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 -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
조현 지음 / 시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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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다. <한겨레> 종교전문기자인 조현은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예수의 삶에 감화받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다간 24인을 다룬다. 장기려, 권정생, 유일한 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들을 포함해 책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이 땅의 예수들을 다루고 있다.   

  개신교가 이 땅에 전해진 지 100년이 지났다. 한국 개신교의 공과를 논할 자격이 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며 '참된 종교란 무얼까?' 짧은 고민을 했다. 근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란 단체가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는 발표를 했다. 한 유명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회자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욕먹을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개신교가 왜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본래 한국 개신교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울림>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다.  

  1919년 3.1운동 때 조선의 기독교 신자는 인구 중 1.3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운동을 주도한 33인의 지도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이다. 온건하고도 온전한 의식을 지녔던 한국 기독교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만세운동 10년 전,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도 벽안의 천주교 신부들과 조선인 신자들은 그의 행동을 나무랐지만, 개신교 지도자들은 안중근의 행동을 옹호했다. 개신교의 현실 인식이 뒤틀어진 첫 사건은 일제 신사 참배일 것이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를 들어 신사 참배에 저항했다지만, 당시의 역사를 보면 개신교가 집단적으로 참배에 불복한 것은 고신파 뿐이다.  

  군부 독재 시절 개신교 지도자 역시 투쟁했다. 그러나 힘을 모두어야 할 때 개신교 특유의 배타성은 적을 눈 앞에 두고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한 일화이다. 법정 스님이 유신 철폐 운동에 나서자 그동안 군부 독재에 반대하던 한 목사가 스님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이리 말했다고 한다. "저 땡중놈과는 유신 철폐고 뭐고 같이 못한다." 이에 스님이 그를 찾아가는데, 자신이 정말 이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은데 목사님이 정말 싫어하시면 목사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는 승복을 벗고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목사의 옹졸함과 스님의 인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화이다.  

  얼마 전 고신파에 속한 한 목사님과 얘기를 나눴다. 고신파 목사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그 분이 어쩌면 법정 스님이 천국에 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중인데 무슨 소리냐며, 발끈하는 목사들을 두고 그 목사님은 우리보다 더 예수를 닮은 삶을 산 법정 스님이기에 어쩌면 천국에 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단다. 군인 출신 학살자 대통령을 두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소리 친 목사도 있지만, 그 민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한 목사도 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자랑스럽게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들먹이지만 그들의 행적을 보자면 초기 개신교 선구자들을 그들의 곁에 두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그 선구자들의 삶을 나는 알고 싶었다. <울림>은 그 선구자들의 평전이다.  

  내가 아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갱신의 종교이다. 성추행한 유명 목사와 관련해서도 나는 생각이 단순하다. 당신이 강대상에서 그리 가르치던 부활과 갱신을 스스로 행하면 될 것이다. 교인과 교회를 핑계 대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자신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김두식 교수를 비롯한 기독법률가회에서 목사 사임을 종용했다는데, 그 고언을 들어 사임한 건 선배 목사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도올 김용옥의 추천사가 <울림>의 앞 장에 있다. 그도 기독교의 갱신을 말하는 사람이니, 책과 함께 그의 생각도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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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1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ㅇㅖ전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피차 미루다가 반납했던 기억이 나네요.

리뷰만 보면 정말 좋은 책이네요 ^^

이 저자에게 관심이 생겨서 한동안 즐겨찾기도 했는데 말이죠.

세명의 장로 대통령이이 근데 ys mb 말고 또 누구죠?

와이에스가 대통령을 퇴임하고 헛소리를 자주 해서 실소를 자아내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현직대통령이랑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는것은 불쾌하지 않을까요? ^^

근데 전병욱목사는 사임했나 보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9:41   좋아요 0 | URL
이 책을 알고 계셨군요? 저는 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저자의 기사는 예전부터 보아왔지만요. 제겐 근래의 제 고민들이 저자의 글과 마주치는 좋은 시간을 가졌던 책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도 장로였죠. 장로라서 한기총에서 동상을 세운다는 걸까요? 차라리 그런 이유라면 좋겠어요. 기릴 만한 행적도 없는 이를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가며 세우려는 모습보다는 그게 더 나을 듯 해요.
전병욱 목사는 사임했습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를 계속 삼일교회에 있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삼일 교회는 신도가 3000명 정도 이미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목사의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운영되는 교회가 예수님이 바라는 교회는 아니겠죠. 저는 이번 사건이 목사가 잘못을 범한 후에 교회와 목사 자신이 어찌 행동해야 하는지 한 이정표를 세웠다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루쉰P 2010-11-17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우치무라 간조와 같은 사람이 한국에도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개신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예수를 상징으로 자신의 권력을 쟁취하는 사람들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혁명적 아나키스트로 받아들이고 있거든요.^^ 어떤 종교든 공통점은 정말 그 말씀대로 남을 거기에 규제하는 것이 아닌 행동을 자신을 규제하는 자! '번뇌의 격류를 극복하는 자'가 바로 진정한 종교가라 생각합니다.^^ 기독교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싶은데 서평 좀 많이 올려주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9:47   좋아요 0 | URL
교회를 다니지만 기독교 서적을 많이 보지 않아요. 간간히 보는데 서평을 적어보겠습니다.
위에서도 말씀 드렸지만, 기독교는 갱신의 종교죠. 우찌무라 간조도 청일전쟁 때 제국주의 성향의 글을 남기기도 했죠. 하지만 그는 이내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고, 기독교의 평화주의를 연구하고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합니다. 그게 우찌무라의 위대함이고,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모습인 듯 합니다.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런 면에서 매우 부족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기독교를 권력지향의 도구로 이용하는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부족한 모습이구요.

