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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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비로소 귀신이 될 수 있는 걸까? 살아서는 귀신이 될 수 없는 걸까? 작가인 천쓰홍은 작가의 말에서 줄곧 귀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또한 줄곧 '울음'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도 했다. 귀신과 울음. 스산하고도 안타까운 두 단어의 조합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용징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타이완의 작은 시골 마을인 용징에 천씨 가문이 다른 이웃들과 함께 격동의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의 끝자락에 천씨 집안의 막내아들 텐홍이 용징으로 돌아왔다. 독일에서 동성 애인을 살해한 죄로 감옥에서 형을 살다 돌아온 그의 귀국길을 따라오다 보면 현재와 과거가 뒤섞인 이야기 속에서 '울음을 삼킨 귀신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살아있어도 귀신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타이완은 아주 오랜 기간 계엄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들에게 사회주의자라는 낙인은 죽음이었다. 또한 성 소수자와 여성 역시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성 소수자여서 경찰에 잡혀가거나 마을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태어난 아이가 딸이어서 폭력을 감내해야 하는 엄마의 삶은 또 다른 딸에게로 되물림 되었다. 우리의 근대사와 마찬가지로 타이완의 근대사 역시 폭력과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렇다. 개개인들은 귀신이 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말을 할 수 있었을테다. 그랬기에 그 곳은 귀신들의 땅이었고, 그 곳에 사는 귀신들은 여전히 울음을 삼키지 않고는 말 할 수 없는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텐홍은 텐산과 아찬의 일곱번 째 아들이자 차남이다. 그는 동성애자이고 독일에서 연인 T를 만났다. 처음엔 가난하지만 낭만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가난과 성소수자는 끝까지 낭만적일 수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일들은 말 그대로 죽지 않으려면 해야하는 일들이 되었고, 신나치주의는 유색인종과 성소수자를 반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비극적으로 끝났다. T는 죽었고, 텐홍은 감옥에 갔다 타이완으로 돌아왔다.


텐홍의 누나는 모두 다섯 명이다. 천수메이, 천수리, 천수칭, 천쑤제, 천차오메이. 간장공장의 딸이었던 엄마 아찬이 눈물로 낳은 아이들. 내리 낳은 다섯 명이 모두 딸이자 아찬은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아찬의 시어머니이자 아산의 엄마는 며느리와 손녀들에게 가혹했다. 아산은 그런 그녀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고, 마침내 아찬이 아들인 천텐이를 낳자 어느 정도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텐홍을 낳았다.


일곱 명의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았다. 각자의 욕망을 따라 질투도 하고 체념도 하면서 말이다. 그들은 혼자 살았더라면 오히려 더 잘 살 수 있었을까. 한 가정의 일원이 되면서 그들은 오히려 자신을 잃어갔다. 남편에게 맞으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다섯째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면서도 방 밖을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성적 취향도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천씨 집안과 엮인 또 다른 귀신들이 있었다. 밍르 서점의 주인들, 징쯔총, 뱀 잡는 사내. 그들에게 내리꽂힌 죄명은 결국 사회의 억압과 눈 감은 이웃의 비겁함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텐홍은 돌아왔고, 천씨 집안의 자녀들은 모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같은 기억을 공유한 가족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아찬은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 있을까.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이 생각났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김약국의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이 겹쳐졌다. 결국 그들은 개인들의 역사가 만들어 낸 욕망의 결과와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삶과 죽음을 견뎌야 했고, 사랑하고 질투하며 복수하고 고통받아야 했다. 용징의 사람들이나 통영의 사람들이나 모두 시대의 풍파를 맞았고, 개인의 삶은 깃털보다 가벼웠다. 가벼웠기에 살아남는 이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전후세대를 지난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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