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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사색 - 시골교사 이계삼의 교실과 세상이야기
이계삼 지음 / 꾸리에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교육'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책을 되도록 멀리하려고 애썼다. 고민한들 무엇하나, 라는 체념으로 살아왔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계삼이라는 전직교사의 글을 접하고나니 그의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고 교육을 비롯한 여러 고민을 함께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괴로운 책읽기이다. 그의 책에 무엇을 보태리. 그저 읽고 더불어 고민할 뿐이다.
p.265....농업에 대한 사유는 말하자면 '농촌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아니다'와 같은 강퍅한 선택의 문제를 떠나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한 개인의 문제의식의 방향과 깊이를 가늠하는 척도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날의 삶을 산업기술문명이라는 큰 틀에서 파악하고 이 문명의 파국적인 미래를 간파할 수 있는 예지, 그리고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의 의미, 물질적 풍요, 진보와 계몽의 신화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회의할 수 있는 인간적 역량들이 바로 농업에 대한 사유 속에 녹아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266...권력자들의 현실주의, 언론의 현실주의, 지식인들의 현실주의, 오늘날 사회적 담론들의 그릇에 담겨 있는 '현실'을 '현실'로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이 현실주의라는 감옥의 수인으로 거기에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나는 이렇게 믿는다. 오늘날 우리가 꼼짝없이 붙잡혀 있는 이 현실주의야말로 더없이 비현실적인 기만이자 허위이며 몽상이라는 것을. 그들이 낭만적 몽상이라 말하는 농업, 풀뿌리들의 자치와 협동, 고르게 가난한 사회에 대한 지향이야말로 이 현실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녹색평론>발행인 김종철의 표현처럼 "필요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개안'이다. 오늘날, 진정한 현실주의는 눈앞에 그럴듯한 대안을 가져다주기보다는 자명한 것을 의심케 함으로써 길을 잃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현실주의는 저들 자본가, 정치인들의 권능에 기대는 것과 같이 '남'의 문제로 구조화된 것을 오롯이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변개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력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칭송해 마지않는 핀란드 교육 열풍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부분도 공감이 간다. 핀란드 교육의 그늘, 즉 청소년들의 알코올과 약물 중독 비율이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높고, 학생들의 학교 만족도가 현격하게 낮고, 학교에서 총기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핀란드가 핵 발전의 선두주자라는 사실, 즉 유럽에서는 최초로 핵 발전소를 신설한 '용맹스런'국가이며, 전체 전기소비량의 40퍼센트를 핵 발전으로 조달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으며,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들어진 적 없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핀란드 대신 덴마크에서 배우자고 한다.'인간의 행복을 국가가 돈으로 책임져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인간관계로써 떠받쳐 주는'곳이 덴마크라고 한다.
p.164 '풀뿌리 민중들이 스스로 만든 학교, 스스로 만든 협동조합, 그렇게 구축된 사회적 협동의 체제, 그것을 가능케 한 교육의 힘과 높은 수준의 시민적 교양, 풀뿌리 민주주의'을 배우자고 한다.
파시즘에 대한 생각.... p.333 파시즘은 고통 받았던 자들의 상처 속에 남아, 민감한 영혼들의 추체험을 통해 역사에 등재된 것이지,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관통하는 체험은 확실히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파시즘은 그 시대 거기에 긴박된 모든 사람들의 의식과 경험을 지배했기 때문이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이 그것을 의식 밖으로 밀어냄으로써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파시즘을 의식 밖으로 내모는 순간 우리는 파시즘과 일체가 되며, 그때부터 우리 자신도 그 질서의 적극적인 동조자가 된다는 인식... 파시즘은 대세의 흐름에 손쉽게 떠밀려 안착하는 습속에서 출발한다. 불가사의한 것은, 상식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습속들이 한 번 대세로 정착하면 작은 회의와 의혹까지도 막무가내로 통합하는 무서운 흡입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들을 모두 옮기기에는 벅차고...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좋은 책이란 이런 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