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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어가 나타났다 ㅣ 환상문학웹진 거울 대표중단편선 17
정보라 외 지음 / 아작 / 2022년 8월
평점 :
나는 안예은 님을 좋아한다. 특히 '홍연'이랑 '이방인', '피루엣', '상사화', '난파', '능소화' 등등의 노래를 좋아한다. 가사도 너무 멋지다. 특히 '홍연'은 가사가 진짜 좋은데 그 중에 '당신은 세상에게 죽고 나는 너를 잃었어'란 가사는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러다 '창귀' 뮤직 비디오를 유튜브로 틀었다가 옆에 있던 남편이 기겁을 했다. 아마 보신 분들은 아실텐데 좀 으스스하긴 하다. 하지만 '창귀'나 '물귀신', '액귀' 등은 자기가 놓여나려면 다른 이를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아야 하기에 안타깝고 슬픈 귀신들인 것을...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 안예은 님의 '홍연'과 '위화'를 모티브로 삼아 쓴 소설이 있다. <위화>는 최지혜 작가님의 이야기이다. 위화(衛華)... 빛의 호위? 혹은 빛을 수호하다? 이런 뜻인 것 같은데 너무 가슴 아픈 커다란 마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이라는 말로는 담을 수 없는 커다란 마음으로 그대의 한숨을 들고 이 세상 끝까지 달려가 허공에 흩뿌리고 돌아오는 화자는 도대체 어떤 이일까. 수많은 환생 끝에 그리움을 받아들이고 망각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인연에 마침내 '나'는 그 고통마저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홍연>은 구한나리 작가의 이야기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마저 탐내는 해금 타는 실력을 가진 오라버니는 '미르'라 불리는 '물의 용'에게 존재를 빼앗긴다. 부역을 간 줄만 알았던 오라비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하영은 어머니를 집에 두고 오라비를 찾으러 수도로 간다. 노랫말처럼 세상에게 오라비를 빼앗긴 하영은 끝내 오라비를 잃었다. 끊어진 현은 끊어진 붉은 실을 상징하듯 다시는 울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오라비를, 하영은 만났을까. 애달픈 사랑이다.
<달콤한 죄를 지었습니다>는 남세오 작가의 이야기이다. 달콤한 것을 즐기는 행동은 과연 죄일까? 왜 사람들은 달콤한 것, 칼로리가 높은 것을 먹고나면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비만'이 죄악시 되고, '다이어트'가 일상이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카르파탐'이라는 칼로리도 없고 맛있는 단맛을 내는 물질이 개발되었다. 칼로리가 없는데 맛있다? 이건 가히 혁명이 아닐까. 이거 만든 사람은 노벨상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카르파탐이 든 음식을 먹은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낀다. 그런데 우습게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죄책감을 심어주고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히 죄가 아닌 것을 죄라고 하니, 바꿔야 하지 않을까.
<거인을 지배하는 법>은 지현상 작가의 이야기이다. 영화 <맨 인 블랙>이 생각난다. 초반부에 결말이 예상되는 이야기인데, 결말을 예측할 수 있다는 자체가 씁쓸한 이야기였다. 결국 우리나 우리보다 조금 못하거나 우리보다 조금 더 뛰어난 지성을 가진 존재는 모두 침략 본능이 있는 것인가. 어쩌면 진짜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건 아닌가 또 생각해 본다.
<문어>는 정보라 작가의 이야기이다. 강사법 때문에 수많은 강사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 상황에서 대량 해고된 강사들은 노조에 가입해고 농성 중이었다. 그런데 위원장님이 어디선가 나타난 문어를 잡아 먹었다. 아니, 어디서 문어가 기어와서 "지구 - 생물체는 - 항복하라" 이러면 악, 문어가 말을 한다 내지는 엄마야 하면서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위원장님은 군침을 삼키며 문어를 잡아 먹었다. 문어 숙회가 맛이 있긴 하지만, 찝찝하지 않을까? 말을 하는 문어라니. 내가 볼 때 말을 하는 외계 문어는 하필 대한민국에 와서 망한 거다. 우리는 문어를 좋아하고 잘 먹으니까... 엉겁결에 같이 있게 된 '나'는 괜히 위원장님과 함께 알 수 없는 어떤 정부기관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심문을 당하고 입을 다무는 조건으로 나오긴 하는데... 그 뜬금없는 문어가 나타나도 잡아먹을 정도라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괜히 희망을 가져본다.
