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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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Pantaleon Y Las Visitadoras>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장편소설이다. 이 책의 번역에 관해서 먼저 말을 꺼내자면, 이번 번역은 국내에선 두 번째다. 초역은 1982년 중앙일보사에서 간행한 '오늘의 세계문학' 시리즈였다. 당시 번역은 민용태 교수가 했는데, 제목은 <빤딸레온과 위안부들>이었다. 'visitador'를 의역하니, 제목이 서로 다른데, 단어의 본래 뜻은 방문객이나 손님을 뜻한다. '위안부'가 갖는 우리 역사의 슬픈 현실을 되새기자면, 민용태 교수의 제목보다는 송병선 교수의 새 번역 제목이 더 낫다. '특별봉사대'라는 말이 두리뭉실하지만 말이다. 

  소설은 페루 군대의 기이한 사건을 다룬다. 아마존 밀림에서 복무하는 육군 부대 병사들이 성욕을 자제 못해 인근 마을의 부녀자를 겁탈하는 사건이 잦아지자 군지휘부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한다. 창부들을 고용해 병사들의 성욕을 함법적으로 충족시켜주자는 계획을 세우고 이 일의 실무자로 육군 대위 판탈레온을 임명한다. 판탈레온은 가족마저 속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와 함께 하는 특별봉사대는 병사들의 성원에 힘입어 나날이 세력을 확장한다. 그 와중 판탈레온의 외도로 가정은 깨지고, 특별봉사대원이 살해된다. 자신의 임무에 회의를 느낀 판탈레온은 스스로 군대의 비밀을 폭로하고, 결국 특별봉사대는 해체된다.  

  소설의 줄거리를 말하니 심각한 톤이지만, 소설은 시종 해학적이며 풍자적이다. 페루의 사회와 군 현실을 헤집고, 젠 체 하는 인간들을 까댄다. 군복과 사제복 사이에 숨은 인간의 정염을 작가는 섹스와 가학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그래봤자 너희들도 인간일 뿐이다!"라고 작가는 말하는 듯 하다. 작가가 힘주어 풍자하는 집단은 군대와 종교단체이다. 군대는 함법적(?)으로 성욕문제를 해결했다. 창부를 고용해 겁탈을 방지한 것이다. 작가는 종교단체도 풍자한다. 신흥 종교단체의 교주 프란시스코 형제는 기이한 행동을 통해 민중을 선동하고 세를 키워간다. 실제 사람들을 십자가에 못 박기도 하는 기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사람들은 마음을 빼앗긴다. 정부와 종교 단체 모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니 사람들은 미망에 빠지고, 민간인들마저 군인들처럼 합법적인 특별봉사대를 원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군대와 종교단체의 기행이 끊임없이 독자들 앞에 오버랩되는 것은 작가의 문제의식이 여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출간된 민용태 교수의 번역본에는 페루와 한국의 현실을 연결시켜 이해하려는 역자의 해설이 붙어 있다. "종교적인 열정이 강해서 십자가에 사람을 몇 명이고 못박아 죽이게 했던 교주나, 군대에 충실하기 위해 가장 비군대적인 제도를 성공에까지 이끈 빤딸레온의 사명감은 모두가 어처구니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 그것이다." 오랜 군부 독재를 겪고 있는 당시 현실이 이런 해설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소설이 주는 또 한 재미는 페루 사회를 들여다봄이다. 소설엔 동양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특별봉사대를 구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짱꼴라 포르피리오'와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인 '신치'가 그들이다. 짱꼴라는 중국계이고, 신치는 일본계이다. 일본계인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을 보며 의아해 한 적이 있는데, 페루는 다인종 국가이다. 소수이지만 아시아계가 오랜 시간 페루에서 살아왔고, 최고 권력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후지모리는 10년간의 대통령 재임 시절 저지른 범죄로 올 초에 25년형을 대법원으로부터 확정 받았다. 재미난 게 후지모리가 1990년 대통령 선거에서 결선 투표까지 가 다툰 이가 바로 이 소설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이다. 대통령 선거 후 20년이 지난 지금, 한 사람은 2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또 한 사람은 노벨상을 탔다.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의미심장한 시간의 흐름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보는 시선이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또 한 작가인 칠레의 아리엘 도르프만 역시 <체 게바라의 빙산(The Nanny and the Iceberg)>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성욕을 라틴 아메리카적인 것이라 말하는데, 그가 현재 사는 앵글로 아메리카 미국은 성욕을 잘 절제하는지 묻고 싶다.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도 같은 맥락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Jorge Mario Pedro Vargas Llosa(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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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1-11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여간 재미있는 작가에요. <새엄마 찬양>을 들여다보다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가 제게는 훨씬 더 잘 다가와서 접어두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왜 남미쪽 작가들은 제게는 늘 소설보다 수필이나 이론서가 더 먼저다가오는지 모르겠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0 18:03   좋아요 0 | URL
작가를 읽어오고 계셨군요?
남미 작가는 소설이 강세인데, 다른 갈래의 글을 더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새로운 갈래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네요^^

다이조부 2010-11-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약도 잘 받았습니다.고맙습니다. ^^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00:11   좋아요 0 | URL
긴히 쓰였으면 좋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11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 수기나 회고록을 보면 장군이 주둔하는 동네에서는 부하들이 장군님의 성욕을 채워주는 여자를 구하러 동네를 돌아다녔다는 일화를 볼 수 있어요.중국내전 때 국민당군대 병사들도 성병 걸린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 걸 보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1 15:44   좋아요 0 | URL
그 말씀 하시니까 리영희 선생의 말이 생각나네요. 한국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리영희 선생이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소식을 듣고 웃었답니다. 그들이 내건 게 우리 군이 한국사회에서 가장 깨끗한 집단이기에 사회를 바로잡는다고 했는데,군에 몸에 담은 선생은 그 말이 정말 웃겼겠죠. 부패하기로 둘째 가면 서러운 집단이 바로 군인데 말이죠. 강만길 선생도 회고록 <역사가의 시간>에서 군생활을 돌이켜보며 당시 군대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만길 선생도 리영희 선생처럼 쿠데타의 명분을 비웃었다고 합니다.
군대의 부패는 어딜가나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다이조부 2010-11-12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댓글을 보니까 사내들의 성욕이 자연스러운 건데

가끔씩 사람을 참 비참하게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휴

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5:42   좋아요 0 | URL
언젠가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했었죠?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했지만, 현실 속에선 말씀대로 비참할 따름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