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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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블리스,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84

 

 


뷔블리스는 아폴로의 손자인 자기 오라비에게 걷잡을 수 없는

연정을 품었으니, 뷔블리스야말로 소녀들은 허용된 것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오라비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오누이간의 사랑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사랑이었다.

······

그녀는 혈족이란 말을 싫어했으며, 어느새 그를 여보라고 부르며

그가 자기를 누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뷔블리스라고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마음속에 감히 불순한 욕망을 품지는 않았다.

하나 부드러운 잠에 사지가 풀리게 되면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가끔 보았다. 그녀는 오라비의 품에 안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잠들어 누워 있는데도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한동안 말없이 누워 꿈에서 본 것을

되새기며 갈팡질팡했다. "아아, 나처럼 불쌍한 애가 있을까!

이 고요한 밤의 환영이 원하는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런 일은 얼어나지 말았으면! 왜 나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일까?

그를 곱지 않게 보는 눈에도 그가 미남인 것은 사실이야. 나도 그가

마음에 들어. 오라비만 아니라면 그를 사랑할 수 있을 테지. 그는

나에게 딱 어울리는 상대였겠지.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의 누이야.

내가 깨어 있을 때 그런 짓을 하려고 시도하지만 않는다면야,

가끔 잠이 그와 비슷한 꿈과 함께 돌아왔으면 좋겠어.

꿈에는 증인도 없고, 그렇다고 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오, 베누스여, 그리고 부드러운 어머니와 함께하는

쿠피도여,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얼마나 실감나는 쾌락에

나는 사로잡혔던가! 누워 있었을 때 나는 골수가 모두

녹아내리는 것 같았어. 생각만 해도 나는 즐거워.

비록 그것이 짧은 쾌락에 지나지 않고,

밤은 우리가 시작한 일을 시기하여 허둥지둥 달려갔지만 말이야.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454∼486행

 

 

 

그녀는 시작하다가는 망설였고, 쓰다가는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적다가는 지우기도 하고 고치기도 하고 나무라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했다. 그녀는 손에 쥐었던 서판을 놓는가 하면 놓아둔

서판을 다시 쥐곤 했다. 그녀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지 못했으니,

무엇이든 일단 시작하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대담성과 부끄럼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그대의 누이가"라고 적었다가 누이란 말을 지우는 것이 좋겠다고

여기고 밀랍 표면을 문지른 다음 이런 말들을 적었다. "여기 그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그대가 안녕하기를 빌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그대가 허락하지 않으면 안녕하지 못할 거예요. 아아, 그녀는

이름을 밝히기를 부끄러워하고 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대가 물으신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내 용건을 말하고, 내 희망이 확실히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가 뷔블리스라는 것이 알려지지 않는 거예요.

그대는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창백하고 마른 내 얼굴,

가끔 눈물이 글썽이는 내 두 눈, 뚜렷한 이유도 없는 내 한숨,

잦은 포옹, 그리고 그대가 알아챘는지 몰라도 도무지 누이가

하는 것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내 입맞춤이 그 증거예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23∼539행

 

  


노인들이나 법도를 알고,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그르고,

무엇이 옳은지 묻고, 법규를 따지며 지키라 하세요!

경솔한 사랑이 우리 또래에게는 어울려요. 우리는 무엇이

허용되는지 아직 알지 못하며, 모든 것이 허용된다고 믿어요.

그 점에서 우리는 위대한 신들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지요.

엄하신 아버지도, 소문에 대한 거리낌도, 두려움도

우리를 가로막지 못할 거예요. 두려워할 만한 이유가 있다면,

우리는 은밀한 사랑의 즐거움을 남매라는 이름으로 가리게 될 거예요.

그러면 나에게는 그대와 은밀히 이야기를 나눌 자유가

주어질 것이며, 우리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포옹하고

입맞추어도 좋을 거예요. 그만하면 부족한 게 뭐죠?

그대는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하지만 극단적인 정염이

강요하지 않았더라면 고백하지 않았을 여인을 불쌍히 여기세요. 그대는

내 무덤에 내 죽음의 원인으로 그대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게 하세요!"