<실버해머>는 엄정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유전자 조작이나 유전자 교정 같은 일들이 과연 윤리적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과학 기술은 윤리를 모른다지만, 호기심으로 수많은 문들을 열어보기엔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말이다.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일들이 기술의 진보란 이름으로 행해지면, 인간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되며 어디까지 축소될까. 영화 <매트릭스>보다 더 비극적일 것 같은 이야기. 증강현실이 일상이라면 우리 뇌에 장착된 것들을 벗으면 아무것도 없을 지도 모른다. 실체 없는 환상 속에서 진짜라 믿으며 살아가는 삶... 거기다 GOU(Grand Old men's Union)라는 단체는 이름만 봐도 딱 꼰대같지 않은가. GOU는 과거 권력자들의 인격과 지성을 통합하여 만든 인공지능인데, 우리의 우주를 통합하여 다스리는 기구이다. 그리고 반대 세력으로 영 건(Young Gun)이란 단체가 있고. 율리와 모라는 둘 다 인간의 유전자를 교정하여 인간의 몸이 아닌 실험기구에서 태어난 희망둥이다. 그러나 둘의 삶은 달랐고, 율리는 기득권을 향해, 모라는 전복(顚覆)을 목표로 한다. 이런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신의 모든 것>은 클레이븐 작가의 이야기이다. 가장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팬데믹을 겪은 우리는 전염병이 얼마나 우리 사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지 잘 알고 있다. 만약 이런 역병을 막지 못해 국가가 부도 나고 무정부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무서울까. 인공장기 혹은 살아 있는 장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과 혼란을 틈타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난무(亂舞)할 것이다. 얼마나 인간이 하찮아지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장기를 배양하는 모체로 쓰고 동의 없이 신체를 스캔한 후 동의 없이 장기를 떼낸다. 있을 법한 미래라 무섭고, 포지판도 없는 길을 따라 걷는 '나'는 건조하다.
<정신강탈자>는 엄길윤 작가의 이야기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저 누가 요약해 놓은 것을 보며 안다고 생각하고, 누군가 읽어주는 신문을 듣고, 누군가 떠먹여주는 지식이나 거짓 뉴스 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쉬운 시대. 하지만 '나'로 살아가려면 최선을 다해 '나'란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미지의 존재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고, 멍하니 사는대로 살지 않으려면 말이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전혜진 작가의 이야기이다. 남아가 아니라는 이유로 태어나지도 못한 채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원혼들이 무당을 통해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린 시절, 주변엔 딸 여럿에 막내가 아들인 경우도 많았고, 첫째 딸과 둘째 아들 사이의 터울이 큰 경우도 많았다. 낙태죄는 언제나 있었다는데, 임신중절이 어떤 때는 죄가 되고 어떤 때는 권장 되는 이상한 현상도 있었다. 그래서 작가는 원점으로 돌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고쿠라에서 J를>은 고타래 작가의 이야기이다. 운명적 만남을 믿는가? 우연인지 운명인지 J가 일본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된 고태원은 일본으로 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J를 잊지 못한 고태원은 과연 J를 만날 수 있을까. 적당히 말랑말랑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 이야기였다.
<통곡왕>은 곽재식 작가의 이야기이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궁홀산(弓忽山)은 고조선의 도읍이다. 백악산의 아사달 혹은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고조선 때 향부란 사람이 삼성(三聖)의 도(道)를 깨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인데, 향부가 아플 때 궁홀거사란 이가 삼성의 도로 그를 낫게 했기에 그러했다. 세상 이치를 깨닫는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는데, 도를 깨친 이는 세상이 고통임을 역설한다. 우리가 믿는 것과 있는 사실 그대로가 동떨어져 있을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공포일까, 회피일까. 궁금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