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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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_리처드 플래너건 (지은이) | 김승욱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01-05 | 원제 The Narrow Road to the Deep North (2013)

 

 

왜 태초에는 항상 빛이 있는 걸까?”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전쟁의 상흔과 인간의 내면 심리를 들여다본 전쟁의 서사시 형식을 띠고 있다. 정말 왜 그럴까? 왜 태초에 빛이 함께 할까? 빛은 생명이고, 어둠은 죽음이기 때문일까? 이 소설엔 빛보다 어둠이 더 많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어둠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살아있었다. 그 빛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 비록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어둠이 웅크리고 있지만, 그 빛은 생명이다. 살아갈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42215일에 시작된다. 외과 의사이자 군의관이었던 도리고 에번스가 주인공이다.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하고 버마를 통해 인도를 손에 넣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일본군들의 표현을 빌리면, 오직 천황을 위해, 천황의 뜻으로 철로를 놓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인력은 일본군들에게 붙잡힌 아시아인, 유럽인이 포함된 수십 만 명에 이르는 노예다. 그중에는 이만이천 명의 오스트레일리아인 전쟁포로도 포함되어있었다. 노예와 전쟁포로들에게 주어진 연장이라곤 오직 무딘 도끼와 썩은 삼끈뿐이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헤쳐 가며 철로를 놓아야 했다. 그 철로를 라인으로 부른다.

 

 

이 죽음의 철로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 수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한다. 그 라인에서 죽은 노예노동자 중 사망자 수를 제각각 오만, 십만, 이십만으로 추정할 뿐이다.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이름은 이미 잊혔다. 그들의 영혼이 봉안된 명단도 없다. 작가는 그들에게 이 작은 책을 바친다고 한다.

 

 

도리고 에반스는 그 전쟁포로수용소(주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이 수용된 곳)에서 대령의 직책으로 포로 천 명의 부사령관 역할을 맡았다. 그 역시 그곳에서 3년 반 동안 전쟁포로가 되었다. 도리고 에반스의 그 때 기억과 현재의 삶을 오가며 소설이 진행된다. 그 처참한 환경에서 건강한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픈 사람, 심하게 아픈 사람, 죽어가는 사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 때,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이 그들의 마음속에 커다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특별히 그 부분(트라우마)에 주목한다. 그 역시 피해자였지만 일(철도공사)을 해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모두에게 중요했던 그 이야기를 그려주고 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가 전쟁의 참혹함을 다소나마 다독거려준다.

 

소설치곤 드물게 언더 라인을 긋고 싶은 대목이 많은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 행복이 현재와 미래와 자리 잡는다면, 불행은 오직 과거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은 생각이 들고, 위대한 책을 읽고 나면 반드시 자신의 영혼을 다시 읽어봐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대목도 마음에 새긴다. 이 책의 제목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17세기 바쇼의 하이쿠 기행문 오쿠로 가는 좁은 길의 영문판 제목에서 빌렸다고 한다. 소설에도 일본의 하이쿠가 종종 등장한다. 작가는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쳤다. 작가 리처드 플래너건은 이 소설을 통해 2014년 맨부커상 수상을 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12년을 이 작품 집필에 매달렸다. 다섯 개의 다른 판본을 썼다. 마침내 이 최종판을 내놓기까지..” 지독한 상실감과 그 상처를 회복하려는 사람들의 모습과 안타깝지만 그 길에도 동참 못하고 스러져가는 상한 몸과 영혼들의 이야기는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잔잔히 가슴에 남는다.

 

 

#먼북으로가는좁은길 #리처드플래너건 #맨부커상수상작 #전쟁의상흔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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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8-02-23 0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절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뷰네요. 팟캐스트에 나온 작가의 음성도 참 평화롭더라고요. 무언가를 이미 지나고 건너온 듯한 초월적 분위기가 묘했어요. 잘 읽었습니다.

쎄인트saint 2018-02-23 22:28   좋아요 0 | URL
전쟁이야기가 실린지라...초반에는 다소 마음이 불편하실듯 합니다만.. 후반으로 들어갈수록..전쟁이 끝난후..각기 그 트라우마를 극복내지는 변명하는 모습들을 바라보며..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어찌 한 사건을 놓고..이렇게 각각 다를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