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유혹하는 글쓰기 中

 

 

 

 

소심한 작가들이 수동태를 좋아하는 까닭은 소심한 사람들이 수동적인 애인을 좋아하는 까닭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수동태는 안전하다. 골치아픈 행동을 스스로 감당할 필요가 없다. 빅토리아 여왕의 말을 빌리자면, 주어는 그저 눈을 지그시 감고 영국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만이다(빅토리아 여왕이 첫날밤을 맞는 딸에게 해주었다는 충고 - 옮긴이). 그리고 자신감이 부족한 작가들은 수동태가 자기 작품에 신뢰감을 더해주고 더 나아가 어떤 위엄까지 지니게 해준다고 믿는 것 같다. 혹시 사용설명서나 변호사의 기소문을 장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생각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소심한 작가들은 '회의는 7시에 개최될 예정입니다'라고 쓰는 것은 '이렇게 써놓으면 다들 내가 정말 알고 하는 말이라고 믿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은 던져버려라! 말도 안 된다! 어깨를 쫙 펴고 턱을 내밀고 그 회의를 당당히 선포하라! '회의 시간은 7시입니다'라고 써라!, 자, 어떤가! 이제야 속이 후련하지 않은가?

수동태로 쓴 문장을 두 페이지쯤 읽고 나면 - 이를테면 형편없는 소설이나 사무적인 서류 따위 -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동태는 나약하고 우회적일 뿐 아니라 종종 괴롭기까지 하다. 다음 문장을 보라. '나의 첫 키스는 셰이나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계기로서 나에게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맙소사, 이게 무슨 개방귀 같은 소리인가? 이 말을 좀더 간단하게 - 그리고 더욱 감미롭고 힘차게 - 표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셰이나와 나의 사랑은 첫 키스로 시작했다.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부사들로 뒤덮여 있다고 나는 믿는다. 지붕 위에서 목청껏 외치라고 해도 기꺼이 하겠다. 달리 표현하면 부사는 민들레와 같다. 잔디밭에 한 포기가 돋아나면 제법 예쁘고 독특해 보인다. 그러나 이때 곧바로 뽑아버리지 않으면 이튿날엔 다섯 포기가 돋아나고... 그 다음날엔 50포기가 돋아나고... 그러다 보면 여러분의 잔디밭은 철저하게(totally), 완벽하게(completely), 어지럽게(profligately) 민들레로 뒤덮이고 만다. 그때쯤이면 그 모두가 실제로 흔해빠진 잡초로 보일 뿐이지만 그때는 이미 - 으헉!! - 늦어버린 것이다.

148 -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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