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영원의 시계방 초월 2
김희선 지음 / 허블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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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로 계속 간다면, 그래도 어딘가 닿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원이라 불릴만할까? 더 이상 '시간'이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그 어떤 것, 영원. 어쩌면 그것은 찰나를 가리킬 수도 있고 영겁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환상을 노래하는 이야기가 있다. 


<공간 서점>은 내가 의뢰인으로부터 '천금당' 지금은 '공간서점'으로 바뀐 곳의 지하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아주 오래 전 의뢰인의 아버지가 읽었고, 의뢰인이 언뜻 스쳐갔던 그 책 <공기를 이용하여 우편물과 화물을 빠르고 확실하게 전달하는 방법>은 아주 신기하고 묘했다. 5.18을 떠올리게 하는 그 사건을 겪은 아버지는 마음에 빚이 있었고, 엉뚱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냈다. 그 책으로 만든 터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가는 아들은 어쩌면 아버지와 함께할 때 아버지를 더 알지 못했던 것에 늦은 후회를 하는 것은 아닌지.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갈까? 누군가는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전하러 갈 수도 있고, 누군가는 행동하지 못한 죄책감의 무게를 덜어내러 갈 수도 있겠지. 그렇게 사람은 언제나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이 모여 무엇을 만들까?


<오리진>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물건인 핸드폰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세상은 가끔 아주 평범하거나 오히려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에게 세상을 바꿀 기회를 주곤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이야기는 그 수단으로 핸드폰을 선택했다. 가장 신성한 곳에 있던 그것이 가장 천한 곳에서 어떻게 쓰일까.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달을 멈추다>... 제목부터 좋지 아니한가. 내가 이 책의 이야기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여긴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월명사의 향가가 나오니까. 우리가 익히 아는 <도솔가>, <제망매가>가 현재와 과거를 이어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 재위 시절,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우박이 내리고, 혜성이 나타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샘과 우물이 마르고, 호랑이가 궁에 들고,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가 뽑히는 등 재해가 끊이지 않았다. 멀리 당나라에서는 안국산의 난이 일어나 현종이 도망다니기도 했고. 그런 시대에 월명사는 해가 둘 나타나자, <도솔가>를 지어 모두를 감동시켰고, 누이가 죽자 <제망매가>를 지어 심금을 울렸다. 그는 언제나 사천왕사에 살면서 피리를 잘 불었는데, 일찍이 달밤에 피리를 불며 문 앞의 큰 길을 지나가자 달이 그를 위해 움직임을 멈추었다. 


군나르는 만날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 그리운 누이일까, 그 자신일까, 아니면 '나'일까?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하지만 '나'가 일으킨 날개짓이 통한다면 새로운 평행세계 혹은 세상이 열릴까? 어쩌면 그것은, 전생의 업보를 끊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전생, 현생, 내생은 하나이니까. 육체나 자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라는 게 단순히 육신에서 벗어나 영혼이 혹은 정신이 자유롭게 떠도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형태든 어떤 상태든 깨달은 자는 그 자체로 평정하고 자유로운 것을... 그래서 <도솔가>의 꽃 한 송이가 세상을 바꾸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해진 일이 정해진 대로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저 일어난 것은 아님을. 미타찰에서 만날 '나'는 정해진 수순일지라도 내가 선택한 결과이니까.


<꿈의 귀환>은 상상을 풀어낸 이야기이다. 누구나 생각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세상이 그저 누군가의 꿈은 아닐까? 장자가 한 말도 있지 않은가. 나비의 꿈인지 나의 꿈인지 라고. 그저 생각만 하던 이야기를 환상적으로 풀어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영화 <매트릭스>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깨달으면 알게 되리니.


<악몽>은 <맥베스>의 세 마녀와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전극 장치는 과연 축복일까, 저주일까. 살아가며 시간이 지워주고 재구성하는 '기억'과 전극 장치에 의해 가공되고 지워지는 '기억'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이 역시 스스로 깨어나야 할 일이겠지.


<가깝게 우리는>은 미래의 우리에게 묻게 되는 윤리 도덕 같은 이야기이다. 인형이든 사이보그든 인간은 어디까지 인간이고 로봇은 어디까지 로봇일까. 로봇에게도 권리가 있을까. 얼마 전 물류 배달 로봇이 넘어지는 영상을 봤다. 사람들은 그 로봇에게 감정을 이입하여 로봇도 오래 일하니까 과로해서 쓰러진 것이라고 측은해했다. 로봇에게 '과로'해서 '힘들다'는 감정이 있을까. 완벽한 시계를 만들기 위해 완벽한 태엽 인형을 만드는 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일까. 미래에는 순수 인간이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는 이야기이다.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해 통제되는 세상은 한 개인을 지워버릴 수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 거대한 힘은 정부이거나 AI이거나 아니면 둘 다 이거나.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은 행복해질까. 기술은 중립적이라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달라진다고 하지만, 원래 힘을 가진 이들이 그 기술을 가지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니까 우리는 그들의 의도가 선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걸까. 하지만 한 개인이 치는 발버둥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될지언정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어쩌면 바깥이 아닌 내 안을 보아야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둬 둔 나의 진짜 모습은 석탄 광부이지만 바깥에 보이고 싶은 모습은 슈퍼스타 축구 선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가 아니기에 축구 스타는 몰락하고,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것일지도. 하루 일을 마치고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사실 가장 원하는 일이었을텐데. 삶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끝없는 우편배달부>는 인공지능의 한계를 말하는 것일까, 어처구니없는 오류를 말하는 것일까. 우연히 떨어진 케찹 때문에 감정을 갖게 된 로봇(바이센테니얼 맨)처럼 세상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이유로 급격하게 바뀌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건 극소수, 깨달은 자라고 불리는 이들일지도. 그리고 또 다시 선택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진실을 알게 되는 건 가혹한 일이고,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다. 우리 개개인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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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4-16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라는 말씀이지요? 좋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전 이이가 쓴 <무한의 책>을 정말 재미나게 읽었거든요. 기대가 큽니다. ^^

꼬마요정 2023-04-16 22:41   좋아요 1 | URL
저는 참말로 좋았습니다. 특히 <달을 멈추다>가 참 좋았어요. 골드문트 님께도 좋아야 할텐데 말입니다. <무한의 책> 좋으셨단 말이지요? 저도 냉큼 집으러 갑니다. 기대 되네요!!^^

희선 2023-04-17 0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젊은작가상에 실린 단편 한편밖에 못 봤어요 그 뒤에는 못 봤네요 이 책 괜찮다는 말 보기도 했습니다 핀 에세이 첫번째로 나오기도 했더군요 처음엔 소설인가 했는데, 에세이더군요 김희선 작가는 약사인가 봐요 약과 책 비슷하기도 하죠 읽지 않았지만, 어떤 책에서 약을 처방하기도 하더군요


희선

꼬마요정 2023-04-17 14:44   좋아요 1 | URL
네 김희선 작가는 약사라고 하더라구요. 이 책 저는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미있게 봤어요. 그러고보니 희선 님과 이름이 같아요. 앞으로 이 책을 보면 희선 님이 먼저 떠오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