글샘 2010-11-17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격이 없는 나라에 국격을 논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에서는 예수를 팔아서 장사하는 셈인 곳이 많다 보니... 제대로 된 책 찾기도 어렵습니다. 이 책도 너무 단편적이지 않을지...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00:0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신문에 연재된 글을 묶은 책이니 형식부터 단편적이긴 합니다. 허나 저자인 조현 기자의 문제의식이 단편적이진 않은듯 해요. 저자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정리해 놓은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문제의식을 깊이 갖는 좋은 방법 같습니다. 저는 그리 하려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1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신파의 성서해석은 좋게 말해 엄격하고 나쁘게 말하면 편협하죠.뿌리는 같다 하지만 예장합동보다 더 보수적이랄까요...게다가 나름대로 자부심이 강해서 독선적인 느낌도 강하죠.미국남부 분위기가 난다 할까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23:16   좋아요 0 | URL
미국 남장로교가 한국 장로교의 뿌리니까요. 고신파는 뿌리의 모습을 좀 더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선 감리교 얘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러고보면 한국 개신교의 뿌리는 감리교인데 말이죠. 장로교 홍수 속에 살다보니 감리교의 존재를 잃어버릴 때가 많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9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리교가 좀 유연한 느낌을 줬습니다만 변선환 파동 때 보여주는 모습을 보니 좀 실망스럽더군요.아무래도 대중들에겐 김홍도 목사가 인상을 흐리기도 했구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9 16:06   좋아요 0 | URL
이 책에서도 변선환 교수를 다룹니다만. 책을 보니 변선환 교수 파면 때 김홍도 목사도 일조를 했더군요.
그리 남은 감리교의 김홍도가 말씀하신대로 감리교의 인상만 흐리고 있으니 덧붙일 말이 없습니다.
 
시인의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6
다이허우잉 지음, 임우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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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 소개 된 중국현대문학의 첫 베스트셀러는 무얼까? 다이허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人!)>이다. 이는 중문학계의 중론인데 장안의 지가를 높인 진융(金庸)의 무협소설을 제쳐두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1991년 신영복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된 이 소설은 '죽의 장막'속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회자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듬해에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는다. 신중국 성립 이후 교류가 없던 두 나라였다. 루쉰(魯迅)의 소설이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지만 루쉰의 사후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습을 알 수 없었던 한국 독자들에게 다이허우잉의 소설은 일종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구실을 했다.  

  다이허우잉은 문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4인방의 단죄로 문혁이 종료된 후 지식인 3부작을 써 낸다. <시인의 죽음(詩人之死)>(1978), <사람아, 아 사람아!>(1980), <하늘의 발자국 소리(空中的足音)>(1985)가 그것이다. 문혁을 소재로 한 문학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혁명의 광기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상흔문학이 등장한다. 상흔문학이란 명칭은 1978년 푸단대 학생이던 루신화(廬新華)가 과제물로 제출한 단편소설 <상흔(傷痕)>에서 비롯된다. <상흔>을 먼저 살펴보자.  

