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정체> 6장을 읽고 있다. 6장의 제목은 '희망이 세상을 바꾼다 : 조지 맥도널드, 오스카 와일드, 프랭크 봄의 동화들'이다. 절망의 연속인 현실세계지만 '희망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의 힘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엊그제 읽은 조지 맥도널드 부분은 이미 희미하게 지워진 기억으로 존재(하기는 하니)의 흔적을 남긴 상태에서 오늘 오스카 와일드 부분을 읽었다. 오스카 와일드, 그러고 보면 유명한 동화 <행복한 왕자> 말고 읽은 게 뭐가 있지? 책을 읽으면서 아아 행복한 왕자를 오스카 와일드가 썼지, 했으니 뭐 말 다했지.

이 책 <동화의 정체>에는 각 장마다 인용구가 배치되어 있다. 이 인용구들이 만만치가 않아. 6장의 인용구는 다음과 같다.


미래는 가능성의 형태만을 취한다. 미래의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은 당위('반드시')이다.

미래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때 - 순수하게 형식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되고 합리화된 지식을 제외하면 - 미래는 통과할 수 없는 매질이나 단단한 벽처럼 보인다. 벽의 반대편을 보려는 노력이 좌절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이와 함께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당위(유토피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미래에 걸려 있는 이익과 의무가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간직하고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최초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미래는 가능성의 형태만을 취한다. 미래의 가능성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은 당위('반드시')이다.

미래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할 때 - 순수하게 형식적인 방식으로 체계화되고 합리화된 지식을 제외하면 - 미래는 통과할 수 없는 매질이나 단단한 벽처럼 보인다. 벽의 반대편을 보려는 노력이 좌절될 때 비로소 우리는 굳건한 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나아갈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이와 함께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당위(유토피아)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미래에 걸려 있는 이익과 의무가 어떠한 것인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간직하고 있는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며,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최초의 통찰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 카를 만하임(Karl Mannheim)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Ideology and Utopia』 (1939)



내 경우, 사회의 모습, 세상이 돌고 있는 장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각 장 읽기를 시작하기 전에 한참을 머뭇거리게 되는 이유다.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생각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처지라 또렷한 답이나 방향을 찾기는 어렵지만 고민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인용구를 각 장의 내용에 적절하게 뽑아낸 저자에게 감탄하고 고마워한다.(각 장 앞의 인용구 뿐만 아니라 글 사이사이에도 엇! 싶은 구절들이 많다. 질문을 던지게 되는.) 마침 독서모임에서 한 분이 '이데올로기/유토피아' 화두를 던져주셔서 생각하던 차였다. 펼친 책에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라고 나와서 더 눈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모든 말과 글을 내 경우에 가져다 대입해보는 습관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지만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내 경우를 생각하고 주변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고 이 사회의 경우를 생각하고 다른 사회의 경우를 생각하고. 그렇게 경계를 넓혀나가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에만 대입하고 거기에 머무르며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늘 염두에 둔다. 그러나...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마찬가지다.ㅠㅠ

음음 아무튼, 오스카 와일드.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오스카 와일드의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가진 건 없고 전자도서관에 있는 책을 일단 찜해둔다. <행복한 왕자>를 한번도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못했는데 역시 사람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말은 동화를 읽고 단순하게 권선징악만 생각했을 뿐 그 이면의 의미에 대해서는 고심해보지 않았다는 말이다. 맘에 안 들어! 이게 뭐야! 말도 안 돼! 이런 반응들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해석이나 작품해설을 보고 난 후에 그 작품을 다시 읽을 필요를 새기게 되는 지점이다. 그런 경험 있지 않나? 소설을 한 편 읽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작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를 때, 그 소설을 해석한 비평가의 글을 읽으면서 아! 그런 이야기일 수 있구나! 깨닫게 되는. 어쩌면 그 또한 작품을 보는 눈을 한편으로 치우치게 하는 하나의 지침(?)이 되기도 할 테지만. (그러므로 작품 해설을 읽을 때조차도 한쪽으로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잣대를 잘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그러려면 잣대를 잘 세워두어야 한다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한다는... 도돌이표의 굴레...@@) 어쨌거나 그래서 <행복한 왕자> 등의 동화들부터 다시 읽어보고 다음으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을...까 말까 하면서 도서관 보관함에 담아두었다.


