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라서 - 엄밀히 말하면 수험생이긴 하지만... - 소속되어 있는 곳이 없다. 스터디 하는 시간만 제외한다면 나머지 시간은 내가 운용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오전에는 빨래 및 청소, 기타 잡다한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스터디엘 가고, 저녁에는 독서실에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친구와 이야기 하다가 내 일상이 화제가 되었다.

"어머, 너 빨래도 하니? 수험생 맞아??"

빨래를 널다가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다 들은 말이다. 수험생은 빨래 하면 안되나?

어떤 친구는 날더러 착하다고 한다. 엄마 도와드린다고. 근데 사실 난 내가 착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해야할 일을 할 뿐이다.

언제부터 엄마는 집안일을 해야하고, 아빠는 돈을 벌어와야 하고, 딸은 엄마를 도와 가사일을 해야하고, 아들은 집안일로부터 자유로웠나? 설사 오랜시간 그래왔다 하더라도, 요즘은 그게 아니지 않나?

나는 엄마가 집안일을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냥 엄마가 집안일을 제일 잘 하시니까 엄마가 하시는 걸 말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키는 일 및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한다. 왜냐면 가족이니까. 한 집에 사는 가족이고, 구성원이니까. 딸이라서 하는 게 아니다. 엄마만 집안일 해야한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물건을 옮기거나 고치는 일은 아빠의 몫이다. 난 손재주가 없어서 그 일은 못한다. 그 일은 아빠가 제일 잘 하신다. 그래서 아빠가 하시는 것 뿐이다. 엄마가 바쁘거나 피곤해 하면, 아빠가 설거지도 하신다. 나나 내 동생이 하기도 한다. 막내는 어리기 때문에 (중학교 1학년) 자기 방 청소 정도만 한다.

엄마는 아마 이런 내 생각을 모르시지 싶다. 가끔 엄마는 날더러 고맙다고 하신다. 수험생인데, 집안일 도와준다고... 난 그냥 빙그레 웃기만 한다. 수험생이랍시고 독불장군마냥 내 일만 생각한다면 너무 염치가 없다. 집안일 하는 거 얼마 안 걸린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일거리를 보고 공부만 하기엔 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결국 나는 나를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것 뿐이다.

내가 밖에서 "왜 여자만 집안일 해야 해?" 라고 외치면서 집에서는 당연한듯 엄마께 집안일을 맡기는 철없는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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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 2005-04-18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용!!

꼬마요정 2005-04-18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라님~ 즐거운 주말 보내셨어요?? 멋지다니용~~^^ 감사합니다. ^*^

panda78 2005-04-1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딸이라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 참 좋습니다.

릴케 현상 2005-04-1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합리적인 분업, 서로를 배려하는 분업이라면 아름답죠^^

꼬마요정 2005-04-1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님, 판다님~ 공감해 주시니 저도 기쁘네요~^^*
자명한 산책님~ 호호 맞아요. 아마 가족이기 때문에 그 일들이, 이를테면 내 빨래만 하는 게 아니라 가족 빨래를 하는 것 등이 억울하거나 싫지 않답니다. 그리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일을 분담해서 하다보니 밖에서도 일을 하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구요~ 안 그래도 얼마전에 할머니께 고등어 찌게 끓이는 법을 배웠는데, 한 번 해보려구요... 고등어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