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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의 서우여
이선미 지음 / 영언문화사 / 2000년 6월
평점 :
절판
한 나라의 우두머리로써 나라를 지키지 못했다면, 혹은 그 나라를 다시 되찾아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면 그 우두머리가 느껴야 할 책임과 의무는 가히 상상을 넘어서는 것일터이다. 자신의 감정이나 행복은 모두 제쳐두고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하는 일념과 되찾아야 한다는 집념만이 남아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배자가 화려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나약하다면, 그 밑에 있는 신료들은 애가 탈 것이다. 상황이 최악이니까. 나라를 빼앗겨 유민들과 함께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전쟁 중인데, 대아한이라는 자가 글을 좋아하고 유약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죽어나는 것은 밑의 장군들일 것이다. 마한의 지도자 대아한 아화는 평화로울 시절에나 어울리는 재목이다. 덕분에 아라사는 그를 지키기 위해, 설익은 연모의 정으로 여자이면서도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무예를 닦아 수비대장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아화는 그런 아라사에게 늘 미안해하며 안타까워한다. 아화의 동생인 노아는 마한 제일의 미녀라 칭송받으며 위험과는 먼 생활을 하는데, 친구인 아라사는 거친 남자들 틈바구니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 말이다.
마한과 마찬가지로 번한 역시 기자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덕분에 번한의 우두머리인 서우여 마휴는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무예 솜씨와 신묘한 전략, 철저한 자기 통제로 제왕으로서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아라사에게 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마휴가 자신을 철저하게 버렸던 것처럼, 아라사 역시 자신을 철저하게 버렸으니까.
갖은 책임과 의무, 신분의 굴레에서 헤매이던 그들은 결국 죽을 고비를 넘겨서야 비로소 서로에게 마음을 연다. 가장 갖고 싶은 것을 얻기 위해 누구나가 탐내던 것을 버리던 그들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끝까지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미련없이 떠나는 것은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