  소설은 문혁으로 입은 상처를 말하고 있다. 대혁명은 샤오화(曉華)의 가정을 비극의 한 복판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이면 비극의 대상으로 가정을 택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가정은 애틋한 감정의 공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두 가지 리얼리티인 탄생과 죽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맞는다. 또한 그 삶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가족 누구나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회의 폭압이 가정이라 하여 비껴갈 리는 없다. 폭압 앞에 가정은 무력하기만 하다. 또한 소설에는 샤오화와 샤오쑤(小蘇)의 사랑이 가로 놓여있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의 사랑도 공감을 일으킨다. <상흔>으로부터 얻는 공감은 당대 중국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누구도 문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태풍의 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모주석(마오쩌둥)께서 성분이 중요하다고는 하셨지만 너무 성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정치 실적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는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도 영웅이요, 아버지가 반동이면 자식도 반동이니.” 샤오쑤의 이 말은 작가 루신화의 생각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의 교조주의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혁 직후 생산된 상흔문학은 급하게 씌어진 만큼 한계도 갖는다. 낯 간지러운 장면이 있다. 소설의 말미에 화궈펑(華國鋒)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오는데, 이 충성 맹세는 이내 덩샤오핑(鄧小平)에게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흐름은 반사문학이다. '반사(反思)'란 돌이켜 생각함을 뜻한다. 반사문학은 상흔문학과 같이 문혁의 상처를 말하되, 역사적이고도 사상적인 깊이를 담고 있다. 해서 상흔문학에 비할 때 편폭이 길다. 반사문학 작가의 한 주자인 가오샤오성(高曉聲)의 소설 한 편을 들여다본다. 1979년에 발표된 <리순따의 집짓기(李順大造屋)>는 하층민들의 이야기이다. 허나 가정을 소재로 삼음은 <상흔>과 동일하다. 본래 가난하던 리순따의 가정은 문혁을 겪으며 더욱 가난해졌다. 무엇 때문인가? 소설의 말미에서처럼 ‘내가 형편없이 타락했‘기 때문인가? 문혁은 리순따의 꿈도 빼앗았고 상처만을 남겼다. 그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감금된다. 감금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순종파‘인 리순따가 이젠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를 추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분간할 도리가 없다.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은 개혁 개방 이후 돈만을 추종하는데, 소설은 그들의 전조를 보여준다. 서민이 집 한 채를 못 짓게 하는 사회가 무슨 ’낙원‘이란 말인가? 작가는 회의한다. <상흔>이 소설의 배경으로 택한 시간이 문혁 직전인 반면 이 작품은 중일전쟁 직후 국공내전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꽤 긴 셈이다. 중국이 현재 겪는 어려움은 꽤 먼 과거로부터 연유한다는 작가의식의 발로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다이허우잉으로 온다. <시인의 죽음> 속에 그가 견뎌 온 문혁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파락호 집안에서 총명한 딸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한다. '박격포'로 불리며 반우파 투쟁에 나서지만 그와중에 아버지는 우파로 몰리고 숙부는 자살한다. 죽마고우와 결혼하지만 잇딴 별거 속에 멀어진 남편과 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화대혁명중에 이별한다. 문화대혁명에 전투적으로 참여하던 중 유명 작가 원졔(聞捷)를 비판하는 심사조에 참여하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와의 결혼을 신청하나 당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하고, 원졔는 자살로 생을 마친다. 여기까지가 <시인의 죽음>을 쓰기 전까지의 작가 삶이다. 삶의 끝마저 고단했다. 1996년 자택에서 고향 은사의 손자에게 작가는 피살당한다.  

  <시인의 죽음>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작가는 이후 일관되게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어디쯤에서 손을 잡아야할 지 고민하는 소설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그 고민의 단초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며 시작한 문화대혁명이 인간을 말살하는 광기로 돌변할 때 작가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가 진정 어떤 사회인지 뼈 아프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광기 속에서도 연민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애처롭게 '사람아!'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단말마의 고통에서 나오는 절규이다. 통곡이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말처럼 그는 "살았고, 통곡했고, 싸웠다." 그 삶과, 통곡과 싸움이 그의 묘비만이 아닌 소설에도 온전히 새겨져 있다.

 

                       戴厚英 (1938-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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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가보군요. 진정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쓰여질 수 없는 것이 글이라는걸 배우게 될듯 싶어요. 1번 예약자가 보셔야할텐데....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9:49   좋아요 0 | URL
꼼꼼이 작가의 사랑과 아픔이 소설에 배여져 있습니다. 그 사랑과 아픔을 되새김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배움이 되리라는 생각을 저 역시 해 봅니다.
예약을 하셔서 급하게 읽고, 급하게 적어 봤는데요. 1번 예약자가 어디서라도 보고 계실지......

다이조부 2010-11-14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규찬 1집을 듣는데 이소라 와의 듀엣곡이 있네요.

전 그 사람한테 별 관심이 없지만 노래가 시쳇말로 쩌네요~

한 번 들어보세요 ^^ 난 그댈 보면서

이소라는 한참 옛날인데 노래 잘하네요 휴우 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11:18   좋아요 0 | URL
조규찬 앨범에 있는 곡이죠? 조만간 들어보겠습니다^^

다이조부 2010-11-15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재록 목사에 관하여 아시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11:17   좋아요 0 | URL
잘 모르는 분입니다만......

노이에자이트 2010-11-16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이 분이 비명에 가셨군요.저는 이 분 생존 때 나온 다섯수레 출판사 번역본을 구했는데...아...참...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6 21:56   좋아요 0 | URL
윤구병 선생이 번역한 책을 가지고 계시군요? <시인의 죽음>은 '지리산'이란 출판사에서도 오래전에 번역을 했지요. 새 번역은 을유문화사에서 했는데, 그러고보면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가는 한국인에게 꽤 주목받아온 작가인듯 합니다.
작가의 피살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죽음마저 드라마틱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구요. 그의 문학적 정적들은 그의 죽음을 두고 고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도 합니다만......

