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 다음 날인 1월 16일은 귀신날이다. 이 날은 바깥출입을 삼가고 일도 하지 않는다. 옛날 사람들은 이 날 바깥에 나가면 귀신이 붙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날에는 널뛰기, 윷놀이를 하거나 논두렁에 불을 놓거나 하여 귀신을 쫓았다. 또는 정월대보름에 술도 많이 먹고 놀았기에 하루 더 쉬려고 만든 날이라는 말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 날에는 귀신들이 돌아다니니까 무서운 이야기들이 잔뜩 있겠거니 하며 이 책을 펼쳤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실 귀신이 아니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수많은 죄를 저지르는 건 ‘사람’이었다. 동생을 때리던 남자를 죽이려던 오빠 대신 스스로의 힘으로 나쁜 놈을 응징한 다원의 이야기나, 아무렇지 않게 과부를 겁탈해서 아내로 삼고 자식마저 죽이려던 남자와 방관 내지는 동조하던 마을 사람들을 밟도록 ‘마고’에게 부탁하고 친구 먹은 금산의 이야기나, 군에서 성폭력으로 고통 받다 끝내 생을 마감한 김 소위와 수많은 희생자들을 위하려던 백 실장과 세상의 부조리와 가해자들의 뻔뻔함을 보고 슬퍼하던 유진의 이야기나, 그저 집안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 아무렇지 않게 딸을 희생시키고 속여서라도 부와 권력을 움켜지려던 이들을 좌절시킨 동백의 이야기나, 한 세상을 희생시켜 모두가 안전하려는 이기적인 거품들과 정길의 이야기나, ‘동첩’같은 말도 안 되는 자리에 자신이나 동생이 끌려가지 않더록 자신을 희생한 ‘언니’와 그 희생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으려던 할머니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몹쓸 짓을 하려던 좌참찬의 둘째 아들을 죽지 않을 정도로 베어버린 서율의 이야기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한 세상에서 누군가를 희생시키더라도 살아나가려고 하는 혜준의 이야기가 모두 그러하다. <창백한 눈송이들>에서 백 실장이 하는 말에 반박하기가 참 힘들었다.“귀신 같은 건 없어.” “귀신이 있었으면, 그런 짓을 한 놈들은 벌써 나가 뒈졌겠지.”(p.114)어두운 길에서 귀신을 마주하는 게 무서울까, 사람을 마주하는 게 무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