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살아간 한 남자가 있다. 48세 되던 해에 선종(善終)했다. 아프리카로 보내진 최초의 한국인 신부였다. 내전으로 몸과 마음이 병든 수단에서 살았다. 의대를 졸업하지만 돌연 사제가 된다.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의과대학을 다닌다. 음악을 좋아해 악기 연주와 작곡을 즐겼다. 열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 10남매 가운데 아홉째였다.
무엇이 이 남자로 하여금 성자의 삶을 살게 했을까? 이태석 신부는 말한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 곳까지 오게 한 것도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나환자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하게 됩니다." 예수는 우화를 빌어 말한다. "여러분이 이들 중 한 사람, 내 형제들 중 가장 작은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오."(<마태복음> 25장 40절) 이태석 신부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작은 한 사람'이 수단의 병들고, 헐벗으며, 감정이 메말라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이들이었다고 말한다. 이태석 신부 한 사람으로 인해 수단의 톤즈가 이젠 덜 아프고, 덜 배고프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큐멘터리에서 이태석 신부와 함께 사역했던 일흔 살의 외국인 수사가 질문을 던진다. "주님한테 물어보는 것은, 도대체 젊은 사람이고 그렇게 탈렌트(재능) 많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시는지 모르겠어요. 오히려 제가 지금 70살인데 내가 갔으면 기쁘게 갔을 거예요." 노수사의 질문은 작년 이래로 나 역시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작년 여름, 이태석 신부와 비슷한 연배의 내 인생의 멘토를 세칭 '묻지마 살인'으로 잃은 후 나 역시 왜 그렇게 일찍 데려가셔야만 했는지 아픈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교롭게 두 분 모두 헌신적인 의사였다. 내가 죽는 날까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이태석 신부를 보며 그 분을 떠올렸고 다큐의 한 대목처럼 사람이 사람에게 꽃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진실로 깨달았다.
이태석 신부(1962-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