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문장들이 만들어내는 침묵과 공허의 울림을 만날 수 있다. 그 울림은 아름답다. 사랑과 절망, 분노와 같은 영혼의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몸므와 나니의 사랑을 만날 수 있다. 몸므와 나니의 사랑. 몸므는 나니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허전해진다. 사랑에 빠진 몸므의 말: '누구나 어둠의 편린을 쫓다가 어둠에 빠져들지요. 포도알은 부풀다가 터지구요. 초여름에 자두는 모두 벌어지고 말아요. 유년기가 끝날 때 어떤 남자가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나니의 시선은 평생 그의 마음에 살아있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갈망하며 사랑을 나눈다. 끊임없이 서로를 찾고, 기다리며, 육체적 사랑을 나눈다. 청춘남녀의 순결한 육체적 사랑. 그 사랑은 관능적이며 아름답다.

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몸므의 슬픈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을 나누던 몸므와 나니. 나니의 약혼자 방라크르는 그들에게 질산을 뿌린다. 몸므는 두 눈만 빼고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는다. 그의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다. 나니는 손에만 화상을 입는다. 화상을 입는 몸므. 나니로부터 버림받는다. 절망에 빠진 몸므. 도둑질과 창녀들에게서 쾌락을 찾는다. 그러다 자신이 오직 나니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행위를 그만둔다. 어느날, 몸므를 찾아온 나니. 자신은 결혼했으며, 아이를 하나 낳았다고 말한다. 방황과 괴로움과 분노의 나날. 몸므의 나이 49. 들판에서 한 청년이 그의 목에 칼을 박는다. 몸므가 자신의 짐을 훔쳐갔다고 착각한 청년. 청년은 아버지를 찾아 로마에 왔다. 몸므는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안다. 목에 난 상처에도 그는 행복해한다. 결국, 그 상처로 그는 죽게 된다. 상처를 치료하지 않고 자신이 죽어가도록 방치했다는 면에서 자살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무채색의 판화가 몸므를 만날 수 있다. 그는 채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생시랑 사제의 말: '분노는 유채색의 기피를 의미한다. 로마인 모뮈스(몸므)는 유채색을 거부한 화가였다. 어둠과 분노는 동일한 단어이다. '

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침묵의 판화가 몸므를 만날 수 있다. 몸므는 그의 사랑을 말하지 않는다. 나니와 몸므의 사랑에는 몸짓만 있지 언어는 없다. 잃어버린 사랑을 그리워하는 몸므에게 언어는 없다. 그의 판화 속에는 욕망에 사로잡힌 남녀의 육체만 있다. 사랑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 몸므의 말: '이유를 대는 것은 사랑을 황폐하게 만드오. 사랑하는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지. 인간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느낌에만 기뻐하기 때문이오.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로마의 테라스에 가면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판화가 몸므를 만날 수 있다. 몸므는 육체적 욕망에 사로잡힌 남녀를 주로 그린다. 그의 판화는 사랑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어둠에서 끌어내는 작업이며, 사랑하는 단 한 사람과의 끝없는 대화이다. 육신이 현실에서 사라져 버린게 아닌데도 더 이상 볼 수 없는 여인을 꿈꾸는 작업이다. 그가 그리는 모든 것은 그녀로부터 나온다. 몸므의 말: '나는 그녀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지만, 꿈, 이미지, 파도, 풍경에서 정작 내가 본 것은 그녀의 무엇이나 혹은 그녀로부터 나온 무엇이지요. 다른 모습으로 변해 나는 그녀의 마음을 유혹했어요.'

몸므의 판화들. 그것은 잃어버린, 부재하는 대상(나니)에 대한 꿈이며, 사랑이며, 허기며, 불안 그리고 비통과 분노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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