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의 상인 - [할인행사]
마이클 레드포드 감독, 제레미 아이언스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유럽 여행을 다녀 온 친구가 이 영화 너무 보고 싶다고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자기가 다녀 온 곳 중 베네치아는 제법 아름다운 도시였다고. 인상 깊어 이 영화를 통해 다시 추억하고 싶다고. 마침 나도 이 영화에 엄청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조셉 파인즈와 알 파치노가 나오니까.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영화화 했으니까.

베네치아를 다녀오지 못한 나로서는 그 곳이 정말 어디인지, 베네치아가 맞는지 이런 건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두 곳만 보여준다. 안토니오와 베사니오가 다니는 거리, 포시아가 사는 섬. 뭐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이었으니 거기엔 그닥 불만을 토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나 전개면에서 살짝 짜증이 났다.

베사니오는 포시아에게 청혼하려고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리는 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베사니오와 안토니오가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둘 사이의 깊은 우정을 표현하려는 게 지나쳐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돈을 빌릴 때 둘이 있던 침실, 침실 기둥에 기대어 베사니오의 팔을 잡고 있는 안토니오, 베사니오의 갈망어린 눈빛, 어딘가 유혹적인 조명. 이런 것들이 내 눈을 자극했다. 분명 베사니오는 포시아를 사랑한다는 데 이거 혹시 뭔가 엄청난 반전이 있는 건 아니겠지란 생각이 들만큼. 이 영화 끝날 때까지 깔려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남녀 간의 사랑보다 남자들간의 우정이 더 크다는 그 어리석은 생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아니었을까.

그 시대 포시아가 귀족의 영애이기에 베사니오가 돈 빌려 청혼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그녀는 베사니오를 선택할 수 없기에. 어느 나라의 왕자가 한 청혼도 거절했는데, 가난뱅이가 한 청혼을 받아들이면 아무리 부친의 유언이라 할지라도 힘 있고 세도 있는 그들의 질투와 위협에서 벗어날 순 없을 거다. 그래도 좀 마음에 안 든다. 여자 입장에선 속은 거니까. 비싼 마차를 타고 하인들을 거느린 채 값비싼 보석들을 내놓으며 청혼하는 그는 사실 빈 껍데기다. 진짜 그는 다른 사람이다. 그렇게 빌린 돈으로 유세를 떤 뒤 포시아의 돈으로 빚을 갚는다. 그것도 안토니오가 죽을 지경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베사니오에게 돈을 빌려 준 안토니오는 곤경에 처한다. 그러게 누가 신체를 걸고 돈을 빌리라든. 아니 누가 사람을 그렇게 무시하라든. 침을 뱉을 때는 언제고 필요하니 돈 빌려 달라고 한다. 이 영화에서는 어느 정도 유태인을 정당화 시켜 놓았다. 그야 지금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 대금업은 전혀 나쁜 것이 아니지만 - 고리대 말고, 불법 사채 및 요새 나오는 서민 울리는 사채 말고 상업적 분류로 대금업 - 그 시대의 대금업은 예수와 성경을 배신한 대죄였다. 게다가 이자도 비싸게 받았으니, 유태인들이 욕을 먹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시간은 신의 것인데 그 시간을 돈을 받고 팔았으니 대죄이지 않은가. 칼뱅이 나오기 전까지 그들은 계속 욕 먹는다.

어쨌든, 이 영화에서 보이는 기분 나쁜 거 세 가지. 하나는 남존여비, 다른 하나는 유태인 살짝 미화, 또 다른 하나는 법정에서의 말장난.

피 한 방울 내지 말고 살점을 떼내라는 포시아의 말은 사실 억지다. 물론 돈 대신 살을 떼가는 샤일록도 엽기지만. 그런 악덕 거래를 못하도록 법령을 만들던지. 말장난 하지 말고. 어릴 때 베니스의 상인을 읽었을 때는 와~ 명판결이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상식이 없는 곳이 법정이란 생각. 지금이야 어쩌면 강자인 샤일록에 대항해 그런 판결을 내렸다쳐도, 만약 강자가 약자에 대해 그런 말장난을 한다면, 그래서 약자가 큰 피해를 본다면.. 양날의 칼이란 이런 게 아닐까.

생각없이 계약서를 그렇게 작성한 안토니오나 주제 넘게 돈을 빌린 베사니오나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살점을 요구한 샤일록이나 아무리 생명의 은인이라지만 결혼 반지를 남한테 준 베사니오를 용서한 포시아나 다 정상이 아니다. 그 시대에 맞게 생각해서 베사니오와 포시아를 이해한다쳐도 안토니오나 샤일록은 좀 그렇다. 결말은 안토니오의 승리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세익스피어는 다른 결말을 의도하진 않았을까. 떠나는 베사니오와 포시아를 보는 안토니오의 눈빛이 기이한 상실감을 담고 있는 걸 보니 더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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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6-07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별로인가 봐요? 실망감이 크신가요..

꼬마요정 2007-06-08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하지만 그보다도 원작에 대한 실망감이 더 큰 듯해요~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거든요..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