"유토피아가 그려지지 않은 지도는 쳐다볼 가치도 없다. 인간성( Humanity)이 정박하는 나라는 유토피아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에 정박한 인간성은 세상을 둘러보다가 더 좋은 나라가 눈에 띄면 닻을 올린다. 진보란 유토피아의 실현이다." - 225 (오스카 와일드 『사회주의 하에서의 인간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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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2-07-0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행복한 왕자>의 동상과 제비는 보면서 종(?)을 초월하는 따뜻한 우정이 느껴졌어요. 와일드가 동성애자라서 동상과 제비의 관계를 동성애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동성애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요. ^^;;

난티나무 2022-07-02 16:56   좋아요 0 | URL
넵 그래서 동화부터 다시 읽어봐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읽으면 더 많은 것이 보이고 느껴지겠죠.^^

그레이스 2022-07-02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스카 와일드의 묘비명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의 삶과와 심리, 생각이 중첩되어 있는...!

난티나무 2022-07-02 17:02   좋아요 1 | URL
저 묘비명 찾아보고 왔어요.^^;;;; 못 들은 체 하자는 말 좋으네요. 마음 아프기도 하고….

그레이스 2022-07-02 17:20   좋아요 0 | URL
예, 고독해보이기도, 비장해보이기도 하죠? 넘 가슴아팠어요. 안타깝기도 하고...!
 















한 달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한 권의 책을 읽기에는 긴 시간인데 어째서 매번 말일에 끝내지 못해 허덕이는지? 미스터리. 하루를 남겨놓고 저녁에, 아침에,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사명감(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으나 끝내야 한다는 강박 ㅋㅋ) 비스무리한 것에 시달리며 완주. 재독임에도 처음 힘들었던 부분이 새롭게 힘들었다. 신기하다. 조금 나아져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은 망상이었던 걸로. 공부한 게 없으니 똑같이 힘들지? 역사에 무지해서 다시 읽어도 @@. 당연하다. 성서 이야기도 마찬가지. 그러나 견디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거다 러너는 11장에서 독자의 카타르시스를 이끌어내며 매우 고맙게도 책 전체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준다. 10장까지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마무리가 될 것이다. 밑줄을 치다가 플래그를 붙이다가 포기한 챕터가 11장이다. 전체가 밑줄감이다. 달달 외우고 싶다. 밑줄긋기로 옮기기도 불가능하다. 챕터 전체를 다 옮겨야 할 테니. 11장의 첫 문장은 그리 어렵지 않으니 외워두어야 한다. 


"가부장제는 거의 2500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남성과 여성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인 창조물(historical creation)이다."(373) 


남성을 '적'으로 여기지 않고 남성 집단 전체를 지배집단으로 간주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마찬가지로 여성 집단을 뭉뚱그려 피지배집단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는 관점으로, 가부장제가 남성과 '여성'에 의해서 만들어져 유지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부록-용어정리 부분도 좋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사용하는 데 있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롭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 


책 속의 '가부장제'는 형체 없이도 내 옆에서 아직 살아숨쉬고 있고 나는 자주 숨이 막힌다. 거기서 걸어나오라고, 그러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만 실천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따르고 뼛속까지 가부장제를 내면화한 사람이 그걸 완벽하게 벗어던질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 또한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쉽게 생각하는 태도일 것이다. "여성들은 이중적 삶을 산다. 전체 문화의 일원으로서 그리고 여성문화의 참여자로서."(418) 나도 그렇다. 그 이중적 삶이 더이상 구분되지 않을 때가 올까, 가끔 회의가 들기도 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세상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나가는 과정은 지난한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거기에 따르는 회의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을 하는 것. 희망은 사람을 꿈꾸게 한다는 말을 가볍게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지 않으면 어쩌란 말인가. 흉흉하고 시대착오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 속에서도 단단히 정신을 붙들어매는 것, 내 주변의 가부장적 관념들을 깨부수는 것, 내 안의 내면화된 가치관을 벗어버리는 것, 함께 이야기하고 표현하고 분노하는 것. 책을 한 권 읽을 때마다 다시 다짐하기. 익숙한 습관으로 돌아가는 건 너무 쉬우니까. 


