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계약서는 만기 되지 않는다
리러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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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란 무엇일까.


주인공인 서주는 어떤 사연인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강복주 할머니의 단독주택에서 세입자들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가 업둥이처럼 거둬줘서 이 곳에서 숙식을 해결하지만 할머니와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았고, 계약서 상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도 아니다. 그저 함께 한 세월만이 그들의 관계를 증명할 뿐이다, 법이란 잣대를 들이대면 부질없을. 그렇게 십여 년을 살았고, 할머니의 주택은 낡았고, 세입자는 이제 겨우 두 명만 남았다. 3층까지 있는 듯한 이 집은 할머니의 삶 만큼이나, 서주의 아픔 만큼이나, 지나 온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낡고 낡았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끝나야 하기에 정리를 위해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 말이다. 어느 날 우연히 굴러가는 대추 열매를 따라가서 아귀와 지옥의 악마 혹은 마귀를 만난 할머니는 대뜸 지옥에 세를 주게 된다. 그래서 이 집에 사는 할머니와 서주에게 빈 방마다 지옥의 불꽃이 넘실대고 죄수들의 비명 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살았을 적 장난 친 음식들을 양푼이에 담아 먹어야 하는 죄수가 부엌에서 밥을 먹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다.


우리는 늘 삶이 잔잔하기를 바라지만 때론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에 삶을 싣기를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서주와 강복주 할머니는 늘 거센 파도 위에서 살아왔기에 그 지옥이라는 것이 새삼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늘 그랬으니까. 이 삶이 지옥이라고, 오히려 지옥에 돈까지 주고 있다고. 아들이 둘인 할머니는 똑똑했던 큰아들을 잃었고, 덜 똑똑한 아들을 내쫓았다. 홀로 자식들을 키우고 엇나간 자식들을 잃으면서 할머니는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그래서 집에 들어 온 서주를 내치지 못했을 것이다. 저 어린 것이 이 세상 풍파 앞에 어떻게 살아남을까 싶어서. 그래서 서주에게 욕을 퍼부으면서도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의지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할머니 역시 서주 때문에 이 지옥 같은 세상을 버리지 못하고 서주를 의지하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와 서주는 아무 관계도 아니지만 누구보다 끈끈하게 이어진 관계였다. 그리고 그 연대를 가족이라 부르지 못하면 도대체 무엇을 가족이라 불러야 할까.


서주의 아르바이트 하는 식당부터 할머니의 둘째 아들 정효섭과 중간에 야릇한 인연으로 엮인 악마에 이르기까지 이야기는 마치 톨스토이가 말하는 '불행한 가정'의 이야기 같다. 안나 까레니나는 파국으로 치달았지만 키티는 행복을 거머쥐었다. 서주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다, 불행 속에서도 행복은 살아있고, 행복 속에서도 불행은 숨쉬고 있으니 그것이 삶일테지.


악마가 불행을 즐거워하고 결핍에서 달콤함을 찾는다면, 그 존재가 할머니나 서주를 선택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 주택에는 저 먼 나라의 오래된 저택이 갖고 있을만한 비탄이 서려있으니까. 타인이 베푸는 친절을 그대로 받아들일만큼 따뜻함을 느껴보지 못한 서주와 사랑을 주는 법을 잘 몰랐던 할머니와 어리석고 겁 많은 아들들과 돈에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이 함께 만든 상처와 슬픔이 이 주택에 잘 버무려져 있으니까. 사실 지옥은 달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온갖 슬프고 더럽고 악한 생각들이 지옥인 것은 아닐까. 굳이 지옥에 세를 주지 않더라도 내 마음 속 지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누군가를 미워하고 저주하고 누군가의 불행에 슬그머니 미소 짓는 그런 추악한 일들이 일어난다. 마음 속 생각을 경계하고 내뱉는 말을 조심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들을 어쩌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 누군가 이 세상이라는 감옥을 탈출한 건 부처와 노자 뿐이라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책을 읽다보면 여기 나오는 '악마'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진다. 저승사자가 따로 나오기 때문에 지옥의 죄수들을 고문하고 관리하는 이 '악마'는 도대체 뭘까. 할머니는 마귀 새끼라고 하고 서주는 악마라고 하는데, 뭔가 동양이 생각하는 지옥의 간수보다 서양이 생각하는 악마에 더 가까운 듯 한데 뭔가 또 묘하게 정이 많은 게 동양적인 느낌이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 같다가도 만화 <흑집사>에 나오는 세바스찬 같기도 하다. 아니면 <신과 함께>에 나오는 저승사자들이나 <내일>에 나오는 저승사자가 더 가까울까. 사실은 '유혹'에 제일 가깝지 않을까 싶다. 빠져들면 안 되는데 빠져들고 싶은 그런 유혹. 절제를 모르는 탐닉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악마에 제일 들어맞을 듯하다. 그래서 서주의 선택은, 심지어 만기가 없을 것 같은 그 계약은 사뭇 무섭기까지 하다. 


어떻게 보면 아름답고 영원한 사랑 같지만, 어떻게 보면 이제 헤어나올 수 없는 마약 같은 것에 중독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삶을 책임져야 했던 서주니까 이해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어른에게 의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서주가 기댈 데가 생겼으니 축하해줘야 할까. 부디 그 악마가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았기를, 다정함을 독으로 사용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차피 악마든 사람이든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고 완전하지 않으니까. 그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울 수 있기를, 그리하여 꼭 죽어서 천국에 가기보다 살아서도 천국을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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