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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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지구에 처음 물이 생기고 그 안에 미생물들이 자라서 각종 생명체가 되었다. 처음엔 말미잘 같은 형태였다면 조금 지나 물고기가 되고, 날개가 생겨 새가 되고, 악어 같은 파충류가 되고, 육지에 완전히 적응한 포유류가 되고, 어느 날 인류가 등장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테르탈인 등 인류도 진화했고, 신석기 시대가 지나 청동기 시대가 올 무렵, 인간들은 신화란 것을 만들어 낸다.


SF 소설도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신화'가 나타난 것처럼, SF 소설은 과학이 어떻게 이 세상을 변화 시키고, 우주의 다른 생명체들을 찾아내고 맞이하는지를 상상하여 이야기로 풀어낸다.


이 책은 두 개의 장(章)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章)은 '서로에게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이다.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선인장 끌어안기>에서 파히라는 수술 부작용으로 무엇이든 몸에 닿으면 고통을 호소하는 접촉 증후군에 시달린다. 인간이 살면서 어떻게 안 닿을 수가 있을까. 나는 이 글을 읽으며 자신이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바뀌는 '미다스'가 생각났다. 파히라와 미다스는 사랑하는 대상을 만질 수 없다는 점에서 닮은 꼴이다. 파히라는 닿거나 만지면 고통스러워서 어떤 것도 만질 수 없고 닿을 수 없다. 미다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딸마저 황금으로 만들어버린 고통스러운 아버지이다. 미다스는 신에게 기도해 팍톨로스 강에 손을 씻음으로 황금손을 버렸지만, 파히라는 자신과 같은 접촉 증후군을 갖고 있는 소영을 잃고 과학으로도 씻어지지 않는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영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았으나 소영은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파히라를 보조하는 로봇들은 부서진 채 본사로 되돌아갔고, 온기를 원한 파히라는 선인장을 끌어안음으로 자신을 버리려고 한다.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p.31)


<#cyborg_positive>는 인체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는 것을 꺼리지 말자는 '사이보그 긍정 캠페인'이다. 사이버네틱스 신체만이 지닐 수 있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나. 리지는 사고로 눈을 잃고 사이보그 눈을 장착했다. 기계 눈이라는 것이 싫어 더 아름다운 척, 신비로운 척 하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었는데, 아이보그 사에서 홍보 모델을 해 달라고 제안한 것이다. 리지는 그 제안을 받고 자신이 진심으로 사이보그 눈을 긍정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신화 속 인간이 눈을 잃으면 지혜를 얻거나 속죄를 하는데, 미래 속 인간은 기계 눈을 얻고 원래의 눈보다 아름답다고 자신을 세뇌한다. 테이레시아스나 오이디푸스는 두 눈을 잃었지만 인간성을 지켰다. 리지는 아름다운 기계 눈을 장착하고 무엇을 보는가.


<멜론장수와 바이올린 연주자>는 중첩된 세상에서 각각 존재하는 '나'를 보여준다. 얼마 전에 봤던 <대혼돈의 멀티버스>가 떠오르는 이야기였다. 신기하게도 존재감 없는 멜론 장수는 다른 세상의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존재감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신화 속에서는 굴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신선들의 세계나 또 다른 도시로 갈 수 있는데 시간이 다르게 흐르곤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세상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모든 일에 소질 없다고 웃지만, 사실 가장 커다란 능력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 가 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기분은 어떠한가.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는 세상과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인 것일까. 우리는 사람끼리 대화를 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엄청 많다. 자연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우리가 가진 현실의 결이 다르다면, 모두는 각자의 현실 속에 살며 그 현실을 잇는 기계가 이상한 것이지는 않을테다. 


<행성어 서점>은 왠지 나만 알고 있는 혹은 누군가와 은밀히 공유하는 이야기를 담아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공용어라는 언어가 생기고 인류의 뇌에 수만개 은하 언어를 지원하는 범우주 통역 모듈이 설치된 시대라니. 언어 공부를 안 해도 온갖 책을 다 읽을 수 있고 말을 할 수 있다니 정말 경이롭다. 이 기술은 정말 나 갖고 싶다!! 창세기에 따르면 원래 세상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데 인간이 탐욕스럽게 혹은 또 다른 홍수를 대비해 탑을 높게 쌓는 바람에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도록 했다고 한다. 범우주 통역 모듈은 하나의 바벨탑이 아닐까. 하지만 이 모듈로도 읽을 수 없는 책들이 가득한 곳이 있으니, 바로 '행성어 서점'이다. 이 곳의 모든 책에는 모듈을 방해하는 미세 패턴이 새겨진 글자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행성어를 익히지 않으면 이 곳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을 수 없다. 뭔가 사라져 가는 언어로 남겨진 책들이라니, 고대문자를 해독하는 역사학자들의 설렘이 이 교수의 마음이랑 같을까나.


<소망채집가>는 소망을 품은 이들의 바람 그 자체가 2030년이 되어버린 이야기이다. 2030년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 기후위기나 전쟁 등 여러 요인들 때문에 지구가 심각하게 훼손되었을까, 아니면 극적으로 인류가 화해하고 공존을 위해 협력하여 아름다운 지구(인간에게)를 만들어 나가고 있을까, 아니면 인류는 사라지고 지구는 고고하게 새로운 생명들을 키워나갈까. 내가 원하는 미래는 어떤 미래일까. 만약 내가 계속 살아간다면, 나 저 범우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범지구 통역 모듈이 있으면 좋겠다. 소망을 채집하는 존재는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 물론 소망은 역병이나 온갖 재앙을 담고 있지는 않겠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의 미래니까. 


