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른 귀신을 불러오나니 - 여성 호러 단편선
김이삭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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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당한만큼 돌려주면 내 마음은 편안해질까.


이 책은 열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두 독특하고 재밌었는데, 역시나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남유하 작가의 <시어머니와의 티타임>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시어머니는 영화 <올가미>를 떠오르게 했다. 그렇게나 아들이 사랑스러운데 왜 아들을 결혼 시켰을까. 남들처럼 혹은 남들보다 더 잘 살아야 어깨가 으슥해질테다. 그래서 결혼 시키기 싫음에도 결혼 하지 않은 남자는 하자 있어 보이니까 결혼 시켰겠지. 그럼 자연히 짝이라고 데려 온 여자는 꼴도 보기 싫겠지. 오롯이 혼자 사랑받고 싶었는데 아들의 아내라는 여자가 그 사랑을 훔쳐갔다고 생각할테다. 스토커 마냥 아들을 훔쳐보고, 아들을 속박하고, 아들을 독점하려 하는데 그 아들이 죽어버렸다. 이제 남은 건 그 아들을 공유한 두 여자 뿐. 그들은 한 집에 살지만 공유하는 것이 없다. 다만 한 시간 정도의 티타임만이 서로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일 뿐. 시어머니는 '나'와 티타임을 가지지만,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티타임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기존의 이야기 방식이라면 마지막에 '나'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냥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그러지 않았다. 받은 만큼 아니 이자까지 쳐서 갚아준다. 통쾌한 면도 있지만 씁쓸하기도 한 이야기였다. 시어머니가 그렇게까지 아들을 사랑하게 만든 이 사회에도 책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두 번째 이야기인 코코아드림 작가의 <무진도 탈출기 게임 환불 요구서>는 나도 이 게임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내가 만약 하진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진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 같은 미래의 어느 날, 무진도라는 섬에는 '마키나'라는 인공의식이 사람들을 지배한다. 지진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 이 섬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공장에서 물자를 생산하도록 하는 '마키나'를 숭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하진은 의심한다. '마키나'를 의심하고 '구원'을 의심한다. 잘 통제된 사회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의심하기 시작한 사람은 절대로 순응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출입금지구역에 들어갔다 근신 처분을 받은 하진은 우연히 '식물원'으로 가는 길을 묻는 여행객을 만나게 되고 그 동안 알던 것들이 전부 거짓이라는 사실 앞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그 상황에서 게임 유저는 선택을 할 때마다 하진의 시선을 느끼는데... 과연 게임일 뿐인걸까.


세 번째 이야기는 장아미 작가의 <큰언니>이다. 몽환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 가득한 이 소설은 술사가 요술을 부려 그린 살아있는 그림을 보는 듯한 이야기이다. 병에 걸린 엄마가 자식 셋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면 그 자식에 대한 애착과 집착을 어떻게 끊어내야 할까. 거기다 맏이라고 동생들을 지켜야 하는 큰언니의 책임감은 또 얼마나 무거울까. 너무나 사랑하기에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 미련을 실을 잘라내듯 잘라낼 수 있는 것 또한 커다란 용기일 것이다. 염과 원을 담아 만든 그 자수 속 세계는 어머니의 염원과 맏이의 염원이 합쳐져 그들을 지켜냈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그 자수 속 세계에서 다시 만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네 번째 이야기는 전혜진 작가의 <창귀>이다. 창귀는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의 혼을 말하는데, 창귀가 이름을 부르면 절대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세 번을 부르는데 대답을 하게 되면 창귀에게 홀려 호랑이밥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게 호랑이에게 혼을 잡혀 자신 대신 아는 사람을 먹이로 줘야 하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창귀가 이렇게 오래도록 호랑이에게 붙잡혀 있으면 자신이 호랑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애초에는 희생자였으나 종국에는 압제자로 변질되는 것은 아닐까... 여자라서 화풀이 대상으로 죽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폭언을 듣는 세상에서 윤서는 이유 없이 둔기로 머리를 맞는다. 운이 좋아 살았다는 윤서는 자신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가족들과 세상이 원망스럽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나중에 보험을 들지 못한다는 둥 유난스럽다고 윤서의 엄마는 윤서를 나무라고, 이런 사건으로 휴학했는데 회사에서는 불성실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이런 이상한 세상에서 윤서는 사람들 몸에 붙어 있는 촉수나 내장 따위를 보게 된다. 그래, 이상한 세상이니까. 그런 와중에 만난 준상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었다.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준상의 어머니와 할머니와 고모를 만나러 간 윤서는 '창귀'를 만난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무수히 죽어나간 여아들, 여자들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집안의 각종 행사들, 그리고 처음에는 분개했을지라도 이제는 부조리 그 자체가 되어버린 할머니와 고모. 준상의 어머니는 진정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창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 다른 이를 희생시키면 자신은 편해질테지만 그 부조리를 깨 버린 준상의 어머니가 윤서에게도 용기를 주었을까.


