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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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다가 이 詩가 마음에 꽂힙니다. 그래서 우선 옮겨 놓습니다.  이생진 시인의 시라고 합니다.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 빈자리가 차갑다 / 난 떼어놓을 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 방파제에 앉아서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 밑에서 코를 골았다 / 술에 취한 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 저 섬에서 한 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 달만 뜬눈으로 살자 / 저 섬에서 한 달만 그리움이 없어질 때까지...."


2. 그럴수 있을까? 딱 한달 만 살고 떠날 수 있을까?  한 달만에 그리움이 사라질 수 있을까? 가는 듯 다시 오는 파도 처럼 그리움도 그렇게 왔다 갔다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시가 이 책, 소설의 분위기를 한껏 표현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3. 책 제목도 참 잘 지었습니다. [섬, 섬옥수] 짐작하시겠지요. 이 책의 키워드는 '섬'입니다. 섬에 거주하는 섬주민들의 생각은 어떠한지 몰라도 나 같이 뭍에서 나고 뭍에서 자란 사람은 때론 섬에가서 위 시에 나오는 화자처럼 한 한 달쯤 있다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섬주민들에겐 죄송한 마음이지요. '내 삶의 현장이 너에겐 고작 쉼터냐?' 하는 힐문도 들리는 듯 합니다.


4. 섬처럼 자연과 기후에 민감한 곳이 없을 듯 합니다. 젊은 시절 여름 휴가를 섬으로 가게 되면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있지 않으면 웬만해선 섬을 휴가지로 안 잡았습니다. 언제 배가 묶일지 모르는 일이지요. 책의 첫 부분 역시 바람으로 시작하는군요. "목탁 소리가 들려온다. 광풍이다. 미친 바람이 목탁을 친다. 바다가 또 뒤집어졌다."


5. 섬 원주민들과 어찌어찌하다 섬에 흘러 들어온 타지인들의 어우러짐 속 풍경이 그려집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이야깁니다. 아, 물고기 이야기도 나오구요. 그런데 이 소설의 작가 이나미님, 여류 작가님. 낚시의 고수같이 낚시에 대해 어찌 그리 섬세하고 예리한 표현을 하셨는지 감탄입니다. 


6. 물살이 들고 나듯이 그저 그런 일상이 이어지던 섬나라의 어느 날. 폭풍을 뚫고 섬에 들어온 한 사내가 스토리 중심을 스쳐 지나갑니다. "디지기 전에 전국 팔도 유람이나 해보자 싶어 나섰당께. 다녀봉게 우리나라도 구석구석 안 예쁩디여? 히히히."  맞는 말입니다. 구석구석 예쁘다는 말.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세 달 밖에 못 산다는 말을 들은 그는 전 재산 정리해 절친한 친구에게 택시 한 대랑 전셋집 얻어준 후 여행 삼아 떠돌다 때 되면 아무데서나 죽을 작정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7. 섬이라는 곳이 그런 곳이었던가? 언제든 시퍼런 바닷물로 뛰어들 수 있는 포인트가 빈틈 없이 널려 있기에 그랬을까?  "직장 날리고 사기 당하고 돈 떼이고 이혼하고 부도 맞고 보증 서서 집 날리고......한 마디로 인생 실패자들이 오갈 데 없으면 섬으로 들어왔다."  섬은 산과 달리 오히려 포근함은 없다. 그저 사선(斜線)으로 내리찍는 바람밖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섬이 종착역이 되는가? 아마도 이런 의문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가 정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8. 책 말미에 문학평론가 최용호는 이 작품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나미의 소설은 세계를 보는 관계적 이해의 지평에서 자신의 신체적 사유로 사고하고, 인간의 생명과 자연 생태에 관여하는 생태적 윤리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땅끝섬. 땅끝이라는 공간 개념의 기점은 어디인가? 서울인가?  나는 너와 다르다는 마음의 표현인가?  원은 시작도 끝도 없지요. 우리의 삶 역시 끝이 시작이고, 시작이 끝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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