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과 한숨 -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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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한숨 - 내가 경험한 중국, 문학, 그리고 글쓰기

_옌롄커(閻連科) / 글항아리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권력과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 때문에 나는 지금 보통 사람들과 보통 마음, 보통 사건들에 대한 감수성과 장악력을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의 작음에 대한 민감성과 추구를 상실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력과 정치의 글쓰기 측면에서 말하자면, 나는 무겁고 크면서도 작고 가볍고, 촘촘하고 단단하면서도 성기고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가 편차와 궤도 이탈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도로 집중된 권력과 상대적으로 느슨한 하늘 아래서 나는 권력 집중의 미세먼지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느슨한 하늘 틈새로 새어나오는 한 줄기 햇빛이 미세먼지에 던지는 미소와 화해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극도로 집중된 권력이다.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옌롄커는 그래서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다. 젊은 시절에는 죽어라고 글을 썼다. ‘단편소설은 하룻밤이면 다 썼고 중편소설도 한 주를 넘기지 않았다거의 소설 제조기에 가깝게 글을 썼다고 한다. 주로 무엇을 대상으로 썼는가? 바로 윗글에 답이 나와 있다. 특히 ‘(중국)사람들의 머리 위에 있는 권력과 정치, 사회, 현실에 대한 관심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중국 당국의 언론 · 정보 통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옌롄커는 최근 국내 계간지 '대산문화'에 보낸 기고문에서 "후베이의 우한,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사람이 죽고 가정이 파괴돼 귓가에 사람들의 곡소리가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미 통계 숫자의 호전으로 인해 위에서 아래로, 전후좌우로, 경축을 준비하는 북소리와 가공송덕(歌功頌德)의 노랫소리를 듣고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시신이 채 식지 않고 곡소리가 멈추지 않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영명함과 위대함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옌롄커의 이러한 발언은 중국내에서 거친 비판과 고발이 되었음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 책은 옌롄커가 201410월 체코 카프카 국제문학상 시상식에서의 연설문과 미국 듀크대학 교수이자 작가의 역자인 카롤로스 로하스의 초청으로 미국 듀크 대학과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일련의 대학에서 했던 강연의 기록과 녹취를 정리한 것이다.

 


글로 정리된 작가의 강연은 작가의 조국인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겪은 느낌과 함께 중국에서 문학, 문학인의 위치와 작가가 생각하는 문학 그리고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진솔하면서 중국 지도부의 신경을 자극시킬 만한 내용이 적지 않게 담겨있다.

 

 

날이 갈수록 나는 진정한 말이란 인간 영혼의 호흡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깊이 공감하는 말이다. 작가가 괴로워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 또는 글이 인간 영혼의 호흡이라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중국에서의 문학인으로의 작가의 존재는 수없이 많은 자기검열을 통과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 있다고 탄식한다. 과연 영혼이 실린 글을 쓰고 있는가 하는 자기성찰이다. 내 판단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옌롄커는 목숨 걸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물론 본인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이 책 역시 중국내에선 출간이 되었다는 이야길 못 들었다(보나나마 금서(禁書)). 한국과 일본, 미국에서만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의 글쓰기 환경에서 평생 글을 썼는데도 쟁론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작가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선 옌롄커를 따라 올 사람이 없다. (레닌의 키스)을 내면서 군에서 쫒겨 나지를 않나, 기껏 힘들게 장만한 집을 정부에 그냥 뺏기지 않나, 중국내에서 출간된 책보다 해외에서 출간된 책이 많지 않나, 누가 옌렌커를 따라오겠는가. 금서(禁書)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작품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중국에 특정지어 본다면 중국내 금서 작가는 확실히 해외에서 인기가 좋은 것은 사실이다. 책도 잘 팔리고, 이곳저곳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몇 년 전에 중국의 한 작가가 인민폐 10만 위안(한화 약 1700만 원)을 중국의 출판 기구에 뇌물로 주면서 자신의 소설에 금지와 비판의 조치가 내려지게 해달라고 하는 개콘같은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문학에 있어서 검열 제도는 아주 폭력적인 가장이 말을 충분히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내리는 회초리와 훈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말을 듣다보면, 그 회초리와 훈계가 일관성이 없다. 마치 그래도 말을 들으려고 애쓰는 자식에겐 회초리를 들어도 시늉만 낼 것 같다. 검열의 내용(쓰지 말아야 할 것)은 작가들 모두 너무 잘 알고 있다. 문제는 그 검열기구 조직 내 집행자들 간에도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검열이 검열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권력이 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중국에서 특히 중요하게 여기는 관계가 이곳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다. 검열을 집행하는 권력이 임의로 통과될 수 없는 책을 통과시켜 출판할 수 있게 해주고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되어야 할 책을 통과시키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관계는 곧 금품의 오고 감이라는 것의 다른 표현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또는 검열집행자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어서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중국 사회주의 문학의 가장 뚜렷하고 독특한 특징은 전업 작가 제도이다. 내놓고 표시하는 화이트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반면 옌롄커는 자타가 인정하는 블랙리스트). 중국의 전업 작가 제도는 제도와 권력이 문학과 사상, 예술을 규제하기 위한 행정 시스템에 속한다. 가장 큰 장점은 재능 있는 수많은 작가가 특별한 공적도 없이 문학예술의 끊임없는 탐구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짧은 대목에서 언더라인을 긋는다면, ‘특별한 공적도 없이이다. “전업 작가 제도의 가장 큰 폐단 가운데 하나는 작가들로 하여금 타성에 빠져 창조성을 잃게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침묵과 한숨의 원제는 沈默 與 喘息(천식)이다. 천식은 이미 호흡기 질환의 병명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발작적으로 호흡이 곤란한 병을 의미한다. 침묵과 한숨이란 책 제목이 어딘지 허전해서 원제를 보니 천식으로 되어있는데, 천식이 한숨, 한숨 돌리다란 뜻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옌롄커가 이 책에 담은 내용을 보면, 한숨 정도가 아니다. 중국 문학의 현주소를 일종의 고발 형식으로 표현하기도 했기에 책 제목을 침묵과 탄식(歎息)으로 번역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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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9-28 1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saint님의 작명센스 좋네요. 내용으로 보면 침묵과 탄식이 맞을것같습니다.

쎄인트saint 2020-09-28 22:37   좋아요 1 | URL
예...한숨은...좀 그렇더군요...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