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신문에 실렸던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09336.html

 

 

지난 주에 읽었는데 계속 이 기고문이 머릿속을 맴맴 돈다.

 

이를테면,

 

*군대를 해체한다.

 

*모든 자치국가의 인구 90% 이상은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같은 기초 살림에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일에 종사한다.

 

* 교육의 일차 목표는 1)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먹물 말로 바꾸면 ‘개체 생존 유지 능력 배양’), 2) 서로 도우면서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상호 협동 능력 함양’)이다. (나머지는 곁가지다.)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리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길러 주는 교육과정은 만 16세 이전에 마무리 짓는다.

 

*모든 특권교육은 중단한다.

 

*특권을 목표로 삼는 모든 제도교육 기관을 폐쇄한다.

 

*선거권은 20~60세 사이의 남녀만 행사한다.

 

*남녀 간 어떤 일로 다툼이 생겼을 때 분쟁조정위원은 전원 여성으로 구성한다.

 

*온 국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60세 이상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본인의 뜻에 따라 안락사가 허용된다.)

 

 

 

흔히 '다 먹자고 하는 일'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이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너무나 긴 과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짧은 인생, 공부하다가 마감하는 것 같다. 억울하지 않나? '만 16세 이전에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바꿔도 삶의 질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특권교육. 더 말할 것도 없다.

 

선거권을 60세까지로 제한했다.  내 나이가 60대를 향해 질주하다보니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어렸을 때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현명해진다고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된다. 끊임없는 자아성찰과 노력 없이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 세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나이든 사람들의 고집과 기득권 유지에 대한 집착이 질기고 질기다. 손에 쥔 걸 쉽게 놓지 못한다.

 

새삼 오늘 아침에 이 기고문을 떠올린 건 '60세 이상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본인의 뜻에 따라 안락사가 허용된다.'는 구절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더 몸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건 어쩌면 절망이다. 절망을 안고 절망을 헤쳐나가느니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들이 오이 자라듯 성큼성큼 성장하는 게 보이듯, 사람도 60이 가까워지면, 하루 분량으로 포장된 견과류 봉지를 하나씩 뜯어먹어 결국 남는 게 없는 것처럼 몸과 마음의 기능이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침밥을 먹으며 남편 얼굴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남편도 내 얼굴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겠지. 함께 늙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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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월요일 방학식만 남겨놓고 한 학기가 끝났다. 끝남이 있고 그 끝남을 형식화해서 마무리를 짓는 일이 방학식, 졸업식, 송별식..뭐 이런 것이 되는데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 잡지를 나도 샀다. 대충 읽어봐도 소설가 천명관과의 대담 기사 하나만으로도 책 값은 확실히 빠진다 싶어 8권을 더 주문했다. 그간 도서관 학부모봉사단의 어머니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으로, !~2년 함께 근무한 기간제교사들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 한 권씩 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교장샘에게도 한 권. 여기서 순서를 잘 봐야 한다. 학부모-기간제교사-교장, 이런 순이다. 그러니까 교장을 위해 먼저 생각해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도서관을 담당하면서 학부모봉사단 어머니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몇년간 쌓아둔 도서 폐기부터 크고 작은 환경정리까지 지금 이 순간도 봉사단 회장 어머니는 도서관에 뭔가 도움이 될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고 계실 것이다. 어쩌면 방학 내내 이런저런 고민을 하실지도 모른다. 그 살뜰한 마음이 내내 불편하면서도 실은 굉장히 고마웠다. 이런 고마움에 대한 작은 성의로 이 잡지를 드리긴 했는데 글쎄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재밌는 책이 아니어서.