다섯 번째 이야기는 배명은 작가의 <매혹>이다. 이 이야기는 들어봤음직한 옛날 이야기를 뼈대로 한다. 나도 늘 궁금했다. 화가 난 초자연적인 존재를 달래는 데 왜 늘 아이나 여자를 제물로 바치는 것인지. 정확히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느 고을에 부임한 원님인지 절제사인지 높은 양반이 마을에서 용신에게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보고 용신을 만나고 오라고 무당도 못에 던지고 아전들도 던져 더 이상 제물을 바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일화가 떠올랐다. 혹은 김녕사굴 전설도 생각났다. 서은은 사업을 하다 망해버린 남편을 따라 농업을 하기 위해 천룡리로 왔다. 잘 될 때는 허허 웃던 남편 정우는 사업이 실패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자 서은의 탓을 하며 서은에게 화를 내고 서은을 때린다. 불행을 직시하지 못하고 회피하며 남의 탓을 하는 나약한 정우는 천룡리에서 농업으로 부자가 될 생각에 기분이 좋다. 서은은 이 마을 사람의 무시와 거리감 때문에 의아해 하다 마을 이장의 부인인 주화자에게 이끌려 이 마을의 천녀를 만난다. 천녀가 마을 사람들을 잘 살게 해준다는 말에 정우는 사이비 종교라고 화를 내며 천녀를 못 만나게 하고, 오히려 천녀의 실체를 까발려 망신을 주려 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정우는 과연 천녀에게 어떻게 될까... 서은의 복수는 나름 통쾌했지만 이런 식이라면 언젠가는 무고한 이도 희생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글쎄, 과연 무고한 이가 희생될만큼 세상에 악한 이가 사라지긴 할까.


여섯 번째 이야기는 한켠 작가의 <너의 자리>이다. 선정 씨는 '나'의 전임이다. 11개월만에 잘린 계약직 직원이고, 나는 선정 씨의 후임으로 11개월짜리 계약직 직원이다. 회사에서 정직원은 전부 남자 뿐이다. 여자는 출산휴가를 써서, 아이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워서 등등의 이유로 정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대리는 나와 선정 씨의 몸을 더듬고, 정 팀장은 나에게 점심밥을 짓게 하고 국을 끓여 오게 한다. 이 과장은 탕비실에서 추행을 일삼고, 박 차장은 삼촌이라고 생각하라고 딸이라고 생각하라고 하면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한다. 선정 씨에게 물려받은 집에 있는 백골은 누구이며, '나'가 들고 다니는 엄지손가락들은 무엇일까. 들개들은 왜 들개가 되었을까. 어쩌면 가장 통쾌한 복수인 듯도 한 이 이야기를 보며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안전한 삶, 다함께 행복한 삶을 살 수는 없을까. 첫 출근 때 죽어있던 비둘기는 누구일까.


일곱 번째 이야기는 김이삭 작가의 <성주 단지>이다. 성주신은 대들보 위에서 집을 지켜주는 신이다. 혼자 사는 여자들은 집에 들어갈 때 늘 조심해야 한다. 우습게도 가장 편안해야 할 곳에 가는 길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위해를 가한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다. 나'는 결혼하려고 했던 그 회계사 남친으로부터 도망쳤다. 죽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지영이만 아는 곳에서 전공과는 상관없는 민속학 연구소에서 임시직으로 일하기로 한다. 집을 구하려는데 연구소장이 아는 친척이 소유한 고택에서 머물기를 제안했고, 나는 그 곳이 마음에 들었다. 곳곳에 CCTV도 달려있고 자물쇠도 비밀번호가 새로 생성되는 것이었고, 넓은 집에 지내는 사람은 '나'뿐이라 집 관리만 좀 해주면 월세도 싸고 좋은 조건이었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면 앱에 연락이 오는데, 어느 날 누군가 문을 열려고 하는지 덜컹거리며 알람이 왔다.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도 하고. '나'의 말처럼 귀신은 무섭지 않다, 사람이 무서울 뿐.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고 문을 두드리며 행패를 부리던 전 남자친구는 '나'의 집 앞에서 여전히 행패를 부리다 옆집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나'를 찾아 온 그가 해 준 말이다. 그리고 항아리를 깨는 바람에 항아리를 새로 사고, 또 좋은 마음으로 청소까지 해서인지 성주신이 도와준 것일까. 또다시 두려움에 떨지 않도록 말이다.


