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이야기 - 물·불·흙·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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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이야기 - ···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_팀 제임스 / 한빛비즈

 

 

 

원소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원소 주기율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원소를 발견한 사람들, 발견되는 과정 등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원소는 자연이 우주를 요리하는 데 사용하는 재료이자 가장 순수한 물질이다. 요컨대 이 세상의 만물을 구성한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에 완전히 매료된 나머지 불이 현실을 구성하는 가장 순수한 물질이라 선언했다. 그에 따르면 만물은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든 불에서 탄생했다. 다시 말해 불은 원소였다. 자연에서 우리가 접하는 거의 모든 물질은 화합물이다.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독일의 실험가 헤니히 브란트는 평범한 물질 안에 원소가 갇혀 있음을 증명했다. 우리가 순수하다고 생각했던 물질 대부분이 실제로는 순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원소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에 누가 처음 발견했는지 알 수 없다. 구약 성서에는 금, , , 구리, , 주석, 황 등이 언급된다. 실제 원소 샘플을 얻지는 못하고, 그러한 원소가 존재하리라는 예측만 한 경우도 있다. 요한 아르프베드손은 페타라이트 덩어리 안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원소가 있다고 예측했다. 그 원소를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리토스라 불렀다. 실제 리튬이 순수한 형태로 분리된 것은 1821년 윌리엄 브랜디에 의해서였다.

 

주기율표의 탄생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공기는 질소와 산소의 혼합물이며 물은 수소와 산소의 화합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뒤 과학자들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폐기하고 진짜 원소를 얻기 위해 닥치는 대로 태우거나 녹이기 시작했다. 1789년까지 발견된 새로운 원소에 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한 라부아지에는 전에 33종의 원소가 수록된 목록을 발표했다.

 

현대 주기율표가 등장하기 전에는 1863년 영국 화학자 존 뉴랜즈가 완성하려 했던 주기율표가 가장 유명했다. 당시에는 원자 무게 측정법이 스웨덴 화학자 옌스 베르셀리우스에 의해 정립되어있었다(그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원소기호도 도입했다). 뉴랜즈는 베르셀리우스가 남긴 자료를 입수해 원소를 질량 오름차순으로 정렬했다. 이 작업을 하는 도중 음악에 쓰이는 음처럼 원소에도 주기적 규칙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같은 논리를 원소 표에 적용했다.

 

1932년에 이르러 인류는 원소가 원자로 존재하며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모든 원자가 똑같이 세 종류의 입자로 만들어졌다면 원소별 특성이 이토록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물리학자들이 현대 과학에 가장 중요한 이론 하나를 발견하면서 도출된 해결책이 마침내 주기율표의 최종 형태를 결정했다. 바로 양자역학이다. 주기율표를 만드는 과정에 도움이 된 양자역학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의 이론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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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이야기 - 물·불·흙·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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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에 담긴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원소 주기율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원소를 발견한 사람들, 발견되는 과정 등이 흥미롭게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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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아간다는 믿음 - UN 인권위원의 새로운 인권 이야기
서창록 지음 / 북스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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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학자, 인권활동가, 유엔 인권위원인 저자는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인권에 대한 이해와 관련 규범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화두로 삼는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는 인권의 좁은 경계를 벗어나 미래의 존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자고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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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머니로드 - 돈의 흐름을 바꾼 부의 천재들
장수찬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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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머니로드- 돈의 흐름을 바꾼 부의 천재들

_장수찬 / 김영사

 

 


 

