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궁궐 기담
현찬양 지음 / 엘릭시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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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천예록>, <학산학언>, <용재총화>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기이한 이야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은 무척 흥미롭고 신비한데, 이런 기담이나 야사들을 들여다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진 공포나 열망 같은 것들을 알 수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이야기들을 차용해서 조선 시대 태종 때 교태전 궁녀들을 중심으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백희는 원래 교태전 소속 나인이 아니었으나, 태종이 원경왕후와 다투고 교태전의 궁인들을 내쫓는 바람에 교태전 나인이 되었고, 당장 교태전은 냉궁 아닌 냉궁이 되어 금부도사 지키며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왕권 강화에 목을 맸던 태종은 중전의 가문이 권력을 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하여 원경왕후의 친동기들 및 수많은 인척들이 역모나 각종 죄를 뒤집어 쓰고 사라졌다. 거기다 별 별 가문의 여식들이나 궁녀들을 후궁으로 삼아 원경왕후의 입지를 약화 시켰다. 그러니 원경왕후가 화가 나지 않을까. 태종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가. 원경왕후가 없었다면 그가 왕이 될 수 있었을까? 일등 공신 중의 일등 공신이건만, 여자라는 이유로 내궁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가지지 못했다. 그녀가 권력을 누리려면 조정에서 활약하는 남자들이 필요했고, 자신의 가족 및 친척들이 힘이 되어줄 수 있겠지만, 외척이라는 이유로 축출당하고 원경왕후는 홀로 쓸쓸해졌다. 여장부였는데... 이성계도 그렇고 이방원도 그렇고 그 시대 여자들이 무예도 익히고 정사를 돌볼 수 있었다면 그녀들이 왕이 되었을 것이다. 신의왕후 한씨나 신덕왕후 강씨, 원경왕후 민씨, 인수대비 등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러니 철저히 견제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는 원경왕후가 주인공은 아니고, 그렇게 흉흉하던 시절 교태전 및 곳곳의 궁녀들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피를 뿌린 곳인 경복궁은 도깨비 집터였단다. 백희가 살던 집이 딱 교태전이 있는 곳인데, 백희가 살던 집이 바로 도깨비 집터였다. 백희만이 살아남은, 인간 100명을 잡아먹으면 용이 된다는 비비(영노)가 살던 집이다. 백희는 가까스로 살아남아 경복궁으로 들어왔다. 영노는 통영오광대 등 탈놀이에서 언급되는 상상의 동물이다. 탈놀이에서 비비가 양반 백 명을 잡아먹는 동물인데, 99명을 잡아먹은 비비에게 쫓기던 양반이 자신은 양반이 아니다 라고 하니까 비비가 양반 아니라도 잡아먹을 수 있다 이런다. 놀란 양반이 자기는 사람이 아니라 쇠붙이다 이러면 비비가 쇠붙이는 쫀득쫀득하니 맛있다 이런다. 결국 여차저차해서 이 양반이 쫓겨나며 탈놀이는 끝나는데, 이 상상 속의 동물이 어떻게 백희의 목구멍에 살게 되었을까? 이 책에서는 변형되어 있긴 하지만 꽤나 흥미진진했다. 


마치 괴담처럼 궁에 들어오는 궁녀들은 비망록으로 내려오는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다. 그건 궁녀들이 만든 것이고, 으스스하기까지 한 규칙들이 제법 있다. 예를 들어, 고양이매 즉 부엉이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던지, 우물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던지 말이다. 이러한 규칙들이 생긴 연유가 씁쓸하면서도 다정하여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기도 했다.


여러 기이한 이야기들이 계속 변형되어 나와서 나도 모르게 어? 이 이야기는 조선 중기 이야기인데 태종 때 이야기로 나왔네 하는 것들도 있었다. '강수'가 등장하는데, 강수는 신라 태종 무열왕 때 사람이다. 강수의 태몽이 머리에 뿔이 난 것이었는데, 아주 똑똑한 유학자였다고 한다. 그런 강수가 조선 태종 때인 이 책에 등장한다. 신라 때부터 살았다고 하니 그 강수가 맞는 것 같고. 그런데 강수의 기이한 일화 중 하나에 귀신을 점호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귀신 점호 이야기가 원래는 임방이 남긴 <천예록>에 나오는 기록이고, 조선 중기 때 이야기이다. 강수의 기이함을 이야기 하기 위해 이 기담을 끌어온 것이다. 버드나무가 가득한 것도 비꼬기 좋아 보였다. 고려 왕건과 장화왕후 오씨의 이야기를 이성계에게 갖다 붙인다고 말이다. 목이 마른 훤칠한 장수에게 버들잎을 띄운 물바가지를 건네는 이야기 말이다. 


고독, 서묘 이야기 등도 내궁의 암투와 엮여 재미있었고, 궁녀들끼리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며 의지하는 것도 좋았다. 결국 내명부에서 왕의 여자로 살아가는 것보다는 궁 내의 일을 하며 자부심을 가지는 게 더 좋아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들이 있었기에 궁궐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강수가 등장하고 강수가 궁궐 내의 괴이를 조사하면서 끝이 났다. 이제 강수와 비비와 백희와 노아는 어떻게 될까. 끝내 폐비가 되지 않은 원경왕후의 한은 어떻게 될까. 수많은 피를 뿌린, 심지어 며느리인 세자빈의 가문까지 도륙해 버린 그 왕은 여기서 어떻게 될까. 비비가 잡아먹으면 좋겠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에서 왕과 왕비가 아닌 그들을 보필하던 수많은 궁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기담의 형식을 빌었기에 그들의 애환을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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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12-09 17:2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감기 조심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