여덟 번째 이야기는 서계수 작가의 <산상 수훈>이다. 신약 성서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이다. 가르침대로만 산다면 참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데, 또 이 가르침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나쁜 짓을 하고도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하은은 새인이 이교도라고 생각한다. 복음의 새순이라고, 나쁜 길로 꼬여내기 위해 온 아이라고. 그러면서 새인의 목을 조르게 되는데, 그 때 새인이 누군가의 목소리로 예언 같은 말을 하기에 그걸로 돈을 벌자고 한다. 하은은 새인이를 질투하고, 새인이를 이용하고, 새인이를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은의 불행은 모두 새인이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의심까지... 하은의 인생이 뜻한 바와 다르게 흘러가는 것은 과연 누구 때문일까. 


아홉 번째 이야기는 사마란 작가의 <뷰티풀 라이프>이다. 이 이야기를 보는데 영화 <화차>가 떠올랐다. 인생을 훔치는 이야기. 영화 <화차>가 가슴 아팠다면, 이 이야기는 시원하면서도 씁쓸하다. 60평대 아파트, 잘 빠진 벤츠 e- 클래스, 수십 벌인 이태리 정장, 롤렉스 시계, 국내 최고 시설 골프장 VIP 회원권, 수입 골프채를 포기하지 못하는 명철은 영미의 비위를 맞추며 산다. 영미 아버지의 회사에서 임원으로 있으며 저런 것들을 누리며 살면서 언제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다. 영미 성격이 많이 까탈스러운 것 같긴 한데, 그렇다고 명철에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명철은 영미가 싫고 첫사랑인 유정이 좋다. 하지만 누리던 것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영미는 아침을 차려 주지 않는데, 유정은 밥을 해 준다. 아니, 도대체 자신이 밥을 해 먹으면 죽어버리기라도 하는걸까. 명철의 뻔뻔함과 가식과 탐욕을 보고 있자니 구역질이 치민다.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적게 벌면 그게 그렇게 아니꼬울까. 영미와 유정을 다 가지려던 그는 결국 유정의 정체를 알게 되고, 60평대 대리석 바닥은 참으로 반들거렸다.


마지막 열 번째 이야기는 유기농볼셰비키 작가의 <그를 사로잡는 단 하나의 마법>이다. 정말로 모든 불법 촬영 피해자분들께도 이런 용기가 마법처럼 생겨나면 좋겠다. 허락 없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으로 협박해서 돈을 뜯어내고, 이상한 영상을 찍게 만들고 더 나아가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매춘을 하도록 한 김성택은 희선의 직장 동료였다. 희선은 세련되고 다정한 김성택을 좋아해서 인스타에서 본 '마법의 물약'을 산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이뤘다는 후기가 가득한 그 물약을 사용하고 물약 덕분인지 김성택은 희선에게 잘 해주고 희선은 자신감을 가진다. 하지만 김성택은 단지 희선을 갖고 놀 목적이었다. 물론 돈도 뜯어낼 생각이었고. 희선은 당하다 못해 자살을 감행하지만, 김성택은 희선을 그냥 두지 않았다. 죽을 거라면 스너프 필름을 찍으라는... 외딴 곳에서 카메라를 켜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 두시간 안에 죽게 해 주겠다는 김성택을 보는 희선은 그제서야 그 '마법의 물약'의 힘을 알게 된다. 드라마 <힘쎈 여자 도봉순>처럼 자신의 힘을 자각한 희선은 반격을 시도하고... 희선의 물리적 상처는 아물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어떨까. 마법처럼 희선이 해낸 일에 자신감을 가지고 더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상처 받은 모든 이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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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7-26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름엔 서늘한 귀신이야기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생각하면 무서워요.
귀신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도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잘읽었습니다.
오늘 날씨 많이 덥네요. 시원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26 23:37   좋아요 1 | URL
저는 귀신 이야기를 좋아해요. 귀신 보단 사람이 무서워서 그런가봐요. 날씨가 점점 더워지겠죠? 그러다 다시 찬바람이 불고 가을이 오겠죠. 점점 일출 시간도 늦어지고 일몰 시간은 빨라지니 조금만 더 견뎌 보아요. 시원한 꿈 꾸세요^^

서니데이 2022-07-31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꼬마요정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7월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8월에도 좋은 시간 되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꼬마요정 2022-07-31 17:38   좋아요 1 | URL
벌써 7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시간의 힘이 대단합니다. 여름도 곧 지나가겠지요?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