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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선 연구 - 서동만 저작집
서동만저작집간행위원회 엮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서동만이란 이름을 처음 들은 게 언젤까? 아무래도 그가 참여정부의 국정원 기조실장을 할 때였을 게다. 그는 임용 때부터 그의 학문적 이력을 문제삼은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데, 자리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다. 기조실장은 군기반장 역할의 자리이다. 도쿄대 유학 시절 와다 하루키의 사사를 받은 서동만이다. 와다 하루키를 극좌파 북한 연구자로 아는 보수계 인사들이 그의 제자인 서동만을 곱게 볼리 없다. 우여곡절 끝에 국정원에 입성하지만 개혁의 칼을 제대로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내부 반발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다시 학자의 자리로 돌아온지 5년째 되던 작년 6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다. 자신의 53번째 생일을 지낸 지 며칠이 안되어서였다.
서동만은 북조선 연구자이다. 그의 박사학위논문은 <북조선사회주의 체제정립사 1945-1961>이다. 저서로 접하는 것은 <북조선 연구>가 처음이지만, 칼럼을 통해 그의 생각을 접하곤 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있던 2006년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A4 두 장으로 한국사회 읽기>, 2008)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썼는데, 매우 예리한 지적이란 생각을 가졌다. 그는 미국의 강경책을 '성동격서(聲東擊西 :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친다)'란 개념으로 비유했다. 2007년 남한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한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대북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전략으로 강경책을 쓴다는 게 논평의 요지였다. 실제 남한의 보수정권 수립과 더불어 북한에 대한 정책 전환을 보면 그의 생각이 탁견임을 깨닫게 된다.
책을 손에 잡은 건 김정은의 등장 때문이다. <북조선 연구>는 2부로 나눠져 있다. 1부는 북한정치이다. 그의 박사 논문 일부와 북한 관련 논설들이 실려 있다. 2부는 남북관계이다. 주로 칼럼을 모은 것인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와 남북 문제를 다루고 있다. 북한의 3대 세습을 두고 말들이 많은데 오랜 시간 북한을 연구한 서동만이 지닌 생각의 길을 한 번 따라가 보고 싶었다. 1998년 9월 북한의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김정일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한다. 같은 해에 서동만은 '북한 정치체제 변화에 관한 시론'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이 논문에서 그는 김정일체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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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당총비서는 국가주석이 되기보다는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고 국방위원장으로서 최고통치권을 행사하는 길을 택했다. 아마도 죽은 인물을 영원한 주석으로, 즉 최고통치자로 추대한 것은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가 형성됨으로써 일어난 정치적 변화를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북한은 김일성 사망시까지 '당=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당=군=국가체제'로 전환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이 전사회의 조직자, 동원자로서 국가의 우위에 서 있던 체제에서 군도 종래보다 질적으로 강화된 역할을 하게 된 체제다. ...... 북한체제의 변화는 '전반적 군사화를 통한 체제단속 속에서 실용주의의 강화'라는, 어찌보면 모순된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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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위원장 김정일이 내건 '강성대국' 건설을 서동만은 '모순되지만 나름대로 고심의 선택'이라 표현하고 있다. 국방위원장으로서 군을 틀어쥐었지만, 강성대국을 건설해 북한 인민의 먹고 사는 일도 책임져야 하는 북한 체제의 앞날을 서동만은 짚어내고 있다. 김정은 체제도 달리 보이진 않는다. '김정은 대장'이라 세뇌하고, 군장성들을 옆에 거느리는 모습을 자꾸 카메라에 비추는 건 김정은 역시 군을 틀어쥐어야만이 후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일테다. '영원한 주석'인 할아버지를 빼닮은 외모와 풍채 역시 '장군감'이다. 3대가 세습을 하는 '세계 공화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을 또 하려는 북한을 두고 서동만은 무어라 말할까? 와다 하루키는 책 말미의 해제에서 그의 제자를 이리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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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만은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였다. 그의 연구는 한국인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일본의 학문적 전통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서 세계적인 학문수준에 도달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 연구들의 세계 최첨단의 성과를 공유한 후에 독자적인 방법과 학풍을 만들어내면서, 초기 북조선체제 연구로써 앞으로의 연구 토대를 만드는 기념비적인 실적을 낳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간 서동만은 이 훌륭한 책을 한국과 세계 학계에 남겨놓은 것이다. 나는 이 책의 탄생에 공헌할 수 있었음을 긍지로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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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등장을 보며 '걸출한 북조선 연구자' 서동만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이젠 글만 뒤적일 수 밖에 없음에 안타깝다.
서동만(1956-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