6월에도 (조금 힘들었지만) 참 좋은 독서였다. 거다 러너 책 좀 더 번역해서 내주면 좋겠다. 다른 책 두 권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와 <왜 여성사인가>는 품절이다...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두 단계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396) 




* 맞춤법  

- 42 : 7줄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로서' => 으로서 ('서' 빼고 그냥 '으로'만 써도 될 듯)

- 59 : 마지막 줄 '양성이 모두 수렵에 참여했다고 믿다.' => 믿는다.

- 321 : 밑에서 7줄 '성서의 창조설화에 대해 도발적인 해석을 내놓다.' => 내놓는다. 

- 355 : 밑에서 6줄 '기원적 650년경' => 기원전

- 415 : 15줄 '성차별주의에 의해 서로로 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다.' => 서로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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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6-30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오 난티나무 님 글은 언제나 좋지만 이 글은 참 특히나 너무 좋네요. 한편으로는 제가 다 읽기 전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아니, 다 읽고 나서 읽었기 때문에 더 좋은걸까요?

읽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 역시도 어째서 왜 때문에 매달 말일에 끝내는건지 원... ㅎㅎ
우리 다음달에도 힘냅시다, 난티나무 님!!

난티나무 2022-07-01 04:12   좋아요 1 | URL
매번 감상만 남기는 글인데도 늘 좋다고 해주시니 부끄럽습니당.^^;;
한권 한권 읽은 책을 책장에 꽂는 재미가 쏠쏠합니다.(응?) ㅎㅎㅎ
한 달 왤케 짧아요? 책 읽을 땐 시간 좀 늘려놓으면(아님 일시정지) 좋겠네요.ㅋㅋㅋㅋㅋ
7월에도 열심히!!!!

거리의화가 2022-07-01 13: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록-용어정리 와~ 맞습니다. 이 좋은 책을 많은 분들이 읽어야 하는데ㅎㅎㅎ 11장 저도 전체를 다 외우고 싶을 정도로 좋았어요. 저는 쫓기듯 읽고 싶지 않아서 일찍 끝내서 그나마 홀가분했습니다.

난티나무 2022-07-01 17:28   좋아요 1 | URL
맞아요 거리의화가님~ 필독서 지정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필독서로 지정되면 좋겠다고 썼다가 지웠어요.ㅋㅋㅋ
저도 이번달에는 일찍 끝내는 것을 목표로!!!!!!! 👍👍👍

독서괭 2022-07-01 16: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1장 정말 좋았어요! 독자를 배려하는 거다러너님 ㅋㅋㅋ 서문과 11장에서 웅장해지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난티나무 2022-07-01 17:29   좋아요 2 | URL
저 11장만 총 세 번 읽었더라고요. ㅎㅎㅎ
맞아요 서문도 좋죠. 틈틈이 기억 가물해질 때마다 서문과 11장을 챙겨읽어야 겠습니다!!!!^^

공쟝쟝 2022-07-0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도요! 전 그냥 결론만 말하면 11장 형광펜 다 발라버렸어요 ㅋㅋㅋ 제 책 보시면 막 읽는 자의 흥분이 느껴지실 걸요?ㅋㅋㅋㅋ 아주 지독합니다 ㅋㅋㅋㅋ
저는 난티님이 회의하고 안주하고 싶어하는 모든 흔적까지도 용감하게 쓰시기를 독려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익숙한 습관으로 돌아가는 결론이라도 써두는 것이 뒤에올 여성들에게 좋다고 봅니다. 5천년을 못썼으니 지금 쓸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을 누려야죠. 글을 쓰고 페미니즘을 공부한 많은 여성선배들과 함께 읽고 쓰는 용기를 북돋는 여성주의 읽기 동료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감사를 표현합니다! 임.파.워.링!!!