그녀가 아무 소용없을 이런 말을 적어 넣었을 때

서판이 가득 차 맨 마지막 줄은 가장자리에 매달렸다.

그녀는 지체 없이 사실상 자신의 범죄를 고발하는 이 편지에다

이름을 새긴 보석 반지로 도장을 찍었는데, (입에 침이 말라) 눈물로

그것을 적셨다. 그리고 그녀는 부끄러워하며 하인 한 명을 부르더니

소심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가장 충실한 하인이여, 이것을 전하게,

내" 라고 말하고 나서 한참 뒤에야 "오라버니께!" 라고 덧붙였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551∼570행

 

  


그는 정복될 거야! 다시 해보아야 해. 내가 일단 시작한 일에

나는 결코 싫증내지 않을 거야. 내 몸에 숨결이 남아 있는 한 말이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시작한 일이 취소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시작하지 않은 것이 최선책이겠지. 하나 일단 시작한 이상

차선책은 그것을 끝까지 쟁취하는 거야.

내가 여기서 구애를 그만둔다 해도 그는 내 다담한 행동을

두고두고 기억하게 될 거야. 내가 여기서 그만둔다면 그 때문에

오히려 나는 경솔하게 변덕을 부렸거나 그를 시험해보았거나

그에게 덫을 놓은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내 마음을

부추기고 불태우는 것은 사실은 사랑의 신인데도

그는 틀림없이 내가 애욕에 제압되어 그러는 줄 알겠지.

간단히 말해, 죄를 짓고도 짓지 않은 것으로 할 수는 없어.

나는 편지도 썼고 구애도 했어. 나는 내 욕망을 드러냈어.

더 이상 아무 짓도 않는다 해도 나를 죄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앞으로 남은 일은 희망은 키울지언정 죄는 별로 키우지 않겠지."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는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그녀는 시도한 것을 후회하면서도 다시 시도하고 싶어했다.

그녀는 절도를 잃었고, 불행히도 거듭해서 퇴짜를 맞았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616∼632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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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le, Eurytios and Herakles at symposium. 600 BC. From Cerveteri.

 

 


그사이 여러 해가 지났다. 위대한 헤르쿨레스의 행적들은

온 세상을 메우고 의붓어머니의 미움을 충족시켰다.

그는 오이칼리아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다가 케나이움에서

윱피테르에게 서약한 제물을 바칠 준비를 했다. 그때 수다스런 소문이

한발 앞서, 데이아니라여, 그대의 귀에 들어갔으니, 거짓말과 참말을

섞기 좋아하고 처음에는 아주 작지만 거짓말을 통해 커지는 소문은

암피트뤼온의 아들이 이올레에 대한 사랑의 포로가 되었다고

알려주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는 그 말을 믿고 새로운 사랑의

소문에 주눅이 들어 처음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련하게도

눈물로 자신의 슬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뒤 곧 그녀는 "내가

왜 울지?" 라고 말했다. "시앗은 내 눈물을 보고 좋아할 텐데.

그녀가 이리로 오고 있으니 서둘러 계략을 짜야지,

할 수 있을 때, 다른 여자가 아직 내 침상을 차지하기 전에.

항의할까, 아니면 침묵할까? 칼뤼돈에 돌아갈까, 여기 머물까?

집을 나갈까? 아니 달리 뾰족한 수가 없으니 일단 가로막고 볼까?

멜레아그로스 오라버니, 내가 당신의 누이라는 점을

기억하고는 끔찍한 범행을 준비하여 시앗을 죽임으로써

모욕당한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입증하면 어떨까요?"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134∼151행

 

 


그의 피는, 마치 발갛게 단 무쇠를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담갔을 때처럼, 쉿쉿 소리를 내며 불타는 독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거기에는 절제란 없었다. 탐욕스런 화염이 내장을 삼키고,

전신에서는 시커먼 땀이 흘러내렸으며, 그의 힘줄들은

탁탁 튀는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독이 퍼져 골수마저

녹아내리자 그는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들고 소리쳤다.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여, 내 파멸을 보고 즐기시오!

즐기시란 말이오. 잔인한 분이여, 그대는 높은 곳에서 이 재앙을

내려다보며 잔혹한 마음으로 실컷 좋아하시오!

