말한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 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는 우화를 빌어 말한다. "여러분이 이들 중 한 사람, 내 형제들 중 가장 작은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오."(<마태복음> 25장 40절) 이태석 신부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작은 한 사람'이 수단의 병들고, 헐벗으며, 감정이 메말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들이었다고 말한다. 이태석 신부 한 사람으로 인해 수단의 톤즈가 이젠 덜 아프고, 덜 배고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이태석 신부와 함께 사역했던 일흔 살의 외국인 수사가 질문을 던진다. "주님한테 물어보는 것은, 도대체 젊은 사람이고 그렇게 탈렌트(재능) 많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시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지금 70살인데 내가 갔으면 기쁘게 갔을 거예요." 노수사의 질문은 작년 이래로 나 역시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작년 여름, 이태석 신부와 비슷한 연배의 내 인생의 멘토를 세칭 '묻지마 살인'으로 잃은 후 나 역시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셔야만 했는지 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교롭게 두 분 모두 헌신적인 의사였다. 내가 죽는 날까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태석 신부를 보며 그 분을 떠올렸고 다큐의 한 대목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진실로 깨달았다.

 

                이태석 신부(1962-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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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0-10-2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저런 분들이 많이 계셔야 하는 것이 지금 한국 교회의 실정인데. 개인적으로는 무교회주의자인 우치무라 간조와 그에게 영향을 받은 함석헌 선생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하버드대의 하비 콕스 박사의 기독교 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요즘 그의 명작 '세속도시'가 출판됐다고 합니다. 제가 꼭 읽고 싶은 책 중 하나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7 11:34   좋아요 0 | URL
<세속도시>는 관심이 가는 책입니다.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우찌무라 간조는 책 두어권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근래는 그의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봐야하지 않나 생각도 해보구요. 함석헌은 연구와 고민이 많이 필요한 분이죠.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참 좋았습니다.

루쉰P 2010-10-27 14:09   좋아요 0 | URL
하비 콕스의 '예수, 하버드에 가다'도 읽었는데 하버드대 재임 당시 종교 분야를 맡은 콕스가 젊은 친구들에게 어떻게 종교를 그리고 예수를 알려갈 수 있을까 하고 고심하며 수업을 진행한 수업 결과물입니다. 이 수업의 특징은 기원의 시작때 쓰인 예수의 가르침이 지금 현대를 사는 젊은이와 우리에게 어떤 답을 내려줄 수 있는지에 대한 현대 청년들과 하비 콕스 교수의 연구서라고 할까요. 아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0-27 14: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그 책도 기억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