노이에자이트 2010-11-17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흔'에 대한 설명도 잘 읽었습니다.화국봉...이 양반 이름도 이젠 잊혀졌지요.모택동 사후에서 등소평 등장까지 사이의 과도체제 지도자라고 해야겠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7 16:30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임표(린뱌오)야 죽음과 관련된 미스테리 때문에 회자라도 되지만, 화궈펑은 중국 현대사에서 말할 거리도 없는 지도자이지요.
소설 <상흔>의 끄트머리에 그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오는데, 낯이 좀 간지러웠습니다.

루쉰P 2010-11-18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화대혁명에 대해서 나온 책 중에서 바진의 '매의 노래'나 작가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붕잡억'이란 책이 있습니다. 이 두 책은 회고록의 형식으로 문혁의 흐름을 얘기하는 것인데 그 내용이 피가 절절 흐르는 내용이라 정말 숨 막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문혁에 대해서는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 그런 책이 있을까요? '시인의 죽음'도 읽었기는 했지만 그 총체적이 모습에 대해서는 감이 안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맨날 책만 여쭤보지만 혹시 문혁에 대해 알 수 있는 책들이 있을까요? 부탁 좀 드릴께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8 11:06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신뢰하는 중국 연구자인 백승욱 교수의 <문화대혁명-중국 현대사의 트라우마>라는 얇은 책이 있습니다. 문혁의 약사인데, 참고할 만한 책입니다.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이란 책이 있습니다. '노신파'님이 두루 읽으셨던 회고록 스타일의 책인데, 꽤 밀도있게 문혁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자신 하방되어 문혁을 겪었던 소설가 한샤오궁의 해제가 책 말미에 있는데 그 역시 읽어볼만 합니다.

루쉰P 2010-11-19 07:30   좋아요 0 | URL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이라는 책이 좋을 듯 합니다. 이거 원 항상 여쭤보고 신세만 지니 죄송할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 신뢰한다는 교수님의 책도 어서 사서 봐야 겠네요. 회고록 스타일의 책들이 저에게는 좀 와 닿더라구요. 저는 이상하게 문혁이나 수용소 생존자 문학 같은 그런 류의 책들이 마음에 팍팍 와 닿는데 그런 제 심리를 좀 연구를 해 봐야 할 듯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님의 중국 관련 서적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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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on Y Las Visitadoras>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번역에 관해서 먼저 말을 꺼내자면, 이번 번역은 국내에선 두 번째다. 초역은 1982년 중앙일보사에서 간행한 '오늘의 세계문학' 시리즈였다. 당시 번역은 민용태 교수가 했는데, 제목은 <빤딸레온과 위안부들>이었다. 'visitador'를 의역하니, 제목이 서로 다른데, 단어의 본래 뜻은 방문객이나 손님을 뜻한다. '위안부'가 갖는 우리 역사의 슬픈 현실을 되새기자면, 민용태 교수의 제목보다는 송병선 교수의 새 번역 제목이 더 낫다. '특별봉사대'라는 말이 두리뭉실하지만 말이다. 