 

어제는 기간제교사을 위한 송별회식이 있었다. 전별금 전달 등이 있은 후 교장샘의 짧은 말씀이 이어졌다. 그간 교장연수를 받느라 고생하고 계신 교감샘도 모처럼 회식에 참석했는데 교감샘에 대한 노고를 언급하면서 이런 표현을 썼다. "학교의 꽃인 교감선생님을 위해..." 속이 뒤집힐 뻔했다. '학교의 꽃"이 나오는 찰나 다음 말이 뭐가 나올까 기대되었는데 어이없이 교감이라니...결국 학교의 꽃은 교장/교감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아, 이런 분에게 이 책을 드렸다니....이 잡지를 만든 분들께 사죄하는 마음이 뭉클뭉클 솟기 시작했다.

 

바로 내 옆에는 한 학기 동안 도서관에서 근무한 실무원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어제도 이 아가씨는 이런저런 일로 마음의 상처를 받고 혼자 훌쩍거렸는데 나는 살갑게 달래주지 못했다. 이 아가씨는 약간의 장애를 겪고 있는데, 지난 한 학기 동안이 내게는 하루하루가 고정관념을 수정하고 더불어 사는 연습을 하는 나날들이었다. 그간 미운정 고운정이 들었는지 어제는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무시당하고, 사정을 잘 모르는 교사에게 빈정거림을 당하고...사정을 모르는 동료에게 슬쩍 한마디 해주면 금방 이해하고 도와주기는 하는데, 솔직히 내가 왜 이 역할을 맡아야 하지, 하는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교장에 대한 실망, 불쾌함과 실무원아가씨에 대한 안쓰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 아가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학기 동안 어리석고 부족한 자기를 위해 마음고생이 많았을 텐데 그간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너도 나 때문에 긴장하고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을 텐데, 나는 네게 용서를 구하지도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는데, 네 마음이 참 살갑고 착하구나.) 마음이 먹먹해졌다. 낮은 것이 마음을 울린다.

 

 

16~17년만에 학급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한 학기가 짧게 느껴지고, 학생들이 예쁘게 보이고, 세상이 넓게 보인다. 대학교수에게는 일정기간 근무하면 안식년이라는 게 주어지는데 초중고 교사들에게도 그 안식년을 허하라. 최소한 담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딱 그 정도 의미의 안식년 정도라도. 그리고 학교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학생이며 그 학생들과 매일 싸우고 지지고 볶는 담임이다. 교장이나 교감이 되려고 온갖 치사함과 역겨움을 참는 것도 결국은 담임이라는 고된 업무에서 해방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방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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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 나는 내 짝꿍 때문에 괴로웠다. 허구헌날 연필이나 지우개 등을 빌려달라고 하는 통에 짜증이 나고 화가 났다. 반대로 어떨 때는 엄지만한 그림책을 가지고와서 온통 그 그림책에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기도 했다. 영어로 된 그 작디작은 그림책은 돼지 세 마리와 늑대가 등장하는 내용이었는데 지금도 돼지들이 만든 붉은 벽돌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그림책 구경으로 잠시 황홀하기도 했지만 문구류를 빌려달라는 청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연필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간 한가지 꾀가 떠올랐다. 그 친구의 시선의 방향을 잠시 확인한 후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연필을 주워서 슬쩍 다른 곳에 감추었다. 그런 후 짝에게 좀전에 빌려간 내 연필을 달라고 했다. 짝은 빌려가지 않았다며 당황해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시는 짝이 연필 따위로 나를 괴롭히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 짝꿍과 같은 중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깊은 산 속에 있던 학교는 등교길이 만만치 않았는데 별다른 교통수단도 없어서 왕복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다녀야 했다. 밭길, 산길, 과수원길, 공동묘지길 등을 두루 거쳐야 하는 등하교길은 자연 이런저런 친구들이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딱히 친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걷는 사람이 그날의 친구가 되었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아주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종종 그 짝꿍과도 함께 걷곤 했다. 헌데 이 친구는 좀 남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절대로 알 수 없는 세상의 비밀 한 조각씩을 물어다주는 것이었다. 내 생애 최초의 성교육을 이 친구로부터 귀동냥으로 배운 것이다. 한편으로는 친구의 조숙함이 놀랍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부럽진 않았다. 이 친구는 언니, 여동생과 함께 보육원(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안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이 친구와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에 없다. 학교성적에 일희일비하던 내가 이 친구의 어려움을 살피거나 마음을 주었을 리는 없었다. 나는 매우 이기적인 인간으로 되어 갔으니까.