난티나무 2022-07-08 00:40   좋아요 0 | URL
저는 다 칠하면 나중에 다시 보기 싫어질까 봐(설마?!) 소심하게 표시...ㅎㅎㅎㅎㅎ

다섯 줄 적었다가 다시 지우고 ㅋㅋㅋ 공쟝쟝님 댓글 보면 왜 매번 이런지 알 수가 엄따...@@ 제가 많이 좋아하나 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 추측이 아니고 기정사실인데! ㅎㅎ 이미 고백해 놓고!☺️)
계속 독려해 주세요~ 저도 선배와 동료들을 본받도록 하겠습니돠~!!!^^ ❤️🙏❤️
 
















눈 몇번 감았다 뜬 듯한데 오늘이 6월 하고도 27일... 재독이기는 하지만 처음 읽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글을 쓰지 못해서 시작 알림과 동시에 감감무소식.ㅎㅎㅎ 아닙니다, 읽고 있어요. 읽고'는' 있어요. 밑줄도 새로이 많이 긋고 있답니다. 화들짝, 27이라는 숫자에 놀라 되는 대로 책을 펴고 밑줄 몇 군데 가져와봅니다. 인증 페이퍼..^^;;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면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에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138~139 / 4. 여성노예)


"남성들은 그들의 직업 혹은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에 근거한 계급위계 속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그들의 계급위치는 평범한 외관상의 표시 - 복장, 거주지역, 장신구 착용 혹은 장신구 없음 - 에 의해 표출된다. MAL§40 이래로 여성들에게 계급구분은 그들을 보호하는 한 남성과의 관계 - 혹은 그런 관계가 없음 - 와 그들의 성적 활동에 근거하고 있다. 남성들에 의해 보호받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들'과, 남성들에 의해 보호되지 않은 채 거리에 나가서 자신들의 서비스를 자유롭게 파는 '평판이 나쁜 여성들'로 나눠진 것은 여성들에게는 기본적인 계급구분이었다. 그것은 하층계급 여성들에 대한 경제적·성적 억압과는 대비되는 상층계급 여성들의 제한된 특권을 표시했고, 여성들을 두 개의 집단으로 분리하였다. 역사적으로 그것은 여성들 사이에 계급동맹이 형성되는 것을 방해하였고, 페미니스트 의식이 형성되는 것도 막았다."

(248 / 6.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고대국가는 가부장제의 형태 속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계와 계급특전은 국가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데 근본적이었다. 따라서 감히 베일을 쓰고 거리에 나타나는 매춘부는 불온한 병사나 노예만큼이나 사회질서에 큰 위협이었다. 딸들의 처녀성과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정절을 지키는 부인들은 사회질서의 중요한 특성이 되었다. 그때까지는 가족이나 친척들의 가장들에게 남아 있었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MAL§40을 통해 국가에게 맡겨졌다. 기원전 1250년경부터 줄곧 공공장소에서 베일을 쓰는 것에서부터 산아제한과 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 이르기까지 여성에 대한 성적 통제는 가부장적 권력의 본질적 특성이 되어왔다.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는 계급형성의 기초이며, 국가를 떠받치고 있는 토대 중 하나이다."

(249 / 6. 여성에게 베일 씌우기)



'베일', '산아제한과 낙태에 대한 국가의 규제' 이런 말들이 요즘 세태와 겹쳐져서 그냥 읽고 넘길 수가 없네요. 모두 비슷한 마음이실 듯.ㅠㅠ 


이제 8장 가부장들(285) 들어갑니다. 4일 남았지만 완독 가능할 거예요.^^;;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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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6-27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8장 들어갑니다~~ 제가 밑줄 그은 부분이랑 겹쳐서 반갑네요^^

난티나무 2022-06-27 21:21   좋아요 2 | URL
❤️👏👏 독서괭님이랑 진도도 밑줄도 같아서 저도 더 반가워요!!!!!!!

얄라알라 2022-06-28 01:21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난티나무님,

책 읽다 같은 부분 밑줄 친 플친님 만나면 짜릿한 그 기분! 두 분의 열공을 응원합니다.
저는 6월달은 책 표지와만 친해지고 패스 각으로 갑니다^^:;;

난티나무 2022-06-28 02:01   좋아요 2 | URL
얄라알라님 감사합니다~^^
일년여만에 다시 읽는데 왤케 새롭죠.ㅋㅋㅋㅋ
짜릿한 그 기분!!!!
 
















밑줄.