  소설은 페루 군대의 기이한 사건을 다룬다. 아마존 밀림에서 복무하는 육군 부대 병사들이 성욕을 자제 못해 인근 마을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사건이 잦아지자 군지휘부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한다. 창부들을 고용해 병사들의 성욕을 함법적으로 충족시켜주자는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의 실무자로 육군 대위 판탈레온을 임명한다. 판탈레온은 가족마저 속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와 함께 하는 특별봉사대는 병사들의 성원에 힘입어 나날이 세력을 확장한다. 그 와중 판탈레온의 외도로 가정은 깨지고, 특별봉사대원이 살해된다.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낀 판탈레온은 스스로 군대의 비밀을 폭로하고, 결국 특별봉사대는 해체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니 심각한 톤이지만, 소설은 시종 해학적이며 풍자적이다. 페루의 사회와 군 현실을 헤집고, 젠 체 하는 인간들을 까댄다. 군복과 사제복 사이에 숨은 인간의 정염을 작가는 섹스와 가학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그래봤자 너희들도 인간일 뿐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작가가 힘주어 풍자하는 집단은 군대와 종교단체이다. 군대는 함법적(?)으로 성욕문제를 해결했다. 창부를 고용해 겁탈을 방지한 것이다. 작가는 종교단체도 풍자한다. 신흥 종교단체의 교주 프란시스코 형제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 민중을 선동하고 세를 키워간다. 실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하는 기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긴다. 정부와 종교 단체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미망에 빠지고, 민간인들마저 군인들처럼 합법적인 특별봉사대를 원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군대와 종교단체의 기행이 끊임없이 독자들 앞에 오버랩되는 것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출간된 민용태 교수의 번역본에는 페루와 한국의 현실을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역자의 해설이 붙어 있다. "종교적인 열정이 강해서 십자가에 사람을 몇 명이고 못박아 죽이게 했던 교주나, 군대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비군대적인 제도를 성공에까지 이끈 빤딸레온의 사명감은 모두가 어처구니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 그것이다." 오랜 군부 독재를 겪고 있는 당시 현실이 이런 해설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이 주는 또 한 재미는 페루 사회를 들여다봄이다. 소설엔 동양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별봉사대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짱꼴라 포르피리오'와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신치'가 그들이다. 짱꼴라는 중국계이고, 신치는 일본계이다. 일본계인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을 보며 의아해 한 적이 있는데, 페루는 다인종 국가이다. 소수이지만 아시아계가 오랜 시간 페루에서 살아왔고,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후지모리는 10년간의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로 올 초에 25년형을 대법원으로부터 확정 받았다. 재미난 게 후지모리가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가 다툰 이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이다. 대통령 선거 후 2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은 2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또 한 사람은 노벨상을 탔다.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의미심장한 시간의 흐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보는 시선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또 한 작가인 칠레의 아리엘 도르프만 역시 <체 게바라의 빙산(The Nanny and the Iceberg)>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말하는데, 그가 현재 사는 앵글로 아메리카 미국은 성욕을 잘 절제하는지 묻고 싶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도 같은 맥락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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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재미있는 작가에요. <새엄마 찬양>을 들여다보다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제게는 훨씬 더 잘 다가와서 접어두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왜 남미쪽 작가들은 제게는 늘 소설보다 수필이나 이론서가 더 먼저다가오는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0 18:03   좋아요 0 | URL
작가를 읽어오고 계셨군요?
남미 작가는 소설이 강세인데, 다른 갈래의 글을 더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새로운 갈래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네요^^

다이조부 2010-11-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약도 잘 받았습니다.고맙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00:11   좋아요 0 | URL
긴히 쓰였으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 수기나 회고록을 보면 장군이 주둔하는 동네에서는 부하들이 장군님의 성욕을 채워주는 여자를 구하러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일화를 볼 수 있어요.중국내전 때 국민당군대 병사들도 성병 걸린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 걸 보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15:44   좋아요 0 | URL
그 말씀 하시니까 리영희 선생의 말이 생각나네요.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리영희 선생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소식을 듣고 웃었답니다. 그들이 내건 게 우리 군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깨끗한 집단이기에 사회를 바로잡는다고 했는데,군에 몸에 담은 선생은 그 말이 정말 웃겼겠죠. 부패하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집단이 바로 군인데 말이죠. 강만길 선생도 회고록 <역사가의 시간>에서 군생활을 돌이켜보며 당시 군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만길 선생도 리영희 선생처럼 쿠데타의 명분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군대의 부패는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댓글을 보니까 사내들의 성욕이 자연스러운 건데

가끔씩 사람을 참 비참하게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5:42   좋아요 0 | URL
언젠가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었죠?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했지만, 현실 속에선 말씀대로 비참할 따름이죠.
 
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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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동만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언젤까? 아무래도 그가 참여정부의 국정원 기조실장을 할 때였을 게다. 그는 임용 때부터 그의 학문적 이력을 문제삼은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데, 자리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다. 기조실장은 군기반장 역할의 자리이다. 도쿄대 유학 시절 와다 하루키의 사사를 받은 서동만이다. 와다 하루키를 극좌파 북한 연구자로 아는 보수계 인사들이 그의 제자인 서동만을 곱게 볼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원에 입성하지만 개혁의 칼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내부 반발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온지 5년째 되던 작년 6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자신의 53번째 생일을 지낸 지 며칠이 안되어서였다.  

