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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커피 역사 110년…'끽다점'을 아시나요

90년대 후반 들어 커피문화 급변

: 지정훈기자


 1896년 아관파천 때 웨델 러시아 공사의 처형인 ‘손탁’이라는 여인이 고종의 음식을 돌보면서 처음 커피를 드렸는데, 이후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됐다. 커피를 즐긴 고종은 덕수궁에 ‘청관헌’이라는 커피집을 짓고 이따금 대신들을 불러 함께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나중에 고종이 정동에 호텔을 지어 손탁 여사에게 하사한 것이 ‘손탁호텔’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바로 이 손탁호텔 1층에 문을 연 ‘정동구락부’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외국의 저명 인사로는 데오도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종군 기자로 한국에 왔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 등이 있었다. 내국인 중에는 이상재·민영환·윤치호 등 개화파 인사들이 자주 들렀다.

민간에서는 1900년 초 서울 광교에서 장사하던 서양인이 거래하던 조선 상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며 존재를 알렸다. 검은 색깔이 나는 탕약 같다고 해 커피를 ‘양탕국’이라고 불렀다. 20년대 서울 다동에는 전통 다방들이 많아서 다방골이라고 했다. 객주들이 이곳을 상거래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 당시 다방에서 일하는 넉살 좋은 여자를 ‘다모’(茶母)라고 불렀다.

2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식 커피하우스인 ‘끽다점’(喫茶店)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영화감독 이경석씨가 차린 ‘카카듀’ 다. 당시 서울에는 세 곳의 끽다점이 인기가 높았다. 배우 복혜숙 여사가 서울 인사동에서 경영한 ‘비너스’ 에는 나운규·문예봉·이청전 같은 예술인과 여운형·김준연 같은 정치인들이 단골로 들러 담론을 나누곤 했다.

소공동에서는 김연실 여사가 연 ‘낙랑’ 이라는 커피하우스가 인기였는데 이광수·정지용·김기림·이헌구·모윤숙 등 작가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충무로에는 강석연씨가 차린 ‘모나리자’ 에 주로 가수들과 음악인들이 많이 모였다. 시인 이상도 한때 ‘제비’ 라는 소문난 커피하우스를 운영했으나 경영 미숙으로 문을 닫았다.

해방 뒤에는 수필가 전숙희 여사가 경영한 명동의 ‘마돈나’ 가 문학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부산 피난 시절에는 ‘밀다원’에 문학인과 영화인들이 단골로 모였다. 한국전쟁이 휴전된 50년 후반에는 대학로의 ‘학림’ 이 많은 문학인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줬다. 56년에 문을 연 대학로 학림이 국내에서 영업하는 커피하우스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60~70년대에는 ‘르네상스’ 같은 음악다방이 성행했다. 음악다방들은 지금의 장노년층들에게 많은 음악을 소개하며 산 교육장 역할을 톡톡히 했고, 당시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심어줬다.

80년대에는 ‘난다랑’ 등 새로운 스타일의 커피전문점들이 유행하면서 원두커피 문화가 조금씩 알려졌으나 경영상 어려움으로 쇠퇴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커피하우스들은 세계적 커피 체인들과 경쟁을 하며 커피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 중 하나가 ‘걸어 다니며 즐기는 커피’가 됐다는 점이다.

뜨거운 커피는 앉아서 조심스레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대에게 걸으며 마시는 커피는 충격이었다. 또 커피 한잔 주문하는 데도 상당한 커피 지식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 과거에는 “커피 주세요”면 충분했지만 이제는 20~30여 가지나 되는 다양한 커피 메뉴 중 하나를 골라 주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는 이제 개인별 맞춤 서비스로 변하고 있다. 개인의 기호를 최대한 만족시키려는 맞춤 마케팅이 커피 한잔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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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2004년 12월 07일 765호 / 2004.11.30 15:3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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