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가지 쯤 낡은 물건에 깃든 기억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굳이 낡은 물건이 아니더라도, 스쳐가는 어떤 이의 향수 냄새에서도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기억을 건져올릴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 혹은 추억은 누군가에겐 과거의 아름다움일지라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진행되는 현재의 계속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재즈를 지키고 싶지만, 과거의 영광에만 매달려 현재를 살지 않으면 결국 사라질거라는 친구의 말에 흔들렸다. 아니, 흔들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여자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지만 그 길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여자는 수십 번 넘어졌다.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수십 번 넘어지며 수십 번 깨닫고 또 넘어지고 있었다. 이젠 포기하고 싶었다. 나는 빛나는 별이 아니니, 이제 그만 아프고 싶다고. 기대 뒤에 독처럼 번져가는 실망감에 지쳐서 말이다.
둘에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마 그리니치 공원의 천문대에서이지 않을까. 드넓은 우주 속 빛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마음으로, 그 순간만큼은 갈라진 둘이 서로를 만나 기쁨에 겨워했으니 말이다. 서로에게 끌렸으나 입맞춤조차 방해받던 그들에게 가장 자유롭고 비밀이 없던 곳이었다.
삶은 기쁨이나 설렘으로만 가득 차지는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현실‘이다. 현실을 살기 시작하며 사랑은 삐걱대기 시작한다.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을 지나며 현실은 서서히 사랑을 갉아먹는다.
낡았다고 바꿔야 한다는 재즈는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잊은 줄 알았던 사랑의 기억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피어난다. 한 눈에 알아보고 기억을 소환하고 음악이 흐르고 그들은 그들이 살고 싶었던 삶을 산다. 드넓은 우주에 빛나는 별들로.
항상 사랑한다는 말과 남자의 미소, 여자의 화답.
나는 결국 울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