  서동만은 북조선 연구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정립사 1945-1961>이다. 저서로 접하는 것은 <북조선 연구>가 처음이지만, 칼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접하곤 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있던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는데, 매우 예리한 지적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는 미국의 강경책을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란 개념으로 비유했다. 2007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한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전략으로 강경책을 쓴다는 게 논평의 요지였다. 실제 남한의 보수정권 수립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정책 전환을 보면 그의 생각이 탁견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손에 잡은 건 김정은의 등장 때문이다. <북조선 연구>는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북한정치이다. 그의 박사 논문 일부와 북한 관련 논설들이 실려 있다. 2부는 남북관계이다. 주로 칼럼을 모은 것인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남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말들이 많은데 오랜 시간 북한을 연구한 서동만이 지닌 생각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었다. 1998년 9월 북한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김정일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같은 해에 서동만은 '북한 정치체제 변화에 관한 시론'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김정일 당총비서는 국가주석이 되기보다는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최고통치권을 행사하는 길을 택했다. 아마도 죽은 인물을 영원한 주석으로, 즉 최고통치자로 추대한 것은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가 형성됨으로써 일어난 정치적 변화를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김일성 사망시까지 '당=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당=군=국가체제'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이 전사회의 조직자, 동원자로서 국가의 우위에 서 있던 체제에서 군도 종래보다 질적으로 강화된 역할을 하게 된 체제다. ...... 북한체제의 변화는 '전반적 군사화를 통한 체제단속 속에서 실용주의의 강화'라는, 어찌보면 모순된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내건 '강성대국' 건설을 서동만은 '모순되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이라 표현하고 있다. 국방위원장으로서 군을 틀어쥐었지만, 강성대국을 건설해 북한 인민의 먹고 사는 일도 책임져야 하는 북한 체제의 앞날을 서동만은 짚어내고 있다. 김정은 체제도 달리 보이진 않는다. '김정은 대장'이라 세뇌하고, 군장성들을 옆에 거느리는 모습을 자꾸 카메라에 비추는 건 김정은 역시 군을 틀어쥐어야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테다. '영원한 주석'인 할아버지를 빼닮은 외모와 풍채 역시 '장군감'이다. 3대가 세습을 하는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또 하려는 북한을 두고 서동만은 무어라 말할까? 와다 하루키는 책 말미의 해제에서 그의 제자를 이리 평가한다.  

   
  서동만은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였다. 그의 연구는 한국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일본의 학문적 전통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적인 학문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 연구들의 세계 최첨단의 성과를 공유한 후에 독자적인 방법과 학풍을 만들어내면서, 초기 북조선체제 연구로써 앞으로의 연구 토대를 만드는 기념비적인 실적을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간 서동만은 이 훌륭한 책을 한국과 세계 학계에 남겨놓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탄생에 공헌할 수 있었음을 긍지로 생각한다.  
   

  김정은의 등장을 보며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 서동만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젠 글만 뒤적일 수 밖에 없음에 안타깝다.  

 

            서동만(1956-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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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과 북조선의 관계와 미래에 관하여 저의 생각이 나이브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해봅니다.

빈자리가 아쉬운 사람인건 그 사람의 삶이 보람있었다는걸 반증하겠지요.

논쟁과 상처 는 드문드문 관심 있는 챕터만 골라서 읽어봤어요. 성실하고 꼼꼼한

비평가라고 생각해요. 강준만 과 권성우가 공저 인 책도 출간 당시에 흥미로웠던게

기억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19:32   좋아요 0 | URL
<논쟁과 상처> 읽고 계셨군요? 오랜만에 비평집을 보려고 합니다. 민완의 비평가라는 생각은 늘 했습니다.
서동만 교수 추모문집도 있더군요. <죽은 건 네가 아니다>인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빈자리가 아쉬운 사람입니다.
어떤 면에서 나이브하다고 생각하신 건지 궁금하네요.

다이조부 2010-11-0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령도 최근에 읽은 책에서 통일의 필요성을 말하더군요. 대학 재학중에도 선생님

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그때도 지금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얼마전에 이택광 블로그에서 그것에 관한 댓글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20대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는 통일이 꼭 필요한가 회의적이고, 통일 보다도 상호평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또래세대가 통일에 이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는것은 의외였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0:51   좋아요 0 | URL
저는 상호 평화에 기반한 통일 준비를 했으면 해요. 오늘 신문을 보니 백낙청 교수가 6.15선언에서 연방제와 연합제에 동의를 했으니 초유의 국가체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고 말하더군요. 현실은 어둡지만 희망을 갖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다양하지만 평화를 원한다면 생각의 틈을 좀 더 좁힐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이조부 2010-11-0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 민완 아니고 미완 아닌가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0:43   좋아요 0 | URL
민완이란 단어가 있어요. 기지와 재치 있다는 뜻인데, 민완 기자, 민완 가드 이럴때 쓰이죠.
권성우 교수가 어울릴듯 해 써 봤습니다.

다이조부 2010-11-08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완 이라는 단어가 있군요. ㅋ 또 무식이 두드러지게 티가 났네요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8 21:54   좋아요 0 | URL
잘 안 쓰는 단어라서요.....,

2010-11-09 04: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0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이조부 2010-11-09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어머니 가 눈이 침침해서 귀로 듣는 성경 테이프 나 시디 혹은 엠피쓰리 같은거

구입할 수 있는데 혹시 아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6:48   좋아요 0 | URL
다행히 제가 녹음된 성경전권을 MP3 파일로 갖고 있어서요.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얻은 건데요.
전에 일러주신 이메일로 보내 드릴게요.
어머님께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9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동만 씨가 그때 국정원장인 고영구씨와도 사이가 안 좋았습니다.그런 갈등도 국정원을 그만 둔 원인이 되었지요.

알라딘에서 북한관련서적을 언급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런 글을 올려주시니 기쁩니다.