돈 공부는 빠를수록 좋다. 돈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경제와 금융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다. S&P 글로벌 금융 문맹률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의 금융문맹률이 33%라고 한다. 142개국 가운데 81위이다. 특히 연소득 3천만 원이하 저소득층, 18~29세 젊은 층 그리고 70세 이상 고령층의 금융 이해도가 평균보다 낮았다. 그 결과는 오늘날 사회문제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청년을 대상으로 한 불법 대출 피해와 고령층의 디지털 금융 소외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역사 커뮤니케이터인 저자는 조선시대 돈의 흐름과 함께 국정의 운영, 문관과 무관의 관계, 부와 권력, 부의 흐름을 바꾼 거상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슷한 시기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가와 서양의 역사도 곁들인다. ‘돈의 흐름을 타이틀로 했지만 조선시대를 기점으로 한 작은 역사서이다. 저자는 돈이 만들어낸 세상을 이해하려면, 돈이 탄생한 역사부터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은 명나라에 병력을 요청한다. 우여곡절 끝에 명나라군이 조선에 들어왔다. 조선보다 시장경제가 앞섰던 명나라의 군병들은 조선의 물물경제 시스템에 당혹해한다. 당시 명군은 금속화폐인 은화를 가지고 다녔지만 조선의 화폐는 볼 수 없었다. 명나라 지휘부는 당황했다. 전장에서 병사들이 입고 마시는 군량 조달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명나라 장수들은 조선 정부에 군사에 대한 보급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관리들의 굼뜬 태도뿐이었다. 보급이 어렵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명나라 조정은 재빨리 인근의 요동 상인들을 조선에 보내 심각한 보급 문제를 해결하려했다. 이를 기점으로 그 후 각지의 명나라 상인이 조선에 진출하는 뜻밖의 시발점이 된다. 명나라가 조선에 풀어놓은 은화를 통해 조선의 천민 계층부터 양반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매력에 푹 빠진다. 조선후기 왜은의 유통과 상평통보(常平通寶)발행 역시 명나라 상인들이 영향을 준 은본위 경제권경험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 돈을 벌고 부를 성취하는 방법은 명예로운 지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신분제 사회였으니 당연한 이야기이다. 당시 조선에는 손부수(선전관, 부장, 수문장)삼천이라는 인사제도가 있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군 장교를 육사와 비육사 출신으로 나눠 커리어를 부여하는 것과 유사하다. 조선시대에는 선천(선전관 직책의 추천)을 얻어야 엘리트 군인으로 대접받았다. 이들이 청요직(핵심 직책)과 꽃보직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 군대가 출판은 물론 화폐주조까지 그 역할을 감당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 같은 군영에서 화폐를 제조할 적엔 최대 50~60%의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주전 이익을 크게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노임을 싸게 부를 수 있고, 분업화한 장인으로 구성된 군수공장이 있으며, 연료인 숯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위치라는 3박자를 모두 갖춘 데가 군대였기 때문이다.

 

 

조선에 화폐(상평통보)가 등장하고 사회 깊숙이 침윤하자 노동소득이 아닌 자본소득으로 부자가 되는 사람이 속출한다. 이들은 화폐로 많은 토지와 노비를 싼값에 거둬들여 막대한 차익을 남겼다. 더 나아가 상품 경제 발달로 지역명을 달고 상품화한 쌀이나 채소가 등장했다. 이를 잘 마케팅하고 판매해서 큰돈을 번 농사꾼이 각 지역에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이 생기면 꽉 막힌 신분제도에 동요가 일어나게 마련이다. 1784(정조8)5월 전라도에 사는 장익복이라는 사람이 무려 재산 2천 석을 나라에 바치며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 흉년이 들어 나라에서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자 장익복이 평민부자라는 명목으로 의연금을 낸 것이다. 거금의 의연금 덕분에 그의 신분에 조금 변화가 온다. 전주 감영 소속 군속에서 무관직인 방답진 첨사로 임명된다. 어느 날 임금의 부름이 있었다. 정조를 알현하는 영광을 누린다. 3품 첨사직을 얻는다. 장익복은 3년 후에 다시 곡식 2천석을 나라에 바친다. 장익복은 궁성을 경비하는 위장 직책이 주어졌다. 6년 후인 1793년 그는 곡식 3천 석을 나라에 바친다. 정조는 그의 충심에 감동해서 국왕 대리인이자 지방 사또인 장기현감에 제수한다. 시골농사꾼 장익복이 여기가지 오는데 1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가 수령 자리를 얻는데 들어간 비용은 곡식 7천 석이다. 오늘날의 시가로 따지면 약 1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장익복은 장기현감 직을 무사히 마쳤고 더 이상 벼슬길에도 나가지도 않았다. 고향 전주로 돌아온 장익복은 지역유지로서 기부활동에만 전념하면서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고 한다. 나갈 때와 물러설 때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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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머니로드 - 돈의 흐름을 바꾼 부의 천재들
장수찬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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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경제와 금융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다. 역사 커뮤니케이터인 저자는 조선시대 돈의 흐름과 함께 국정의 운영, 문관과 무관의 관계, 비슷한 시기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가와 서양의 역사를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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