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용희 옮김 / 하문사 / 1996년 7월
평점 :
절판


슈테판 츠바이크. 전기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가 쓴 소설이다. 처음엔 동명이인인 줄 알았더랬다. 책은 얇다. 하지만 읽고 난 뒤 여운은 두껍기만 하다.

정말 간단한 줄거리이다. 그냥 줄거리만 보면 사랑과 증오와 집착만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방관자적인 '나'에 대한 아쉬움 정도만 느낄까. 하지만 떨리는 듯한 격정을, 그래! 이 책 첫 장에 나오는 것처럼 격렬한 폭풍과 바다에 내리꽂히는 번개를 만나는 듯 전율하게 하는 그의 문체를 빌어 이 줄거리를 읽어나가면... 지독한 사랑과 집착을 살인을 통해 완성하는 한 남자의 처절한 고통이 느껴진다.

'나'는 스쳐지나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우연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다. 그 날 '나'가 노래 소리에 이끌려 그 술집을 찾지 않았다면 '나'는 그저 이국의 항구에서 피로를 풀고 독일로 돌아갔을테지. 하지만 얄궂게도 '나'는 독일 노래를 부르는 한 여인을 만나버렸고,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를 만나버렸다. 사랑의 미숙아였던 서글픈 한 남자를.

지독히도 비참했을 터였다. 아내라는 위치에서 남편에게 돈을 구걸해야만 하는 것은. 그녀는 3년을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의 병원비마저 거부당하자 그녀는 모든 걸 버렸다. 가난에서 구해준 자신의 남편을 사랑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아마 사랑했을테지. 그러니 3년을 그의 곁에서 그의 자만과 오만을 충족시켜 준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사랑은 끝났고, 이제 그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그의 사랑은... 돈 몇 푼으로 우위를 점하던 그가 남은 인생을 모조리 그녀에게 다 바쳤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사랑이 끝나자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그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어긋나버린 사랑은 결국 비극이었다.

사랑은... 대단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움직이니까. 아니 두 사람인가. 배려 없는 사랑에 힘겨워하던 한 여자의 사랑은 창녀굴에서 차갑게 시들었고, 모든 것을 내던진 한 남자의 사랑은 살인으로 뜨겁게 완성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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