<애절한 사랑 노래는 그만>은 왜 20년을 주기로 발라드 음악이 유행하는지를 알기 위해 미래에서 2003년으로 시간 여행을 한 시간 요원의 이야기이다. 음, 애절한 사랑 노래라면 오르페우스를 빼놓을 수는 없겠지.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찾기 위해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눈에서 눈물도 뽑아낼만큼 애절한 노래를 불렀지. 그런 노래가 주기를 가지고 유행하는 건, 당연히 좋아하는 상대에게 분위기 있어 보이고 멋있어 보이기 위한 게 아니겠는가. 노래를 못해도 분위기를 잡으며 자기애에 취하는 것일지도. 뒤를 돌아 본 오르페우스의 속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포착되지 않는 풍경>은 신비로운 이야기이다.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별안개'는 그 순간을 남겨두지 못한다. 그 광경을 본 사람만이 별안개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서왕모의 서화 정원이나 -그 시대에는 사진기가 없으니까- 무릉도원 같은 곳이 아니려나. 우주 여행을 다니는 그런 시대에 과학으로 순간을 담을 수 없다면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밖에 없을테다. 별안개를 본 사람들이 그린 그림, 글 등은 남아서 많은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겠지. 별안개는 사라져도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었음은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어딘가의 벽화 처럼.


두 번째 장(章)은 '다른 방식의 삶이 있음을'이다. 정말 말 그대로다. 마치 <지구 끝의 온실>을 보는 것처럼 외계 식물이 지구에 '대침투'하여 지구를 오염시킨다고 믿는 미래의 어느 날, 지구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이다. 외계 생명체는 알지 못하기에 두렵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들이 지구를 침략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저 본능대로 번식한다고 말한다. 옛날 유럽인들이 아메리칸 대륙을 침략하면서 각종 바이러스들을 퍼트려 원주민들에게 고통을 주었듯이, 외계 식물은 지구에 사는 인간을 미치게 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다. <오염구역>에 파견된 라트나는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기이한 버섯들을 본다. 이 버섯들은 지구의 것인 듯 하며, 그들의 흰머리는 사실 모두를 연결하는 시냅스 같은 것이 아닐까. <늪지의 소년>이 늪에서 보았듯이, 뜻이 다르다고 '처분'된 오웬이 그 늪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균사체들 말이다. 지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인간은 외계에서 낯선 종들이 지구에 오자 비로소 지구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류를 위한답시고 인간을 실험하고, 조금만 다르면 배척하고, 뜻에 맞지 않으면 '처분'하는 등의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과연 외계 생명체는 지구를 정복하고 인간을 노예로 만들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우리 집 코코>의 코코라는 생명체는 과연 무엇일까. '코코'는 사람들을 홀려 누군가의 먹이로 던져주려는 것은 아닐까. 창귀가 호랑이에게 잡혀 사람들을 호랑이 먹이로 데려가듯이 말이다. 


혹은 <시몬을 떠나며> 같은 이야기도 있다. 시몬이라는 곳은 외계 기생충이 사람들의 얼굴에 붙어 가면을 만들었다. 시몬인들은 표정을 잃었다. 웃음도 울음도 어떤 것도 나타낼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그들은 솔직하게 말한다. 수많은 가면들이 떠 다니는 세계. 그 곳에는 아마 외모로 평가하는 일은 없겠지. 얼굴 표정을 보지 못하니 솔직하게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을테고. 얼굴을 보지 못하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보는 걸까. 프시케가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을 찾아오던 큐피트를 보려고 하다가 촛농을 떨어트려 헤어지게 된 것처럼 상대의 얼굴을 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남의 얼굴은 커녕 자신의 얼굴조차 모르는데 각각의 표정이 어떤 감정을 나타내는지 그들은 모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가면이 떨어져 나가면 오히려 일대 혼란이 올지도 모른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띄운 채 마음 속엔 칼을 품고 있다한들 알아챌 수 없으니.


<지구의 다른 거주자들>은 읽으면서 나랑 비슷하다, 공감했다. 요리를 정말 못하는 나는 뭔가 입에 안 맞으면 짜다고 한다고 한다. 맛 구분을 못하는 거다. 하여간 뭐만 먹으면 짜다고 하니, 생식을 하는거냐는 말도 들어보고... 어릴 때 먹는 걸로 하도 구박을 받아서 먹는 것이 싫으니 어쩌려나. 아니면 나도 지구인이 아닌 다른 행성인인걸까? 관광지랑 지구가 좌표가 비슷해서 나도 불시착을 했는데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 아니겠지. 포슬포슬 구름을 먹는 듯한 느낌은 어떤걸까. 


그리고 마지막 <가장자리 너머>는 근신 처분을 받게 된 라트나에게 보내는 동료 연우의 메세지이다.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어떤 지구인들이 횡포를 부리는 것을 막고 싶어한다. 그리고 낯선 존재에 대해 지나치게 적대적인 태도를 바로잡고자 한다. 그래서 라트나는 버섯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보다 부드럽게 표현하고 오웬을 삼킨 늪의 그 균사체를 연구하고자 한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또한 정의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면서 지구는 균형을 맞추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상상력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좀 더 풍성하게 만들 기회를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개별적 개체성, 그게 인간일 때의 나를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외롭게 만들었어. 동시에 나를 살아가게 했지. 개별족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전체의 일부라는 건 모순이 아니야. 아니면 전체라는 건 애초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지.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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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12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상하는 생각의 방향이 세상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 같아요.~~
막아서기도 이끌어가기도 하면서...

꼬마요정 2022-08-12 16:20   좋아요 1 | URL
보다 공존하는 방향으로 균형이 맞아가면 좋겠어요.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