冊 이야기 2014-202
『심훈 시선』 심훈 / 지만지(지식을 만드는 지식)
1. “밤, 깊은 밤 / 바람이 뒤설레며 / 문풍지가 운다.
방, 텅 비인 방 안에는 등잔불의 기름 조는 소리뿐....//
쥐가 천정을 모조리 써는데/ 어둠은 아직도 창밖을 직히고,
내 마음은 무거운 근심에 짓눌려/ 깊이 모를 연못 속에서 자맥질한다.//
아아 기나긴 겨울밤에/ 가늘게 떨며 흐느끼는 고닲은 령혼의 우름소리/
별 없는 하눌 밑에 들어 줄 사람 없구나!” 1923년 겨을 ‘검은 돌’집에서
- 서시 ‘밤’ 전문
* 초판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림.
.... 일제하 암울한 땅과 하늘에서 ‘행동하는 양심’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부끄러움’사이에서 갈등하고 번민했던 시인 심훈. 그의 의식은 깊은 어둠 속에서 무거운 근심이 어깨를 누르는 가운데 연못 속으로 잠겨든다. 별도 하나 안 보이는 하늘은 하늘도 아니다.
2. “날마다 불러 가는 안해의 배,
나는 날부터 돈 들 것 꼽아 보다가
손가락 못 편 채로 잠이 들엇네
배ㅅ속에 꼬물거리는 조그만 生命
‘네 代에나 긔를 펴고 잘살어라!’
한마듸 祝福밖에 선사할 게 없구나.
‘아버지’소리를 내 엇지 들으리
나이 三十에 해 녾 것 없고
물려줄 것이라곤 ‘鮮人(센진)’밖에 없고나.
給仕의 封套 속이 부럽든
月給날도 다시는 안 올 상 싶다
그나마 失職하고 스므닷새 날.
電燈 끊어 가든 날 밤 燭불 밑에서
나 어린 안해 눈물지며 하는 말
‘시골 가 삽시다, 두더지처럼 흙이나 파먹게요’.
五官으로 숨여드는 봄
가을바람인 듯 몸소리 처진다
朝鮮 八道 어느 구석에 봄이 왓느냐.
불 꺼진 火爐 헤집어
담배 꼬토리 찾어내듯이
식어 버린 情熱을 더듬어 보는 봄 저녁.
獄中에서 妻子 잃고
길거리로 미처 난 머리 긴 친구
밤마다 百貨店 기웃거리며 휘파람 부네.
선술 한잔 내라는 걸
주머니 뒤집어 털어 보이고
돌아서니 카페-의 붉고 푸른 불.
그만하면 神經도 죽엇스렷만
알뜰한 新聞만 펴 들면
불끈불끈 주먹이 쥐어지네.
몇 百 年이나 묵어 구멍 뚫린 古木에도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 엄이 돋네
뿌리마저 썩지 않은 줄이야 파 보지 않은들 모르리.
_ ‘토막생각 - 生活詩’ 전문. 1932. 4. 24
....무슨 사족이 필요하랴. 이 시절에 태어났으면 분명 나의 자화상이리라.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가운데에서 이렇게 글로나마 마음을 달래고 그려 낸 일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3.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三角山이 이러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漢江 물이 뒤집혀 룡소슴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지기 前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한울에 날르는 까마귀와 같이/ 鐘路의 人磬을 머리로 드리바더 울리오리다/
頭蓋骨은 깨어저 散散조각이 나도/ 깃버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恨이 남으오리까..”
_ ‘그날이 오면’ 부분. 1930.3.1.
....그러나 그는 그날을 못 보고 1936년 9월 16일. 장티푸스로 치료받던 중 36세의 나이에 무거운 마음만 잔뜩 안고 이 땅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