아무래도 김정은 체제는 경제문제에 집중하게 될 겁니다.전문가들의 예측이 얼마나 정확하느냐 하는 것은 현재 상황을 안 다음 그 전문가의 예전 예측을 담은 글을 읽고 비교해보면 되지요.

제자의 장례식에 참가한 와다 하루키 씨의 슬픈 모습을 찍은 사진이 기억에 남습니다.와다의 김일성 전기를 번역한 사람이 이종석 씨, 와다의 제자 서동만...여하튼 한국보수진영에서 싫어하는 사람들이지요.거기에 정세현 씨까지...정세현 씨는 원래는 모택동의 외교를 연구했습니다만...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9:32   좋아요 0 | URL
고영구 변호사와 사이가 좋지 않았군요? 몰랐습니다.
와다 교수는 투병하는 제자를 찾아 한국을 여러 차례 드나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후배 학자로서 격찬하는 글을 대하니 제자에 대한 애정이 애틋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동만, 이종석, 정세현 모두 참여정부의 통일안보 라인이군요?
이야기가 조금 샙니다만, 강만길 교수의 회고록 <역사가의 시간>을 보면 참여정부 시절 그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아마도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인 듯 한데요. 말다툼이 있었다는 얘기를 합니다. 개인간의 일일수도 있겠지만, 강만길 교수는 참여정부 시절 장관급의 위원장을 했는데, 두 정부간 이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번역본에서도 그런 말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좀 오래된 추리물 번역본을 보면 민완형사니 민완검사니 하는 단어가 꽤 나왔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19:23   좋아요 0 | URL
잘 안쓰는 단어인듯 해요.
신문에서 후배가 선배기자를 두고 '민완기자'라 일컫는 걸 종종 봤구요. 연배 있는 해설위원이 농구선수를 두고 '민완가드'라 말하는 걸 들어봤네요.
제겐 예쁜 발음의 단어인 듯 한데 말이죠. 뜻도 그렇구요.

다이조부 2010-11-09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듭 신세를 지네요. 보내준 자료는 잘 받았습니다.

엄마가 좋아하네요. 서구세계를 지탱하는 축 중에 무진장 중요한 자료가 300메가 안에

커버되는게 신기합니다. 김연수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죽을 힘을 다해서 장편소설 한 권

을 써도 1메가 안에 커버된다고요. 기독교경전은 음성자료이기 때문에 아마도 조금 더

무거운것이겠죠~ ^^ 우리 대통령각하의 별명도 어쩌면 과분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자료 고맙습니다 ~ 이제 다가오는 결혼기념일때 엠피쓰리 하나 선물해야겠네요 ㅋㅋ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20:26   좋아요 0 | URL
<신약성경>은 내일이라도 보내 드릴게요. 저희 어머니는 교회 안 다니시는데 성경 읽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과 챙겨드리는 아들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럽네요.

반딧불이 2010-11-0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도 그렇지만 댓글들도 제게는 공부네요. 부끄러운 얘기기만 저는 저런분이 계셨던것도 또 세상을 떠난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9 22:04   좋아요 0 | URL
학자임은 물론이고 노무현과 함께 변혁을 꿈꿨던 사람으로 서동만을 기억하게 됩니다. 너무 짧은 삶을 산 것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요동하는 한반도 정세를 보자면 더욱 그렇구요. 남겨진 글들을 안타까이 뒤적일 따름입니다.

루쉰P 2010-11-11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에 대해서도 항상 마음은 두고 있지만 쉽사리 공부를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님의 리뷰를 보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경기 북부 지역에 살며 북한에 인접해 있지만 사실 항상 그 존재를 잃어 버리고 살 곤 합니다. 북한에 대해 알고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 삶과 밀접하다는 사실을 잊어 버린 채 말이죠. 리뷰를 읽으며 조금이나마 알게 되서 좋네요. 감사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11:36   좋아요 0 | URL
포천에서 직장 생활하시는 걸로 아는데 맞나요? 저는 가평에서 군생활했는데, 훈련 때 포천을 가곤 했어요. 물론 군생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쪽은 북한을 알게모르게 의식하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이런 책이 아니면 평소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없어요. 의식적으로라도 읽고 생각을 해야지 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루쉰P 2010-11-15 17:0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포천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하지만 이곳 사람들도 북한과 근접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의식은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더 접근을 하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만 눈에 잡히지 않는 북한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관심도 없는 관념의 문제일 뿐이죠. 과연 정말 통일이 준비될 때 포천은 어떻게 해 나갈지 참 걱정입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5 22:33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 어디라고 크게 다르겠습니까? 함석헌 선생은 해방이 도적같이 왔다고 하셨잖아요? 통일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
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김영미 옮김 / 창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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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레 광부 33인의 구조 동영상을 보다 꺼내 든 소설이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Blake's Therapy)>은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의 장편소설이다. 아리엘 도르프만은 칠레 작가이다. '칠레 작가'라 일컬음은 작가 자신이 원하는 바다. 도르프만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칠레에 정착해 학생들을 가르치며 아옌데의 좌파정권 성립에 일조하던 중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미국에 망명한다. 이후 미국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도르프만은 디아스포라의 전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 그는 유대인이다. 디아스포라가 본래 유대인 난민만을 일컫는 말임을 기억해두자. 그의 조부는 사업을 이유로 가족을 데리고 러시아에서 아르헨티나로 떠난다. 그의 아버지는 정권의 탄압으로 가족과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으로 도망한다. 열여덟살이 될 때까지 자신을 미국인이라 영어로 대답하던 도르프만은 칠레에서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고민을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적 현실이 자신이 자라온 미국 때문임을 알게 된 것이다. 미국을 정면으로 바라보려 한 아옌데의 사회주의 연합정부의 탄생을 도왔던 그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건 미국이었다. 미국의 지원으로 피노체트 군부세력은 아옌데 정부를 무너뜨리고 17년 간 칠레를 '막장'으로 끌고간다. 디아스포라 도르프만의 회고록 제목이 의미깊다.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Heading South, Looking North)>. 남과 북이다. 직접적으론 남미와 북미겠다. 이 뿐일까? 빈곤과 부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자연과 인공도 대립 요소항이 되겠다. 남과 북에 흩어진 작가의 정체성이다.  

