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다 남은 막걸리로 저녁을 때운다.
남편은 술자리 약속이 있고 딸내미는 치아 교정을 위해 어금니 두 개를 뽑아야해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었다.
누가 대한민국의 선생을 성직이라고 했나. 나와봐라. 우리 반 담임 한 번 해봐라.
오늘도 네 녀석이 2교시에 땡땡이를 쳤다. 한 시간 내내 화장실에 있었단다. 그 땡땡이 친 시간은 제법 즐거웠는데 나중에 담임인 나한테 혼나면서 이게 아니구나 싶었다는 것이다. 이제 겨우 중 1짜리다.
한 녀석은 부모와 떨어져 산다. 부모는 외딴 섬에 살고 있고 녀석은 형과 나이 어린 외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의 손길 없이 사는 중1짜리 녀석만 나무라기에는 녀석이 너무 억울하다.
한 녀석은 부모의 이혼으로 아삐와 살고 있다. 이 녀석은 20년 담임 경력이 있는 나에게도 참 황당한 녀석이다. 제 하고 싶은 얘기를 하나도 거를 줄 모르고 뱉어낸다. 상대방 기분을 헤아리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았다면 분명 이렇게 막 자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다 참다 오늘 녀석의 아빠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역시 살기 바빠서 녀석과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중 1짜리는 아직 어리광을 부릴 나인데 이 녀석에게는 어리광을 부릴 상대가 없는 것이다. 녀석의 황당한 버릇없음은 일종의 어리광이다. 그걸 담임인 내게 요구하는 것이다.
다른 두 녀석은 제발 부모님에게는 알리지 말아달라고 한다. 이게 정상이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는 녀석이라면 그래도 부모 생각할 줄은 안다. 이런 녀석들의 부모와 통화를 하면 담임의 고충에 대해서 미안해할 줄 안다. 제 자식 한 둘 갖고도 힘들어 하는 마당에 40여 명씩되는 아이들 담임 노릇하기가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를 그래도 생각해주는 여유가 있다.
고달픈 하루를 한 잔의 술로 마감한다.
한 잔의 술로 세상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막걸리도 제법 도수가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