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여인의 편지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441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 지음, 이봉지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잉카 제국은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에서 가장 거대한 제국이었습니다. 잉카 제국의 행정, 정치, 군사의 중심은 지금의 페루인 쿠스코입니다. 안데스 문명은 BC 약 1,000년 경 현재 푸나라고 불리는 페루의 고원지대에서 싹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초기의 잉카족들은 유목민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2001년 페루의 새 대통령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마추픽추 산정에서 두 팔을 펼쳐 취임의식을 치뤘습니다. 원주민 출신 첫 대통령으로서 잉카제국의 영광을 기리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했습니다. 마추픽추는 '하늘의 정원', '공중 도시'로 불리는 수수께끼의 유적입니다. 해발 2,280 m 산 꼭대기에 세워진 계단식 성곽과 터, 누가 언제 왜 이런 신비스러운 건축물을 어떻게 세운 것인지, 어찌하여 사람이 절멸하고 폐허만 남았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1535년 소수의 스페인 군대가 정복해버린 잉카. 잉카 제국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왕권 다툼과 내분이 거대 제국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합니다. 



           from  "National Geographic"

           


잉카 제국과 마추픽추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1747년에 출간된 이 책 [페루 여인의 편지]는 프랑수아즈 드 그라피니의 18세기 베스트셀러입니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영어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그 인기에 영합해 다른 작가들에 의해 속편까지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대학의 프랑스문학 교과과정에 필수적인 작품으로 포함되기도 했답니다.


18세기 이 소설이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던 두 가지의 문학적 전통인 애정소설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을 동시에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질리아는 페루 잉카제국의 방계공주로 태양신을 섬기는 처녀들의 수장이며 또한 페루의 왕위 계승자 아자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혼식 날 아침, 그녀가 살고 있던 태양 사원에 난입한 스페인 군인들에게 포로로 잡혀 유럽으로 끌려갑니다. 이 소설의 첫머리에서 그녀는 약혼자 아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행복을 회고하며, 그녀의 사랑과 그리운 마음을 토로합니다.  


"아자! 사랑하는 아자! 당신의 연인 질리아의 외침은 당신에게 닿기 전에 아침 안개처럼 흩어지고 맙니다. 당신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내게 달려와 사슬을 부숴주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헛될 뿐입니다. 아! 어쩌면 내가 모르는 끔찍한 불행이 닥쳤는지도 모르겠군요. 만일 당신에게 더 큰 불행이 닥쳤다면..."


주인공 질리아는 그녀의 불안하고 암담한 마음을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될 연인 아자를 생각하며 치유와 인내의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편지가 엄밀한 의미에선 편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종이에 쓴 것이 아니고, 페루의 전통적 수단인 퀴푸를 사용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페루인들은 예로부터 색색의 끈 같은 것으로 매듭을 만들어 문자 대신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내용을 기록(표현)하기 위해선 엄청난 매듭이 필요했겠지요? 과연 인질로 잡혀간 처지에서 매듭의 재료인 색끈이 얼마나 제대로 공급이 되었는지 의구심을 갖게 만듭니다만..소설이니까. 이해해야겠지요. 이 소설은 또한 몇몇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뒤따르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만, 역사 소설도 아닌데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출간 초기 당시에 독자들은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설의 내적인 진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한 관점에서 소설을 읽어나갑니다. 


첫 편지는 스페인 군인들이 학살을 자행하고, 신전을 더럽히고, 신전 곳곳에 있는 귀한 장식물들 중 특히 금으로 된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벽에 입힌 황금 판까지 모두 벗겨내는군요. 질리아는 신전에 숨어 있다가 그  혼돈의 와중에 틈을 내어 도망치려 던 중에 잡히고 맙니다. 왕비의 복장으로 넘었어야 할 문을 질리아의 눈엔 야만인으로 보이는 그 무리들에 의해 질질 끌려나오게 됩니다. 그 때 질리아는 퀴푸(매듭)를 소지하고 있었군요.  "아, 사랑하는 아자! 내 마음 속에는 사랑하는 영혼이 느끼는 온갖 고통이 다 모여 있어요. 당신을 보면 그런 것은 깨끗이 사라지련만! 그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어요."


이 소설엔 연애 편지를 쓸 때 도움이 될 만한 인용문들이 많습니다. 정서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아, 다행히 질리아의 편지(키푸)가 감옥의 창문을 통해 밖에 던져 놓은 것을 그것을 아는 누군가가 주워 아자에게 전하고 '온갖 지혜와 방법'을 동원한 아자의 답장이 질리아에게 전해집니다. 아자의 답글은 간단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매듭 짓는 솜씨가 서투른 듯 합니다. 질리아의 글이 계속 이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당신 덕택이라는 것을 나는 결코 잊지 않습니다. 사실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장점은 모두 당신의 작품입니다. 장미의 화려한 빛깔이 햇빛 덕택이듯이 당신이 좋게 생각하시는 나의 정신과 감정의 매력은 모두 당신의 예지(叡智)덕택입니다. 내게 고유한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내 삶의 빛이여, 죽어가는 나를 살린 것은 바로 당신입니다. 만일 죽음이 당신과 나를 한 번에 거둬 갈 것을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나는 결코 삶을 보존하려 애쓰지 않을 것입니다."


시간이 흘러 질리아는 프랑스로 끌려갑니다. 그녀의 편지 글이 프랑스 사회에 대한 관찰과 비판으로 넘어갑니다. 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는 분위기로 연결됩니다. 이 소설의 역자인 이봉지 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프랑스 문학사에서 이국취미에 대한 관심은 크게 외부적인 것과 내부적인 적으로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즉, 유럽 외부 세계의 문물소개와 비유럽인에 의해 관찰된 유럽 사회 묘사입니다. 이 [페루 여인의 편지] 이전에 출간된 이 경향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1731년 출간된 아베 프레보의 [마농 레스코]가 있습니다. 그 후에 나온 작품들 중엔 볼테르의 [캉디드]가 있고, 외부인에 의한 유럽 사회 관찰의 범주에 속하는 소설 중엔 몽테스키외의 [페르시아 편지]가 거론됩니다. 


주인공 질리아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이는 그 당시 프랑스는 그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 폄하 현상입니다. 불합리한 여성 교육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 여성에게 불공정한 결혼 제도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여성인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다고 합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이 소설이 18세기의, 그리고 프랑스 문학사를 통틀어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소설의 하나로  인정받게 된 것은 여성 문제에 대한 이러한 심층분석에 기인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프랑수와즈 드 그라피니는 1695년 당시 독립국이었던 로렌 공국(현재 프랑스 사북부 로렌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같은 지방의 귀족인 프랑수와 위게 드 그라피니와 결혼했으나 금전 문제와 남편의 폭력 문제로 불화. 이들 부부 사이에 세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모두 유아기에 죽었다고 합니다. 냠편 역시 7년간의 별거 생활 끝에 사망합니다. 볼테르의 도움을 받으나 불편한 관계가 발생되어 파리로 이주하게 됩니다. 편치 못한 파리 생활 중에도 작품 활동을 계속했고, 이 [페루 여인의 편지]는 그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다고 합니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습니다. 이 작품은 초판 이후 30년 동안 46판이 출간 되었다고 합니다.  


"존재의 즐거움, 많은 눈먼 인간들이 잊어버린, 심지어는 아예 모르고 지내는 이 즐거움, 내가 있다,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이 감미로운 생각, 이 순수한 행복을 기억한다면, 그것을 즐길 줄 알고, 그 가치를 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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