그리고 내가 내 적에게도, 그러니까 그대에게도 동정을

받아야 한다면, 이토록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고

고역을 위해서 태어난 내 이 가증스런 목숨을 거두어가시오.

죽음은 나에게는 선물이오. 의붓어머니가 주기에 알맞은 선물이오.

대체 이러자고 내가 이방인들의 피로 신전을 더럽히던 부시리스를

제압했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잔혹한 안타이우스에게서

어머니의 힘을 빼앗았던가요? 이러자고 내가 세 모습의

히베리아의 목자를 겁내지 않았으며, 케르베루스여,

머리가 셋 달린 그대를 겁내지 않았던가? 이러자고, 내 손들이여,

너희들은 힘센 황소의 뿔들을 눌렀던가? 이러자고 엘리스가,

스튐팔루스 호의 물결이, 파르테니우스의 숲이

너희들의 노고를 알았던가? 이러자고 너희들의 용기에 힘입어

내가 테르모돈의 황금으로 만든 허리띠를 가져왔으며,

이러자고 잠자지 않는 용이 지키던 사과들을 빼내 왔던가?

이러자고 켄타우루스족이 내게 대항할 수 없었고, 이러자고

아르카디아를 쑥대밭으로 만들던 멧돼지가 내 앞에서 몸을

사렸던가요? 이러자고 잃음으로써 자라나고 힘이 두 배로 늘어나는

휘드라에게도 끄덕없었던가요? 인간의 피를 마시고 살찐

트라키아의 말들과, 시신들로 가득 찬 구유를 보고는 그것들을

보자마자 내가 그 주인과 말들을 메어쳐 죽인 것은 또 어떤가요?

네메아의 거대한 사자는 내 이 팔에 목이 졸려 주워 있었소.

이 목덜미로 나는 하늘을 떠메고도 있었소.

윱피테르의 잔인한 아내는 고역을 부과하는 데 지쳐도,

나는 그것을 이행하는 데 지치지 않았소. 하나 지금 용기로도

대항할 수 없고 어떤 무기로도 대항할 수 없는 이상한 역병이

나를 엄습하고 있소.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불이 내 허파 속

깊숙한 곳을 돌아다니며 내 사지를 날름날름 먹어치우고 있소.

하나 에우뤼스테우스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소.

하물며 신들이 있다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겠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9권 170∼203행

 

 

 

헤라클레스와 케르베로스의 전투 장면, 흑회식 암포라 , BC 510경, 루브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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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 여인들』
    from Value Investing 2014-08-20 01:20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 두 사람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가 테바이에 사는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몰래 동침하여 얻은 아들이다. 제우스의 정실부인인 헤라는 남편과 딴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몹시 미워하여 틈이 날 때마다 그를 괴롭힌다. 그러나 제우스의 사랑을 받은 헤라클레스는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하여 테바이의 왕 크레온의 딸 메가라와 결혼한다. 그러나 그는 곧 헤라의 저주를 받아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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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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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ysichthon Sells His Daughter Mestra, Johann Wilhelm Baur(1607∼1640)

 

 


여신은 그자가 자신의 소행으로 어느 누구의 동정도 살 수 없게

되지 않았던들 남의 동정을 살 만도 한 그런 벌을 궁리했으니,

여신은 그자가 허기에 시달리다 죽게 할 참이었소.

하나 여신은 허기를 몸소 찾아갈 수는 없었기에 (케레스와 허기가

만나는 것을 운명이 금했기 때문이오.) 산의 여신들 가운데

한 명을, 시골에 사는 산의 요정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소.

'얼음처럼 차가운 스퀴티아의 가장 먼 변경에는 대지에

곡식도 나지 않고 나무도 나지 않는 황량한 불모지가 있다.

그곳에는 나태한 한기와 해쓱함과 오한과 수척한 허기가

살고 있다. 너는 허기에게 저 신성을 모독하는 자의 죄 많은

뱃속에 숨으라고 일러라! 그리고 어떤 풍요함도 그녀를

이기지 못하게 하고, 그녀가 싸움에서 내 힘을 이기게 하라!

