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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생각 ㅣ 꿈꾸는 작은 씨앗 9
엘자 발랑탱 글, 이자벨 까리에 그림 / 씨드북(주)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아빠 생각』
엘자 발랑탱 /
씨드북
아이는 아빠를 그리워한다.
아빠가 저녁을 만들어 주신 지도 한참
됐다.
바다로 놀러가자고 한 약속도 까마득한 옛날이야기
같다.
섬에 가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모래성도
쌓고,
두꺼비집도 만들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텐데..
혼자 놀다가 재미없으면,
아빠하고 둘이서 실컷 모래밭을 달리기도
하고,
커다란 파도를 타면서 신나게 헤엄도 칠 수 있을
텐데 언제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빠가 학교로 나를 데리러 오시지 않은 지도 벌써 몇
주째다.
선생님은 우리가 수영장에 갈 때 부모님도 같이 올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아빠가 오실 수 없어서 속상하다.
수영이라면 아빠들 중에서 울 아빠가
최곤데.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11/pimg_7244541731274394.jpg)
아빠가 나한테 화를 내신지도 오래되었다.
이제는 집안 곳곳에 내가 어지러운 물건들이 잔뜩
인데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다.
아빠가 화를 낼 땐 무섭고 싫었는데 이젠 그 화를 내는 아빠 모습이
그립다.
엄마는 늘 바쁘고 피곤해 보인다.
설거지를 하다가 컵이나 접시를 깨뜨리는 일이
잦아졌다.
전에는 어쩌다 그랬는데 요즘은 자주
그렇다.
아마 생각이 흩어지거나 팔에 힘이 없어져서 그런가보다.
아빠가 동생에게 우유를 먹여주신 것도 몇 달이
지났다.
아빠는 소파에 누워 동생에게 우유를 먹여주다가 동생과 함께 잠이 든 적도
있다.
엄마와 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서로 얼굴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나는 아빠에게 줄 그림을 그린다.
“보고 싶은 아빠.
캉탱”
그림 속 아빠는 슬픈 표정이다.
우리 식구 모두가 집 근처 공원에 간 그림인데 아빠 얼굴은
우울하다.
동생은 유모차 안에 앉아서도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면서
좋아한다.
아빠와 함께 축구를 한지도 오래됐다.
한번은 아빠가 킥을 했는데 그 공이 내 얼굴로
날아온 적도 있었다.
내가 얼른 피해서 크게는 안
다쳤다.
공이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아빠 닮아서 순발력이
짱인가보다.
아빠가 미안해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아빠는 내가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은 고장 난지 두 달 이나
되었다.
베란다 전구가 나간지도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새것으로 못 바꿨다.
아빠랑 엄마가 말다툼을 한 지도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아빠,
엄마가 서로 말다툼을 하면 참 싫었는데 이젠 너무
조용한 것이 싫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11/pimg_7244541731274397.jpg)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돌아오실 때쯤이면 동생은 세 살이 될 거라고
한다.
내 계산으론 너무 까마득하다. 내가 잠들기 전에 아빠가 내 등을 간질이며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적도
까마득한 옛날 같다.
아빠를 보러 갈 때마다 아빠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녀석 많이 컸네!”
그리곤 아무 말 안하시다가 내가 일어날 때 쯤 되면
"엄마 말 잘 듣고,
동생 잘 보라"는 이야기도
하신다.
아빠에겐 차마 말은 못하지만 아빠는 갑자기 늙어버리신 것
같다.
나랑 다시 축구를 할 수 있을지도
걱정된다.
아빠가 빨리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시면 나는 슬프다.
울고 싶다.
아빠하고 둘이서 배꼽을 잡고 웃어본 게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생각해보면 내 이야기는 ‘엄청 힘든 일’은 아닐지 몰라요.
하지만 내겐 그런 걸요.”
아이의 아빠는 어디에 있을까?
아들에게 “녀석 많이 컸네!”하고 말한다는 것은 자주 못 본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크는 것을 먼저와 비교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뜸하다는 이야기다.
아빠는 '교도소'에 있다.
동화에선 아마도 거의 쓰지 않았던 소재였을 것
같다.
나도 처음 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지구상 어딘가에 이런 가정이 수없이 많이
있다.
차라리 아빠가 멀리 해외로 출장을 갔다면
모를까.
아빠가 교도소에 있다는 것은 그 가족들에게
정신적,
경제적으로 주는 상처가 크다.
물론 억울한 일로 잠시 또는 길게 갇힌 몸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교도소란 나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아이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지고 훌륭한 아빠가
교도소에 있다니 참 슬프다.
아이의 마지막 말이 가슴을
적신다.
“
‘엄청 힘든 일’은 아닐지 몰라요.
하지만 내겐 그런 걸요.”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911/pimg_724454173127439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