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교육 이야기 -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잘 모르는
박진동.김수정 지음 / 양철북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불쌍하다. 소고기도 아닌데 등급이 매겨진 채 아둥바둥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새삼 이런 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 알고 있는데...그런데 왜 바꿀 생각을 못하고 있을까? 구체적인 대안이 없어서? No!!!

 

그 대안을 캐나다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캐나다교육현장은 참으로 상식적이다. 요란하지도 않다. 그곳의 아이들은 우리 나라의 아이들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고 있다. 부럽다. 그렇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우린 이미 지고 있는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고 부모들도 괴로운 데,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이 모든 시스템을 언제까지 견디고 살아야하는지 모르겠다.

 

p.309...'경쟁교육'은 아이들만 빼고 그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편리한 제도다. 학부모도 선생님도 아이의 등수만 보고 '더 올려라!말하기 쉽다. 그 말을 안 들을 수 있는 아이는 전국에 단 한 명뿐이다. 상위 교육기관에서 우수 학생 뽑기도 쉽다. 지원자 중에서 점수가 좋은 학생을 고르면 된다. 그러한 방식을 모두 공정한 것으로 동의하고 있으니 공정성 시비도 없다. 효율성으로는 최고로 좋은 이 시스템의 문제는 교육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내 자식은 잘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부모들은 문제아는 못난 부모 밑에서 생긴다고 자신하지만 세상일에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기도 하는 법이다. 내 자식도 시스템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고 더 잘 키울 수 있다.

  '비경쟁 교육'은 아이들을 주체로 놓고 설계하는 어려운 과정이다...학부모가 할 일은 단 한 가지다. 비경쟁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다. 엄마들이 만나서 좋은 학원, 훌륭한 과외 선생,명문대 입학 정보만 나누지 말고, 아이들에게 등수를 붙이지 말자는 공감을 나누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많은 학부모와 시민들이 성적표에서 석차를 없애고 수능을 없애거나 점수 분표를 공표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일을 나서서 하겟다는 정치인과 교육감 후보가 등장할 것이다. ..'등수가 없으면 대학에서 입학생 선발을 어떻게 할까?'하는 것도 학부모가 고민할 일이 아니라 대학이 고민할 일이다.

  학부모들은 경쟁 체제와 비경쟁 체제 중 어느 것이 자녀를 위한 것인지 다른 부모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쓰고 싶지만, 구구절절 공감하지만 옮겨적지 못하는 이유라면...지금은 일과중이라 긴 시간이 나지 않고(이 책도 겨우 읽었다), 고2인 딸아이의 늦은 귀가 때문에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몽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할 일이란 좋은 과외선생 구해주는 게 전부더라."고 하던 목동 사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이런 부모들이 대세라면 세상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친구야, 미안하다.)

 

 

(어제는 일과중의 짧은 시간에 이 글을 쓰느라고 대충 인상적인 글만 옮겨 놓고 몇 자 끄적거렸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새 심사가 사나워진 것이다. 사나워진 심사를 내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겨본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쓰고 싶지만, 캐나다라는 교육선진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구구절절 공감은 하지만 옮겨적지 않는 이유라면,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좋으나 싫으나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이곳의 학부모에게 '해야할 일'을 주문하는 저자의 제안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 이 땅의 삶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 내 자식도 시스템의 희생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아이를 더 사랑하고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말로 대한민국의 부모들을 위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부모나 자식이나 이미 희생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자녀를 대학에 보내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이상한 성장세계가 있다. 내가 부모가 되기 전까지는 이런 세계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고3을 눈앞에 둔 자식 덕분에 더욱 확실하게 몸으로 깨닫게 된 사실이다.(ㅎㅎ 이제야 어른이 되다니. 머잖아 철들자 노망이지 않을까 싶어 더럭 겁도난다.) 그러니 현실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이런 제안들은 공허하게 들린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고 했던가. 우산을 들어주기보다 함께 비를 맞고 싶은 것이다. 이미 남의 우산을 쓴 사람에게 함께 비를 맞자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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