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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 루나 + 블랙박스와의 인터뷰 + 옛날 옛적 판교에서 + 책이 된 남자 + 신께서는 아이들 + 후루룩 쩝접 맛있는
서윤빈 외 지음 / 허블 / 2022년 5월
평점 :
『2022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_서윤빈 외 / 허블
인간의 뇌엔 뇌가소성이라는 것이 있다. 뇌세포와 뇌 부위가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습이나 여러 환경에 따라 뇌세포의 성장과 쇠퇴가 이뤄진다. 특히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에선 오래된 신경세포는 소멸하고 새로운 신경세포가 생성되는 매우 활발한 뇌가소성을 보인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신경과학적 차원에서 볼 때는 신경가소성이라고 하는데 이는 뉴런사이의 연결 강도의 변화를 말한다. 신경 사이의 연결이 강해질 수도, 약해질 수도 있다. 뇌세포의 자생력이 그만큼 강하다면, 사후에도 인간의 뇌를 활용해 뭔가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머리아플지도 모르는 뇌 이야기부터 시작한 것은 순전히 이 소설 때문이다.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엔 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 중 김필산의 「책이 된 남자」는 뇌와 관련된 스토리이다. 소설은 크게 두 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레오라 불리는 레오나르도 브라촐리니라는 책 사냥꾼(또는 책 수집가)과 레오의 시대와 차이가 나는 네메시우스 콤니무스라는 이와 알 라시르라는 이의 만남이다. 레오는 오래 된 수도원을 방문해서 소문만 들었던 책(선대의 책 사냥꾼들 중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책)을 한 권 발견한다. 책 제목은 『죽음과 지혜의 책Ⅰ』이다.
네메시우스 콤니무스는 콘스탄티노플리스의 이름난 장군이었던 아버지의 유산으로 물려받은 저택과 재산으로 경제적으로 제법 풍요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7세 때부터 모국어인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고전 라틴어와 이국의 아랍어까지 능통한 언어의 달인이다. 그는 아랍어로 쓰인 책들을 수집해 라틴어로 번역했다. 그의 꿈은 아버지의 유산을 활용해서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책을 수집하고, 명성 있는 연금술사를 후원해서 그들이 쓴 책을 모아 장대한 도서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알 라시르는 연금술사이다. 수상한 점이 많지만, 네메시우스는 알 라시르가 (기꺼이 그의 후원자가 될 만큼) 역량 있는 사람으로 추측하고 있다. 알 라시르는 바그다드 외곽의 거의 무너져 가는 성탑에 산다. 세간에선 그 탑을 ‘저주의 탑’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그 탑 근처에도 가기를 싫어한다. 그것은 알 라시르의 기괴한 연금술 실험이 ‘죽음’을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브라힘이라는 유대계 상인의 연결로 네메시우스와 알 라시르가 만난다. 알 라시르에겐 행운이고, 네메시우스에겐 악연이다. 알 라시르는 네메시우스에게 인간의 생이란, 대수학적 계산이라고 한다. 즉 그의 연구 주제가 죽음의 대수학적인 해석이라는 이야기다. 이어서 삶과 죽음,영생에 대한 다소 장황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제는 알 라시르가 네메시우스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그의 ‘뇌’가 탐이 났기 때문이다. 저항불가능한 상태의 네메시우스는 결박되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그의 두개골이 열리고 그의 ‘뇌’는 절편처럼 썰려 ‘책’이 된다. 그 책이 바로 책 사냥꾼 레오가 찾은 『죽음과 지혜의 책Ⅰ』이다.
독자여, 무엇이든 물어보라. 책이 대답할 것이니.
레오는 오랜 시간동안 책과 씨름하면서 답을 얻기 위해 애쓴다. 결국 답을 얻는다. 책과 대화가 이뤄진다. 책에 잠긴 네메시우스는 레오에게 알 라시르에게 복수를 해달라고 요청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러나 레오가 도와줄 여지는 있었다. 『죽음과 지혜의 책Ⅱ』에 연금술사 알 라시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작가 김필산은 물리학과 인지과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단초는 2006년에 작가가 읽었던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와 대니얼 데닛의 공저 『이런, 이게 바로 나야!』라는 책에 실린 아인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아인슈타인 뇌의 모든 뉴런 연결 상태와 시냅스 강도를 책으로 적어놓는다면, 그 책은 아인슈타인 자체가 되어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 글의 구성이 탄탄하다. 적절히 팩트를 추가해서 픽션이 아닌 팩션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스토리 구성도 중요하지만, 등장인물의 이름 명명에도 나름대로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이끌어간 것도 작가의 역량이다. 차기 작품을 기대한다.
#제5회한국과학문학상수상작품집
#허블
#쎄인트의책이야기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