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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죽음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6
다이허우잉 지음, 임우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한국에 소개 된 중국현대문학의 첫 베스트셀러는 무얼까? 다이허우잉(戴厚英)의 <사람아 아, 사람아!(人啊,人!)>이다. 이는 중문학계의 중론인데 장안의 지가를 높인 진융(金庸)의 무협소설을 제쳐두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1991년 신영복의 번역으로 한국에 소개된 이 소설은 '죽의 장막'속에서 벌어진 문화대혁명의 실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회자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이듬해에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맺는다. 신중국 성립 이후 교류가 없던 두 나라였다. 루쉰(魯迅)의 소설이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지만 루쉰의 사후 성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의 모습을 알 수 없었던 한국 독자들에게 다이허우잉의 소설은 일종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구실을 했다.
다이허우잉은 문혁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가이다. 그는 4인방의 단죄로 문혁이 종료된 후 지식인 3부작을 써 낸다. <시인의 죽음(詩人之死)>(1978), <사람아, 아 사람아!>(1980), <하늘의 발자국 소리(空中的足音)>(1985)가 그것이다. 문혁을 소재로 한 문학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혁명의 광기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상흔문학이 등장한다. 상흔문학이란 명칭은 1978년 푸단대 학생이던 루신화(廬新華)가 과제물로 제출한 단편소설 <상흔(傷痕)>에서 비롯된다. <상흔>을 먼저 살펴보자.
소설은 문혁으로 입은 상처를 말하고 있다. 대혁명은 샤오화(曉華)의 가정을 비극의 한 복판으로 몰아넣었다. 그런데 작가는 왜 하필이면 비극의 대상으로 가정을 택한 것일까? 누구에게나 가정은 애틋한 감정의 공간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두 가지 리얼리티인 탄생과 죽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서 맞는다. 또한 그 삶의 대부분이 가정에서 이루어진다. 가족 누구나 가정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사회의 폭압이 가정이라 하여 비껴갈 리는 없다. 폭압 앞에 가정은 무력하기만 하다. 또한 소설에는 샤오화와 샤오쑤(小蘇)의 사랑이 가로 놓여있다. 현실의 고통 앞에서 의미를 잃어가는 이들의 사랑도 공감을 일으킨다. <상흔>으로부터 얻는 공감은 당대 중국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누구도 문혁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태풍의 눈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소설의 한 대목이다. “모주석(마오쩌둥)께서 성분이 중요하다고는 하셨지만 너무 성분만을 볼 것이 아니라 정치 실적을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는 아버지가 영웅이면 아들도 영웅이요, 아버지가 반동이면 자식도 반동이니.” 샤오쑤의 이 말은 작가 루신화의 생각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의 교조주의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혁 직후 생산된 상흔문학은 급하게 씌어진 만큼 한계도 갖는다. 낯 간지러운 장면이 있다. 소설의 말미에 화궈펑(華國鋒)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오는데, 이 충성 맹세는 이내 덩샤오핑(鄧小平)에게로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흐름은 반사문학이다. '반사(反思)'란 돌이켜 생각함을 뜻한다. 반사문학은 상흔문학과 같이 문혁의 상처를 말하되, 역사적이고도 사상적인 깊이를 담고 있다. 해서 상흔문학에 비할 때 편폭이 길다. 반사문학 작가의 한 주자인 가오샤오성(高曉聲)의 소설 한 편을 들여다본다. 1979년에 발표된 <리순따의 집짓기(李順大造屋)>는 하층민들의 이야기이다. 허나 가정을 소재로 삼음은 <상흔>과 동일하다. 본래 가난하던 리순따의 가정은 문혁을 겪으며 더욱 가난해졌다. 무엇 때문인가? 소설의 말미에서처럼 ‘내가 형편없이 타락했‘기 때문인가? 문혁은 리순따의 꿈도 빼앗았고 상처만을 남겼다. 그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감금된다. 감금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순종파‘인 리순따가 이젠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를 추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을 분간할 도리가 없다.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은 개혁 개방 이후 돈만을 추종하는데, 소설은 그들의 전조를 보여준다. 서민이 집 한 채를 못 짓게 하는 사회가 무슨 ’낙원‘이란 말인가? 작가는 회의한다. <상흔>이 소설의 배경으로 택한 시간이 문혁 직전인 반면 이 작품은 중일전쟁 직후 국공내전으로부터 소설을 시작하고 있다. 시간이 꽤 긴 셈이다. 중국이 현재 겪는 어려움은 꽤 먼 과거로부터 연유한다는 작가의식의 발로이다.
먼 길을 돌아 다시 다이허우잉으로 온다. <시인의 죽음> 속에 그가 견뎌 온 문혁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파락호 집안에서 총명한 딸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한다. '박격포'로 불리며 반우파 투쟁에 나서지만 그와중에 아버지는 우파로 몰리고 숙부는 자살한다. 죽마고우와 결혼하지만 잇딴 별거 속에 멀어진 남편과 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화대혁명중에 이별한다. 문화대혁명에 전투적으로 참여하던 중 유명 작가 원졔(聞捷)를 비판하는 심사조에 참여하나,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와의 결혼을 신청하나 당으로부터 허락을 받지 못하고, 원졔는 자살로 생을 마친다. 여기까지가 <시인의 죽음>을 쓰기 전까지의 작가 삶이다. 삶의 끝마저 고단했다. 1996년 자택에서 고향 은사의 손자에게 작가는 피살당한다.
<시인의 죽음>은 작가의 첫 작품이다. 작가는 이후 일관되게 사회주의와 휴머니즘이 어디쯤에서 손을 잡아야할 지 고민하는 소설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그 고민의 단초를 보여준다. 제대로 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자며 시작한 문화대혁명이 인간을 말살하는 광기로 돌변할 때 작가는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가 진정 어떤 사회인지 뼈 아프게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이 광기 속에서도 연민과 안타까움을 지니고 애처롭게 '사람아!'라고 외친다. 이 외침은 단말마의 고통에서 나오는 절규이다. 통곡이다. 그의 묘비에 새겨진 말처럼 그는 "살았고, 통곡했고, 싸웠다." 그 삶과, 통곡과 싸움이 그의 묘비만이 아닌 소설에도 온전히 새겨져 있다.
戴厚英 (1938-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