길이 멀다고 네가 겁먹지 않도록 너는 내 수레와 용들을 받아

그것들을 고삐로 몰려 하늘을 날아가도록 하라!'

······

요정은 허기를 찾다가 그녀가 돌투성이의 들판에서

손톱과 이빨로 얼마 안 되는 풀을 뜯는 것을 보았소.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두 눈은 움푹 들어가 있고,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른 말라 갈라졌고, 입안은 태(苔)로 거칠어졌고,

살갗은 딱딱하게 말라 안에 있는 내장이 들여다 보였소.

그녀의 앙상한 좌골(坐骨)들은 음푹 들어간 허리 아래로 튀어나와

있었고, 배는 빈 자리에 불과했소. 그대는 그녀의 가슴이 허공에

매달려 있고, 척추의 뼈대에 간신히 붙들려 있다고 생각할 것이오.

그녀는 수척하여 관절이 굵어 보였고, 무릎은 부어올랐으며,

복사뼈는 지나치게 큰 혹처럼 툭 튀어나와 있었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782∼888행

 

 


그자는 더 많이 뱃속으로 내려보낼수록 더 많이 요구했소.

마치 바다가 전 대지로부터 강물을 받아들여도

그 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멀리서 흘러 온 강물들까지 들이키듯이,

마치 모든 것을 삼키는 불이 영양분을 거절하는 일 없이

무수한 통나무들을 불태우고 더 많이 받을수록 더 많이 요구하고

많을수록 그로 인하여 더욱더 탐욕스러워지듯이,

꼭 그처럼 불경한 에뤼식톤의 입은 그 모든 음식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더 많은 것을 요구했소. 그에게는 음식이 곧 음식을

먹게 되는 원인이 되었고, 먹을수록 늘 공복감을 느낄 뿐이었소.

······
하지만 마침내 재앙의 힘이 모든 재고를 다 먹어치우고

그의 중병(重病)이 더 많은 먹을거리를 요구하게 되자,

그 가련한 자는 제 사지를 찢어 그것을 제 입으로

물어뜯기 시작하더니 제 몸을 먹음으로써 제 몸을 먹였소.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834∼878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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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칼뤼돈의 멧돼지를 공격하는 펠레우스와 멜레아그로스. 기원전 6세기의 병 그림.

 

 


멜레아그로스는 녀석의 파멸을 안겨주던 머리에 한 발을 얹고는

이렇게 말했다. "노나크리스의 소녀여! 그대는 내게 권리가 있는

전리품을 받아 내 영광을 내가 그대와 나눠 갖게 하시오!"

그 자리에서 그는 센털이 곤두서 있는 가죽과 커다란 엄니들이

유난히 눈에 띄는 머리를 그녀에게 전리품으로 주었다.

그녀에게는 선물도 그렇지만 선물을 준 사람도 마음에 들었다.

하나 다른 사람들은 시기했고, 무리 전체가 웅성거렸다. 그들 중에서

테스티우스의 아들들이 팔을 내밀며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여인이여, 자, 그것을 내려놓고 우리 몫인 명예를 가로채지 마시오!

그대의 미색을 믿다가 속지 마시오. 사랑의 포로가 된 기증자가

그대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란 말이오!"

그리고 그녀에게서는 선물을, 그에게서는 선사하는 권리를 빼앗았다.

마보르스의 아들은 참다못해 분개하여 이를 갈며 "그렇다면,

남의 명예을 빼앗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행동과 말로 하는 위협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배우시오!" 라고 말하고는 설마 그럴 줄 모르고

서 있던 플렉십푸스의 가슴을 자신의 불의한 칼로 찔렀다.

톡세우스는 형의 원수를 갚고 싶기도 하고 형과 같은 운명이 될까봐

겁이 나기도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하나 오래 망설이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으니, 첫 번째 살인으로

아직도 뜨뜻한 창을 멜레아그로스가 아우의 피로 다시 데웠던 것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425∼444행

 

   

멜레아그로스 대리석상. 영국 국립 미술관.  