"'여성은 열등하다'는 말이 차별과 혐오의 표현이 된 것은 20세기 말부터다(그러나 이 말은 여전히 유통 중이다). 여성은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자유 속에서 외모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여성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추함과 영원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추하다는 말은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여성은 추함을 천박함, 범죄로 여전히 인식하고 있다. 못생겼다는 이유로 여성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의심받거나 심지어는 박탈당한다. "나는 못생겼다,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명제가 만들어진다. 이제 여성의 신체는 비평의 대상이다. 주름살을 비롯한 각종 노화의 흔적, 다시 말해 유한 존재인 인간의 몸에 새겨지는 숙명적인 표시들은 관리되고 치료되어야 하는 증상이 된다. 여성은 이제 자기 몸의 주인이다. 그리고 여성은 자신의 모습을 창조하는 예술가다.


동시에, "건강한 신체와 아픈 신체의 구별은 정상적 신체와 비정상적 신체라는 새로운 구별로 전위(轉位)된다." 이는 "삶과 죽음을 예언"하게 된 의학의 발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셸 푸코에 따르면 의사들은 이른바 좋은 태도를 보급하고 나쁜 태도를 비난한다. 어떠한 이상을 지지하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는 문화"가 생겨난다. 새로운 문화 속에서 죄의식 또한 달라진다. 유혹에 빠지거나, 죄를 짓거나, 정치적 투쟁에 무관심하다는 이유로는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어진다. 대신 개인은 남이 눈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하여 추하게 보이면 어떡할까, 지금은 괜찮지만 앞으로 추하게 변하면 어떡할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러한 비극을 피하기 위해 개인은 노력해야 했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 노력은 결코 충분하지 않았다. '젊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오래된 규범은 내면화되었고 모든 개인은 모범적인 사회 구성원으로 비치길 원했다.


규범은 기준이지만 동시에 제재의 근원이다. 그러므로 규범은 제재에 대한 공포를 수반한다. 현대는 타율성의 시대에서 자율성의 시대로 이동했지만, 철학자 이자벨 케발Isabelle Quéval의 표현에 따르면 이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 명령이다. "나는 아름다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는 정언 명령이다. 개인은 단지 외부의 규칙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움은 이제 권위주의적인 언어를 가지게 된다. 즐거움 대신 고된 노동이, 만족 대신 근심이 자리를 차지한다. 못생긴 여성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게으른 무능력자다.


못생긴 여성의 역사를 복기해보면 처음은 여성으로 태어난 자체가 추함이었고, 다음은 자연의 실수가 빚어낸 결함으로 인한 추함이었다. 그 뒤를 이어 세 번째 추함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무관심, 예의범절과 자기존중의 결여, 게으름과 자포자기 등의 정신적 결함으로 인한 추함이다."

50%



"추함은 존재론적 영역을 침범한다. 추함은 개인의 정체성을 장악한다. 그리하여 추함이 곧 개인의 정체성이 되어버린다. 무심한 생각에까지 스며들어 타인과 세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분석한 대로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주체가 죄책감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못생긴 개인이 느끼는 수치심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일종의 원죄처럼 존재를 건드린다. 주체는 불법적인 일을 전혀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죄책감을 느낀다. 이러한 수치심은 추함을 죄악시하는 주장들에 의해 더욱더 커진다. 치욕과 모멸감 속에서 피해자는 타자가 보는 방식대로 자신을 바라본다.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수치심은 늘 타인과 관련이 있다. 나는 타인을 통해 나 자신을 본다. 타인의 시선이 나의 알몸을 보고 있다고 느낄 때, 타인이 나의 원래 모습을 볼 때 나는 수치스러움을 느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에게 비친 나의 모습이 실제 내 모습임을 인정할 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결론적으로 말해, 타인이 나를 추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 경우,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추함에 대한 수치심이며, 라캉이 말한 "수치론적hontologique"인 추함으로, 나의 모든 가능성을 부인하는 추함에 대한 수치심이다. 그리하여 대자적 존재는 즉자적 존재에 의해 갉아 먹힌다. 나는 추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추함의 본질은 곧 고통이라고 한 흄Hume의 말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는커녕, 자신의 모습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미움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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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03 23: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멀리서, 난티나무님의 꾸준한 한 우물파기 깊은 독서를 경탄의 마음으로 응원드립니다

난티나무 2022-06-04 04:15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얄라알라님~^^
깊은지는 잘 모르겠고 좀 많이 치우치는 느낌은 들어요. ㅎㅎㅎ

han22598 2022-06-04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가 조금 부담스럽긴 한데...난티나무님의 글을 보고나니....많은 관심이 생기네요^^ 감사해요!

