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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 류시화의 하이쿠 읽기
류시화 지음 / 연금술사 / 2014년 6월
평점 :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 류시화 / 연금술사
1.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일본의 하이쿠를 읽는 일은 즐겁다. 우선 시가 짧고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닷물 한 컵에도 많은 사연이 있듯이 짧은 시(詩)라고 해서 그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2.
이어령 교수는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예를 들어 한국어에는 확대를 의미하는 접두어는 있지만 축소를 나타내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일본어는 그 반대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형식의 시를 만든 것은 일본인이다.”라는 말을 했다.
3.
책엔 상당히 많은 ‘하이쿠’가 실려 있다. 5.7.5의 열일곱 자로 된 한 줄의 정형시에서부터 요즘 조금씩 늘어나는 책 제목보다도 짧은 한 줄의 시도 있다. 언어 절제의 정수다. 각 詩마다 류시화 시인의 친절하고 깊이 있는 해설이 붙어 있지만 나는 詩만 읽고 느낌을 덧붙인다. 류시화 시인과 같거나 또는 다른 시각일 수도 있다.
4.
“산다는 것은 / 나비처럼 내려앉는 것 / 어찌 되었든” _소인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면 자신의 의지보다 바람의 바람이 더 많을 듯하다. 그러나 내 생각이 잘 못 되었을 수도 있다. 목적 없이 떠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는다. 나비에게 철학이 있을까? 나비가 ‘나는 왜 이렇게 돌아다니다 생을 마쳐야 하나?’하고 고민할까? 아닐 것 같다. 이 땅에 태어났으니 그저 자신의 몫만큼의 시간을 열심히 살다 갈뿐이다. 하물며 사람에게 이랴. 그러니 이제 그만 징징 거리자. 나비가 내려앉은 그곳. 내가 있는 이곳이 삶의 현장이다. 현존(現存)이다.
5.
“여름 소나기 / 잉어 이마를 때리는 / 빗방울” _시키
저절로 그림이 그려지는 詩다. 소나기는 햇살이 한창 따가울 때 도둑고양이처럼 다녀간다. 조용히 다녀가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양철 지붕을 달리듯이 다녀간다. 소나기가 지나간 도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뜨겁다. 단지 대지의 아쉬움 섞인 한숨이 묻어있는 흙내음이 전부다. 잉어도 비를 기다렸나보다. 이마를 내놓고 소나기를 맞는 것을 보면. 시원하겠다. 두드려주기까지 하니.
6.
“사람이 물으면 / 이슬이라고 답하라 / 동의하는가” _잇사
동의 안 했다간 일 나겠다. 여기서 상대는 역시 사람이 틀림없다. 시인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이슬이 가엾다고 생각하지 말자. 이슬을 통해 바라보는 꽃과 하늘은 곱기만 하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것은 우주의 시간 속 나의 삶의 시간은 그저 이슬 한 방울 맺히고 사라지는 것이다. 허무와는 차원이 다르다. 시간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이다.
7.
“힘주고 또 힘주어 힘이라고 쓴다” _산토카
글은 생각이 표현된 것이다. 글씨(체)는 생각에 힘이 보태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 중 글씨(체)를 연구하는 사람은 유명 작가나 정치인이 남긴 필사체를 보고 그 당시 그 글씨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까지 유추한다. 좀 오버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깊이 들어간다. 건강상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질병까지 거론한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인지라 기왕 확인되는 부분도 있고 확인불가인 상태도 있다. 어쨌든 글씨가 마음 상태에 따라 그 삐뚤거림이 달라진다는 것은 사실이다. ‘힘’이라고 쓸 것 같으면 제대로 힘을 주고 쓸 일이다. ‘희망’이라고 쓰고 ‘절망’이라고 읽지 말일이다.
8. “기침이 멎지 않는다 등 두드려 줄 손이 없다”
독거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큰 사회적 문제이다. 다각도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어르신들을 충분히 부양할 능력이 있는 자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쓸쓸히 보내시는 분들이 많다.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말이 있다. 마나님이 영감님에게 ‘당신 먼저 가요’ 한다. 대체적으로 마나님은 혼자 살 수 있어도 영감님은 혼자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려운 곳은 ‘효자손’으로 대신할 수 있어도 기침 할 때 등 두드림은 셀프가 곤란하다. 곁에 등 두드려 줄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다. 행복이다.
9. 정 책 읽을 시간이 없으면 詩를 읽을 일이다. 시가 어렵다고 지레 겁먹지 말자. 물론 진짜 어려운 시가 있긴 하다. 그런 시는 시인이 써놓고도 자기가 뭐라 써놨는지 모를 수도 있다. 시는 머리 아파? 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좀 더 솔직해지자. 시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기 싫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