 

가끔 이 친구가 떠오른다. 부모와는 재회했는지, 언제 보육원에서 나왔는지, 얼굴이 곱던 이 세 자매는 그 후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부디 무탈하게 살고 있기를.

 

미안하다 친구야. 연필 따위로 째째하게 굴던 친구를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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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따분하여 모처럼 강화도 전등사에 갔다. 15년 운행을 자랑하는 승용차는 이따금씩 시동이 멈추어 드라이브에 긴장감을 보태는데, 운전은 남편 몫, 나는 그래도 단잠을 즐긴다. 내가 깨어서 눈 똑바로 뜨고 앞을 주시한들 낡은 자동차가 내 말을 듣지는 않을 터.

 

다 좋았다, 는 아니었다.

 

경내에 찻집이 있어 '연꽃꿀빵'을 사려고 들어갔는데, 물건값을 치르려고 보니,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이 안 되는 가게였다. 오로지 현금만 내야 하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넓은 방 두 개로 이루어진 실내에 테이블도 많고 발코니에도 테이블이 있는 걸로 봐서 결코 작은 가게는 아니었다. 분명 세금관계가 투명한 곳이 아님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만약 이 정도의 개인사업이라면 신용카드나 현금영수증을 발행하지 않고 영업할 수 있을까?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종교는 바라지도 않지만 적어도 양심은 있어야지 싶다. 좀 더 떳떳하게 영업하시구려!

 

마침 점심 때가 되어서 전등사 동문 바로 밑에 있는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 들고 가세요. 산채비빔밥, 많이 드릴게요." 를 외치며 호객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마주 본 순간 도저히 뿌리칠 수 없어 산채비빔밥을 주문했다. 많이 준다더니 각종 나물은 딱 한 젓가락만큼만 담겨져 나왔다. 비빔밥은 나물에 치여 비빌 수 없어야 제 맛이 나는데 이건 비비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8,000원짜리지만 실제는 3,000원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었다.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면 입소문이라도 내주련만 이런 글을 쓰면서도 씁쓰레한 뒷맛을 떨치지 못하겠다.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내 순진한 얼굴을 주인아주머니가 감지했는지 아주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뒤통수가 굉장히 예쁘셔요. 주위에서 뒤통수 예쁘다는 말 많이 들으시지요?"

 

웬 뒤통수? 하면서도 내 입에서는 의도치 않은 말이 새어나온다.

 

"네, 많이 들어요....안녕히 계세요."

 

많이 듣긴. 삼십여 년 전 미장원에서 딱 한 번 들었을 뿐인데....

 

 

 

"흠, 파마하지 않고 생머리로 견딜 수 있는 뒤통수를 가지고 있으니 예쁘긴 한 거지, 영감?"

 

어이없는지 남편은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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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13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님 웃픈이야기로 월요일 아침 조금 심난한 마음에 한번 웃습니다. 강화도 전등사는 저도 가보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인데 그런 곳에서 마음 상하셨으니 에구ㅠ 퍼머 안 해도 예쁜 뒷통수 가지신 건 부럽구요ㅎㅎ

nama 2015-07-14 07:25   좋아요 0 | URL
부럽다니요. 뒤통수만 예쁜 슬픔을 아시는지요ㅎㅎ
 

2시간짜리 연수가서 인상 깊은 말 한마디를 건졌다.

 

 

 

 

아이들은 실수할 권리가 있고, 어른들은 실수를 용서할 의무가 있다.

                                                                                 -인천시 교육감 이 청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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