 

 

알타이아와 멜레아그로스의 죽음


그러고 나서 그녀는 네 번이나 장작개비를 불속에 던지려다

네 번이나 손을 멈췄다. 그녀 안에서는 어머니와 누나가 싸웠고,

그 두 가지 이름이 하나의 가슴을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때로는 일어날 범행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때로는 타오르는 분노가 그 붉은 빛깔을 그녀의 두 눈에 주곤 했다.

그녀의 얼굴은 어떤 때에는 무자비한 짓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같았고, 어떤 때에는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있다고 그대는

믿었으리라. 그녀의 마음속의 사나운 열기가 눈물을 말려버렸지만

그래도 또 눈물이 흘러 나오곤 했다. 바람과 조류(潮流)가 서로

반대쪽으로 낚아채면 배가 두 가지 힘을 느끼고는

갈팡질팡하며 그 둘에게 복종하듯이, 그와 다르지 않게

테스티우스의 딸도 상반된 감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번갈아 분노를 가라앉혔다가 그것을 다시 돋우곤 했다.

하지만 종내 누이가 어머니보다 더 우세해지기 시작하자,

혈족(血族)의 그림자들을 피로 달래고자 그녀는 불경(不敬)을

통하여 경건해지기로 작정했다. 죽음을 가져다주는 불이 세어지자

"저것이 내 혈육을 태우는 장작더미가 되기를!" 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462∼478행

 


 

펠레우스와 씨름하는 아탈란타, Black-figured hydria, 550 BC

 

 

 



칼뤼돈의 멧돼지를 협공하는 멜레아그로스와 여걸 아탈란테
, 기원전 6세기의 접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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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의 추락, 토마소 단토니오 만추올리(Tommaso d'Antonio Manzuoli), 1570 ~ 1571, 베키오 궁전

 

 

그는 아들에게도 가르쳐주며 말했다. "이카루스야, 내 너에게

일러두거니와, 중간을 날도록 하라. 너무 낮게 날면 네 날개가

물결에 무거워질 것이고, 너무 높이 날면 불에 타버릴 테니까.

그 둘의 중간을 날아라! 내 너에게 명령하노니, 너는 보오테스와

헬리케와 칼을 빼어든 오리온은 보지 말고 내가 인도하는 대로

진로를 잡도록 하라!" 그리고 그는 아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주며

몸에 익지 않은 날개들을 아들의 양어깨에 맞춰주었다.

아버지의 두 손은 떨렸다. 그는 아들에게 입맞추었다. 하나 그는 두 번

다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는 날개를 타고 떠올라

앞장서서 날며 자신의 동행자를 염려했다. 마치 높다란 둥지에서

부드러운 애송이들을 대기 속으로 데리고 나온 새처럼.

그는 따라오라고 아들을 격려하며 치명적인 기술을 가르쳤고,

그 자신 날개를 퍼덕이며 아들의 날개를 뒤돌아보았다.

떨리는 낚싯대로 고기를 잡던 낚시꾼이든, 지팡이에

기대선 목자든, 쟁기의 손잡이에 기대선 농부든 더러는

이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아들이야말로 신이라고 믿었다. 어느새 유노에게 봉헌된

사모스가 왼쪽에 있었고 오른쪽에는 레빈토스와 꿀이 많이 나는

칼륌네가 있었다. (델로스와 파로스는 지난 지 오래였다.)

그때 소년은 대담한 비상(飛翔)에 점점 매료되기 시작하여

길라잡이를 떠나 하늘 높이 날고 싶은 욕망에 이끌러

더 높이 날아올랐다. 얼마나 솟아올랐는지 가까워진 작열하는 태양이

그의 날개를 이어 붙인 향내 나는 밀랍을 무르게 만들었다.

밀랍이 녹아버리자 그는 맨 팔들을 아래위로 움직이며 허우적거렸다.

하나 노가 없어 공중에 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던 그의 입은 검푸른 바닷물에 삼켜졌고,

그 바닷물은 그에게서 이름을 따왔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닌 불행한 아버지는 "이카루스야, 이카루스야,

너 어디 있느냐? 내가 어느 곳에서 너를 찾아야 하느냐?

이카루스!" 하고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8권 203∼233행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대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le Vieux), 1560년경, 벨기에 왕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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