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시오노 나나미 여사. 터어키 이스탄불에는 그 할머니가 잘 가는 커피하우스가 있습니다.
터키어로는 커피를 카흐베(kahve)라 하고, 집을 팔리(fali)라 해서 그 찻집은 카흐베 팔리 피에르 로띠(Kahve fali Pierre Loti)입니다.
시오노 할머니의 전쟁 3부작 중 첫권인 ‘콘스탄티노플의 함락’편이 바로 이 찻집에서 구상되고 써졌다고 합니다.
그 분이 이 집에 자주가는 이유는 세가지 였습니다.
하나, 골든혼 상류 언덕에 위치해서 이스탄불을 조망하기에 좋은 장소이고, 두 번째는 이 찻집의 커피는 숯불커피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피에르 로띠의 애절한 순정 사랑 이야기 때문이지요.
첫째와 셋째는 같은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숯불커피”(?)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터어키 커피, 소위 터키시 커피(Turkish coffee)는 터어키에서는 튀르키에 카흐베, 또는 그냥 카흐베라 합니다.
원두를 우리나라의 작은 가마솥 솥뚜껑 같은 곳에 올려놓고 참깨를 볶듯이 천천히 저어가며 색상 또한 살펴가면서 천천히 볶습니다.
커피의 예술은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연 커피의 향과 맛이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로스팅을 예술 또는 기술이라 한다지요. 로스팅 테크닉이야말로 커피의 품격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커피콩을 볶을 때 나는 향이 피에르 로띠의 실내를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곱게 갈아 표주박같이 생긴 질그릇 냄비에 넣고 끓입니다. 물론 곱디 고운 커피가루와 설탕을 같이 넣고 끓이지요.
터키시 커피는 설탕 또는 꿀과 커피가루를 같이 넣고 끓여냅니다. 한잔 분량에 커피 한스푼 정도 넣는 다는군요.
이 때는 끓이는 것이 아니라 다린다는 표현이 알맞을 것 같습니다. 화로같은 곳에 바알간 숯불을 담아놓고 그 위에 얹어 끓이니까요.
마치 한약을 달이듯이 그렇게 커피를 달이는 겁니다.
이 커피를 뭐라 불러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한약처럼 달이니 ‘커피탕’이라고 해야 할지.... 숯불에 달이니 숯불갈비라고 하듯이 ‘숯불커피’라고 해야할지....후후
저는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숯불커피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시오노 할머니와 피에르 로띠가 좋아했던 것은 500년 넘은 전통을 고수하는 방식과 로스팅 향이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두 분 모두 글을 쓰시는 작가다운 취향을 미루어 짐작해서요.
그렇게 거품이 일어나도록 달여서는 작은 잔에 따라서 내옵니다. 커피원두가루가 가라앉길 기다리며 진한 커피향을 음미하고, 그 향을 기억하기 위해 가슴 속 깊은 곳에 담는 것이 마시는 사람의 몫이지요.
첫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찻집은 골든혼, 소위 금각만의 상류 언덕배기에 있습니다.
아담하게 작은 집이구요.
아시아 대륙과 유럽대륙이 작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곳, 먼 옛날의 그리이스문명과 로마문명이 합해지고 오리엔트 문명이 혼융되는 문명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스탄불의 몽환적인 전경! 그 전체를 조망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에 있는 소박한 찻집이더군요.
바다 건너편으로는 실크로드의 종착지 위스크다르도 보이구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에 나오는 실케지역도 가물가물하게 보였다 사라졌다 합니다. 런던에서 출발하여 유럽대륙을 가로질러 횡단한 열차의 종점인 그 실케지역.
그리고 바다건너에는 아시아를 횡단한 위스크다르의 하이달파샤 국제역. 기차들도 국제열차가 있다는 것을 이스탄불에서 알았습니다. 기차의 종점역에서 풍기는 엘레지가 솔솔 보이는 듯도 합니다.
전망좋은 찻집의 유리창을 넘어 인류 지혜의 축적인 역사, 로마의 천년 수도 콘스탄티노플과 오리엔트 제국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스탄불의 지난 이야기가 스며 올 듯한 분위기더라구요 - 제 느낌은.
그런데 애수에 젖게하는 것은 그 찻집 옆에 무덤이 있다는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이 무덤이 이스탄불의 피에르 로띠를 추억하게하는 절반쯤 차지합니다. 물론 그 진한 향기와 맛의 커피가 나머지 반이구요.
애수, 엘레지와 애절한 사랑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부터 130여년전인 1876년에 프랑스 해군무관인 피에르 로띠가 이스탄불주재 프랑스 상무관에 부임해 옵니다. 무관다운 씩씩함과 프랑스인다운 감성의 소유자인 멋진 사나이였겠지요.
피에르 로띠는 이스탄불에서 아지야데(Aziyade)라는 한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됩니다. 둘은 늘 이 작은 찻집에서 만나며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밀회를 합니다. 아지야데는 혼인을 한 상태였습니다.
로띠는 파리로 귀임하게 되어 돌아가게 되고, 아지야데는 죽습니다.
훗날, 유명한 시인이자 소설가가 되어 피에르 로띠는 이스탄불로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돌아오게 됩니다. 이미 없는 여인을 찾아 머나먼 마르마라해와 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이스탄불로.
그리고 이 자그마한 찻집을 늘 찾게 됩니다. 사랑했던 여인 아지야데의 무덤이 바로 이 찻집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피에르 로띠는 나머지 여생을 이스탄불에서 보냈습니다.
아지야데의 무덤을 찾아가는 일과 바로 이 찻집에서 시와 소설을 쓰는 일, 아지야데를 추억하는 것이 그의 매일의 생활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여인을 잊지못해 파리를 버리고 이스탄불로 와서 여생을 보낸 피에르 로띠도 죽고나서 이 찻집은 그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찻집에서 명저를 저술한 멋진 할머니 시오노 나나미,
애절한 사랑의 피에르 로띠와 아지야데...
그리고 숯불커피 튀르키에 카흐베...
감성적인 제가 이스탄불을 추억하는 코드들입니다.
오늘쯤 가능하다면 ‘숯불커피’ 한잔쯤 마시면서 오래 오래 그들을 추억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 Alhambra™ (커피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