  내가 읽어내는 도르프만의 작품 경향은 두 가지 정도겠다. 우선 그는 칠레 군부 독재 정권의 야만성을 비판한다. 단편집 <우리 집에 불났어(My House is On Fire)>와 희곡집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는 칠레의 고통스런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군부 독재를 그들만이 겪은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슬픔이 우리의 슬픔이기도 하다. 희곡 <죽음과 소녀>에는 독재 정권 치하에서 여대생을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들으며 성적으로 고문하는 의사가 나온다. 난 이 희곡을 소극장에서 연극으로도 보았는데, 베토벤을 들으며 유대인을 태웠던 아우슈비츠의 나치 병사를 떠올렸다. 아우슈비츠가 산티아고로, 산티아고가 독재 치하의 한국으로 오버랩되었다.  

  또 하나는 자본주의와 미국에 대한 딴죽걸기이다. 일종의 문화비평서인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How to Read Donald Duck)>가 대표적이다. 미국 문화의 대표격인 디즈니 만화를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미국식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신작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도 이 경향에 속하는 소설이라 하겠다. 미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블레이크는 인생의 난관을 맞는데,  자신의 기업에 닥친 경제적 위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사생활과 기업의 실상이 모두 드러난다. 문제는 이 드러냄의 방식이다. 도르프만은 전통적 소설 양식을 거부하고,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함축적 상징을 통해 독자에게 실상을 보여준다. 이 같은 기법은 <체 게바라의 빙산(The Nanny and the Iceberg)> 이후로 작가가 실험을 거듭하는 모습인데, 전달의 수단으로는 썩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텍스트에 가히 뭇매질을 가해 다시 헤쳐모음은 장관이지만, 전달의 효과엔 의문을 갖는다. <블레이크 씨의 특별한 심리치료법>도 그런 면에선 아쉬움을 남긴다.  

  최고경영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블레이크가 갖는 고뇌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자신의 지시 하나, 하나에 해외 공장 노동자와 미국의 이민 노동자의 삶이 격변을 겪음을 그는 알아간다. 독립적인 인간이라지만, 그 역시 자본주의를 돌리는 힘없는 나사 하나일 뿐이다. 블레이크에 대한 비판적 성찰 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Ariel Dorfman(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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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0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베르트의 <죽음과 소녀>를 틀어놓고 여대생을 고문하는 이야기는 시고니 위버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영화이기도 한데요. 제목이 영 생각이 안나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3 18:0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엔 <진실>로 소개된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죠. 그 영화의 원작이 위에서 말한 희곡이에요. 영화의 원제목도 <죽음과 소녀>이구요. 영화는 안 봤는데, 저 희곡집을 읽다 영화 관련 자료도 찾아보았어요. 연극은 연극대로 좋더군요^^

다이조부 2010-11-0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의 댓글을 보니까 나찌의 만행과, 우리의 지난 암흑같은 시절도 연상되네요.

영화 박하사탕도 생각나고요. 가정에서는 따뜻한 아버지가, 자신의 일터에서는 고문을

하는 것. 이런 기록을 볼때마다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15:16   좋아요 0 | URL
희곡 <죽음과 소녀>를 보면 이런 장면이 있어요. 민주화가 되어 과거사를 정리하는 위치에 오른 여주인공의 남편에게 아내가 독재치하에서의 판사들을 비판해요. 여전히 요직에 올라 호위호식하는 그들을 비판하는데 우리도 다르지 않죠. 과거를 공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겠죠.
비극을 막는 게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