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사회 이전pre-social 문화 이전pre-cultural의 어떤 것이 아니라,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관계들 바로 그것이다. 감정이 행동에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어떻게 이러한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감정이 언제나 자아의 감정이요, 자아와 타자들(문화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는 타자들)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감정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또 늦었구나"라고 말했을 때, 내가 수치를 느끼느냐 분노를 느끼느냐 죄의식을 느끼느냐 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내가 그 사람과 어떤 관계냐에 달려 있다. 그 사람이 내 상사라면 나는 수치를 느낄 것이고, 그 사람이 내 동료라면 나는 분노를 느낄 것이며, 그 사람이 방과 후에 나를 기다리는 내 아이라면 나는 죄의식을 느낄 것이다. 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personhood의 문화 규정들을 규현enactement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 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감정이 반성 이전pre-reflexive 상태, 때로 반의식semi-conscious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 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행동을 "안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해석학적 사회학은 행동의 감정적 색조에,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 행동을 추동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감정이 사회학에서 중요한 개념인 첫번째 이유는여기까지이다.
감정이 사회학에서 지극히 중요한 개념인 두번째 이유는, 사회적 배치가 많은 경우 감정적 배치와 일치하기때문이다. 평범한 예를 들겠다. 전 세계 수많은 사회조직들의 가장 근본적인 구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남녀 구분은, 감정 문화들에 토대를 두고 있고 감정 문화들을 통해 재생산된다. 남자다운 남자라면 용기, 냉정한 합리성, 훈련된 공격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반면에 여성성은 친절함, 동정심, 명랑함을 필요로 한다. 우선 남녀 구분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위계는 감정의 구분을 함축하고 있다(남자와 여자가 각자의 역할과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것은 바로 이런 감정의 구분에 기인한다). 이어 이러한 감정의 구분으로부터 감정의 위계가 만들어진다(냉정한 합리성과 동정심을 비교하게 되면, 대체로 전자가 좀더 책임감 있고 객관적이고 전문가적인감정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어 우리는 뉴스란 또는 정의란 정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객관성의 이상은 감정의 자제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의 자제는 남성적 실천이자 남성적 모델이다. 요약해보자면, 우선 감정들은 위계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고, 이렇게 조직된 남성의 위계는 암묵적인 방식으로 도덕적·사회적 배치를 조직하고 있다. - P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