난티나무 2022-06-04 04:20   좋아요 2 | URL
표지 ^^;;;; 요즘 눈을 저렇게 지우는 표지가 많아져서 저도 좋지만은 않더라고요.
책은, 역사를 아주 학술적으로 짚어나가는 모양새는 아니고(참고문헌은 많습니다), 역시나 유명한 남자문인들이 헛소리 지껄인 걸 보면서 열폭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지만, 일단 쉽게 잘 읽히고요.^^
밑줄긋기한 부분은 많은데 강력추천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그런 책... 입니다. ㅎㅎㅎ
뒷부분에 바타유가 했다는 말이 아주 가관끝판왕이더라고요. 아오!!!

바람돌이 2022-06-04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책도 있군요. 역시 알라딘 서재는 다양한 책의 보고입니다.

난티나무 2022-06-04 16:22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다양한 책의 보고!!!!!! ^^

mini74 2022-06-04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종이책으로 봤어요. 넘 재미있고 미와추에 대한 기준에 여성에 대한 억압이 담겨있음에 열받아하며 ㅎㅎ 난티나무님 리뷰 정말 멋집니다 !!

난티나무 2022-06-05 06:15   좋아요 1 | URL
아아 그러니까 저기… 저는 그저 밑줄을 그었을 뿐인데… 제가 쓴 글로 착각할 여지가 있나 보아요..ㅠㅠ 😭 (위에 han님도 혹시…????) 내일 날 밝으면 컴으로 수정해야 겠습니다.^^;;
mini74님 읽으신 책이군요. 열받는 부분 늠 많죠!! 😡
 

에바 일루즈 <감정 자본주의> 여는 말 밑줄

감정은 사회 이전pre-social 문화 이전pre-cultural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관계들 바로 그것이다. 감정이 행동에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어떻게 이러한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감정이 언제나 자아의 감정이요, 자아와 타자들(문화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타자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또 늦었구나"라고 말했을 때, 내가 수치를 느끼느냐 분노를 느끼느냐 죄의식을 느끼느냐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내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냐에 달려 있다. 그 사람이 내 상사라면 나는 수치를 느낄 것이고, 그 사람이 내 동료라면 나는 분노를 느낄 것이며, 그 사람이 방과 후에 나를 기다리는 내 아이라면 나는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personhood의 문화 규정들을 규현enactement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 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감정이 반성 이전pre-reflexive 상태, 때로 반의식semi-conscious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 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행동을 "안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해석학적 사회학은 행동의 감정적 색조에,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 행동을 추동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감정이 사회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첫번째 이유는여기까지이다.
감정이 사회학에서 지극히 중요한 개념인 두번째 이유는, 사회적 배치가 많은 경우 감정적 배치와 일치하기때문이다. 평범한 예를 들겠다. 전 세계 수많은 사회조직들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구분은, 감정 문화들에 토대를 두고 있고 감정 문화들을 통해 재생산된다. 남자다운 남자라면 용기, 냉정한 합리성, 훈련된 공격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여성성은 친절함, 동정심, 명랑함을 필요로 한다. 우선 남녀 구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위계는 감정의 구분을 함축하고 있다(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감정의 구분에 기인한다). 이어 이러한 감정의 구분으로부터 감정의 위계가 만들어진다(냉정한 합리성과 동정심을 비교하게 되면, 대체로 전자가 좀더 책임감 있고 객관적이고 전문가적인감정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스란 또는 정의란 정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성의 이상은 감정의 자제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자제는 남성적 실천이자 남성적 모델이다. 요약해보자면, 우선 감정들은 위계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렇게 조직된 남성의 위계는 암묵적인 방식으로 도덕적·사회적 배치를 조직하고 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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