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보다 살만해진 날씨다. 어찌나 더웠던지, 보통 여름에도 꼭 꼭 가디건 들고 다니고, 음료는 무조건 따뜻한 거에 선풍기조차 잘 안 틀고 살던 나였는데, 올 여름엔 찬 물과 양산, 선풍기는 기본에 에어컨까지 틀고 지냈다.

 

덥다고 밖에 나가서 쓰는 돈이나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편하게 쉬는 돈이나 비슷한 것 같아서 울 냥냥이들 걱정도 되고 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나 원래 집을 좋아한다. 하하

 

냥이들 끼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 맞으며 따뜻한 원두 커피 내려놓고 책을 읽을까...하다가 이제 날씨가 굳이 에어컨 안 켜도 될 거 같아서 선풍기만 틀어놓고 있으니 투둑투둑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비가 반가울데가... 옛날 기우제를 지내던 사람들이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기뻐하던 모습이 꼭 내 마음 같다. 지지난주 길진 않았지만, 장대처럼 내리던 비를 신나게 맞았는데... 오늘은 툭하고 어깨 치고 지나가듯  땅을 살짝 적시고 그쳐 버렸다.

 

해가 너무 뜨거워서 밤이면 오이를 얇게 썰어서 얼굴에 붙이곤 한다. 난 오이가 제일 시원하고 냄새도 좋고 기분도 좋아서 아주 좋아하는데, 오늘은 코 밑에 너무 큰 오이를 붙여서 숨 쉬기 힘들었다. 기어코 붙이고 있는 내 모습도 웃기고, 오이 맛사지 하다가 질식하면 얼마나 웃길지 생각하며 웃는 내 모습도 웃기다.

 

마침 운동도 하루 쉬기로 해서 저녁 시간에 영화를 한 편 봤다. 보려고 벼르던 '컨저링'. 뭐, 무서운 장면조차 없다하니 안 무섭겠거니 했지만 정말 안 무서웠다... 평소 수퍼내추럴이나 엑스 파일 같은 미스테리물을 좋아해서인지, 오히려 더 대수롭지 않게 본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보며 궁금해지는 건... 이런 일 이면에 있는 더 깊은 이야기들이다. 악마니 악령이니 해도 결국 인간들이 저지른 일들이다. 자식을 제물로 바치고, 환자들을 학대하고... 하지만 자신들이 힘들어지거나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의 용기와 연민이 아름답다. 추악한 악마나 악령도 인간이고 그들을 퇴치하는 것도 인간이다.

 

 

계속 읽고만 있는 <골짜기의 백합>을 다시 펼쳐 들었다. 나폴레옹이 좌절을 준 인생들이 많다. 여기, 펠릭스도 나폴레옹 덕분에 좌절을 경험했지.

 

 

 

 

<보바리 부인>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적과 흑>도 그렇지만.... 자꾸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이 생각난다. 책도 영화도 모두 충격이었더랬다. 제목이 너무 꿈결 같아서 그런지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이러다가 <골짜기의 백합>은 또 덮고, <세월의 거품> 펼치지나 않을까.

 

아무래도 좋겠지. 정해진 건 없고, 내 마음이 가는데로 따라가는 건 언제든 환영이다.

 

여름밤은 길고, 잠들기는 싫고, 커피는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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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8-10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요즘은 내키는대로 책 읽고 있어요. ~ 그저 생각없이 사는것도 근사하지 않나요ㅎ

꼬마요정 2018-08-11 02:3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어떤 책을 읽다가도 저 책이 읽고 싶으면 그냥 덮고 읽고 싶은 책을 읽어요. ㅎㅎ 좋아요. 북프리쿠키님 말씀처럼 너무 근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