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쌀쌀해진 공기를 들이마시자 폐가 긴장한 듯한 느낌이 싸하게 퍼졌다. 청량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삐걱거리는 몸을 곧추세우며 지하철역까지 뛰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하여 힘이 풀린 다리가.. 이 다리가 내 다린가 싶을만큼 혼자 왔다갔다 하더니.. 결국 넘어졌다. 그것도 진짜 없어보이도록 심하게. 

8년 정도 만인 것 같다. 이렇게 제대로 넘어진 건. 그 때 돌계단에서 구른 이후로 더 이상 이런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예 넘어질거라면.. 그렇다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미련을 버려야한다. 그 처절한 몸부림이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우스꽝스러울 지 아니까. 안 그래도 넘어져서 부끄럽고 아픈데 그런 몸짓으로 우스개거리가 될 필요는 없다. 깔끔하게 넘어지고 번개처럼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에구구구.. 처자 무릎 오지게 깨졌네.. 쯧쯧" 하고 걱정까지 해주면 더 곤란하니까.   

알면서도 나는 처절한 몸부림을 잊지 않았다. 이리저리 왔다갔다 온 난리를 치다가 결국 넘어졌다. 뒤에 따라오던 남.학.생들이 킬킬댄다. 아주머니는 큰소리로 걱정해준다. 이씨. 난 아프고 부끄럽고 여튼 힘들구만... 

결국 내가 타려던 지하철은 저만치 멀어지고 나는 화장실로 가서 구멍이 송송나다 못해 찢어진 스타킹을 벗었다. 벗고 났더니.. 헉.. 피가 철철..ㅜㅜ 

그런 다리로. 두실에서 센텀까지. 장장 40분을.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출근 시간에 말이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여직원분이 "어머, 넘어지셨어요..." 걱정해준다. 흑.. 여기저기서 온정 가득한 손길로 밴드도 준다. 물티슈로 상처를 닦아내고 밴드를 붙이고 새로 산 스타킹을 신었다. 깜쪽같다. 그냥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걸으면 안다. 어거정하게 무릎을 굽히고 흐느적거리는 몸이라니..ㅜㅜ 

걸음마를 다시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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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10-2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많이 다치셨어요? 아프시겠다.
당분간 치마 못 입고 다니시겠네요.... ㅠㅠ

저도 비오는 날, 신호등 돌진하다가 죽 미끄러져 진흙탕에 어퍼져서 얼마나 창피했던지..
갑자기 그 기억이 나네요.

꼬마요정 2011-10-25 14:49   좋아요 0 | URL
전 꿋꿋하게 치마 입고 다닐거에요~^^;; 긴 치마 입으면 되죠~~~ㅋㅋ

정말.. 창피해서 말이죠..ㅠㅠ
아픔보다는 쪽팔리는 게 더 싫어요.. 누가 동영상으로 찍진 않았겠죠??ㅜㅜ

후애(厚愛) 2011-10-26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은 괜찮으세요?
처녀적에는 치마를 입고 다녔는데 결혼해서 치마와 멀어지고 청바지만 입고 다녀요.^^

꼬마요정 2011-10-26 10:54   좋아요 0 | URL
여전히 피가 찔끔찔끔 나고 있어요 ㅜㅜ 아파요ㅠㅠㅠㅠㅠㅠ

결혼하셔도 치마 입고 하세욤~ 치마 좋아요~~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