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하루를 살면서, 정신 없이 일하다가... 문득.. 말 그대로 문득 고요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일을 내려놓고

 

떠오르는 생각을 느껴본다.

 

오늘은, 문득, 유치환의 시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에게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어쩌면 한 망울 연연한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중에서

 

 

 

유치환과 이영도만 놓고 보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인데,

 

권재순 여사를 보면 가슴 아픈 사랑이다.

 

남편의 연시들과 다른 이를 향한 사랑을 보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자의 입장에서 마음을 준 것은 모든 것을 다 준 것인데...

 

 

나는 왜 여기서 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사랑이 아름답게 남을 수 있도록 죽음을 선택한 베르테르와

 

시를 통해 사랑이 아름답게 남아버린 유치환과

 

다른데, 그런데도, 떠오른다.

 

베르테르의 처연한 사랑이.

 

번져간다.

 

그의 눈물 가득한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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