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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
조현 지음 / 시작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몰랐던 이 땅의 예수들'이다. <한겨레> 종교전문기자인 조현은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래 예수의 삶에 감화받고, 그 자신 예수의 삶을 살다간 24인을 다룬다. 장기려, 권정생, 유일한 처럼 널리 알려진 사람들을 포함해 책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간 이 땅의 예수들을 다루고 있다.
개신교가 이 땅에 전해진 지 100년이 지났다. 한국 개신교의 공과를 논할 자격이 나는 없지만, 이 책을 보며 '참된 종교란 무얼까?' 짧은 고민을 했다. 근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란 단체가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운다는 발표를 했다. 한 유명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회자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욕먹을 일이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개신교가 왜 자꾸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걸까? 본래 한국 개신교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다. <울림>이 그 대답을 해주고 있다.
1919년 3.1운동 때 조선의 기독교 신자는 인구 중 1.3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운동을 주도한 33인의 지도자 가운데 기독교인이 16명이다. 온건하고도 온전한 의식을 지녔던 한국 기독교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만세운동 10년 전,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을 때도 벽안의 천주교 신부들과 조선인 신자들은 그의 행동을 나무랐지만, 개신교 지도자들은 안중근의 행동을 옹호했다. 개신교의 현실 인식이 뒤틀어진 첫 사건은 일제 신사 참배일 것이다. 주기철 목사의 신사참배를 들어 신사 참배에 저항했다지만, 당시의 역사를 보면 개신교가 집단적으로 참배에 불복한 것은 고신파 뿐이다.
군부 독재 시절 개신교 지도자 역시 투쟁했다. 그러나 힘을 모두어야 할 때 개신교 특유의 배타성은 적을 눈 앞에 두고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때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한 일화이다. 법정 스님이 유신 철폐 운동에 나서자 그동안 군부 독재에 반대하던 한 목사가 스님의 행동을 못마땅해하며 이리 말했다고 한다. "저 땡중놈과는 유신 철폐고 뭐고 같이 못한다." 이에 스님이 그를 찾아가는데, 자신이 정말 이 운동에 힘을 보태고 싶은데 목사님이 정말 싫어하시면 목사님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는 승복을 벗고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을 한다. 목사의 옹졸함과 스님의 인격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일화이다.
얼마 전 고신파에 속한 한 목사님과 얘기를 나눴다. 고신파 목사들의 모임에 참석해서 그 분이 어쩌면 법정 스님이 천국에 가 있을수도 있겠다는 얘기를 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중인데 무슨 소리냐며, 발끈하는 목사들을 두고 그 목사님은 우리보다 더 예수를 닮은 삶을 산 법정 스님이기에 어쩌면 천국에 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했단다. 군인 출신 학살자 대통령을 두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소리 친 목사도 있지만, 그 민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한 목사도 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은 개신교이다. 개신교는 자랑스럽게 세 명의 장로 대통령을 들먹이지만 그들의 행적을 보자면 초기 개신교 선구자들을 그들의 곁에 두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그 선구자들의 삶을 나는 알고 싶었다. <울림>은 그 선구자들의 평전이다.
내가 아는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고, 갱신의 종교이다. 성추행한 유명 목사와 관련해서도 나는 생각이 단순하다. 당신이 강대상에서 그리 가르치던 부활과 갱신을 스스로 행하면 될 것이다. 교인과 교회를 핑계 대고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은 자신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 김두식 교수를 비롯한 기독법률가회에서 목사 사임을 종용했다는데, 그 고언을 들어 사임한 건 선배 목사들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은 것이니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는 생각이다.
도올 김용옥의 추천사가 <울림>의 앞 장에 있다. 그도 기독교의 갱신을 말하는 사람이니, 책과 함께 그의 생각도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