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중앙일보 weekend에 보냈던 글이다. 마감시간을 넘기는 바람에 채택되지 못했지만, 마감 전에 보냈어도 신문에 실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ㅠ.ㅠ 소재가 우산이라 과감하게 시도해 보았는데, 왠걸 메일이 안 가는거다...  열 번 넘게 보냈는데... 결국 전화해서 담당자 메일주소를 알아내어 보냈는데, 그것도 안 가.. 결국 시도 끝에 마감시간 끝나고 나서야 메일이 전송되었다. 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ㅡ.ㅜ 원통한 마음에 알라딘에라도 올린다....흐흑

우산 공포증


문득 귓전을 때리는 빗소리에 흠칫 놀란다. 억수같이 쏟아 내리는 비는 우산을 쓰고 가는 이들을 무색하게 한다. 창을 통해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중얼거려 본다. ‘바람만 더 불면...’

 

내겐 우산 공포증이란 게 있다. 8년 쯤 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4월, 비도 많이 오고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내게 우산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르쳐 준 잊지 못할 그 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비 오는 아침은 마음을 들뜨게 했다. 왠지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고, 밤새 계속 내린 비로 물기 가득한 공기는 상쾌했다. 골목길에 핀 조그만 꽃이 눈에 띄었다. 반가움에 인사했다. “안녕?”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던 중, 저기서 근처에 있던 남학교 스쿨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반대편 차선에는 학생들을 가득 담은 시내버스가 과식하듯 또 다른 학생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버스 정류장에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있었다. 정말 유난히도 그 날은 남학생들이 많았다. 나는 조금은 도도한 자세로,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네들을 의식한 채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 남학교 스쿨버스가 점점 다가오고 신호는 좀처럼 바뀌지 않던 그 때, 바람이 불었다.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 순간은 마치 테이프가 늘어난 영화를 보는 듯 느렸고, 또 다른 나를 응시하는 듯 기묘했다. 우산을 들고 있던 내 손은 휘청 기울었다. 물방울무늬가 앙증맞게 뿌려져 있던 우산은 어느새 저만치 가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비닐부분만 날아간 거였다. 경악한 내 두 눈에 우산의 살과 손잡이는 화석처럼 그대로 박혀 있었으니까. 정적이 흘렀다. 등교시간, 그런 무거운 고요함은 처음이었다. 스쿨버스가 지나갔다. 우산의 물방울무늬가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무렵 신호가 바뀌었고, 얼어붙었던 공기를 산산이 부서트린 키득거리는 웃음소리와 ‘이를 어째...’ 따위의 감탄사가 퍼져나갔다. 난 조용히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살만 남은 우산을 접었다. 퍼붓는 비를 맞으며 빠르게 걸었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은 단 하나였다.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새 택시 안이었다. 젖어 달라붙는 머리를 정리하며 그 날 아침은 그렇게 민망하게 시작했다. 그 뒤 난 1단 우산은 쓰지 않는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날은 나가지 않는다. 혹시 나가더라도 바람이 많이 불면 어느 처마 밑이라도 들어가 바람이 덜 불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과 함께 우산을 쓴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나는 여전히 우산 쓰는 것이 두렵다.

 

비바람으로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들이 기침하듯 흔들리는 걸 보면 물방울무늬의 우산이 떠오른다. 우습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추억을 선물한 그 우산. 아마 8년이 더 지난 후에도 난 우산 쓰는 것이 두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찾아오지 않는 특별한 나만의 기막힌 경험이란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살짝 씁쓸한 미소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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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7-27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거덩~ 어떻게 비닐만 날아가남요?^^;;;;;
근데, 아까운 글이군요.. 마감안에 넣었으면 좋았을걸....ㅎㅎ

꼬마요정 2006-07-27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해 주시니 감사~^^
아직까지 그 때 생각만 하면 창피하답니다. 하하;;
어떻게 비닐만 날아가는지...ㅜ.ㅜ 그냥 뒤집어 지거나 우산 통째로 날아가도 되는데 말이죠...흐흐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