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쌓이고 쌓인 읽어야 할 책들 중 페미니즘에 관한 책도 늘 포함되어 있다.

말주변이 없어 한번씩 쭈뼛거리는 '나'로선 이런 책을 읽으면 정말 속 시원한 대리만족을 얻게 된다.감정적이 아닌 논리적이지만 결코 상대방을 비아냥 거리지 않고,동등한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논리를 펼치는 작가의 소신과 지성에 감탄했다.

감탄은 곧 배움이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또는 다른 언론에 노출된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접하면서 좀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대로 좀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아왔었나 보다.라고 의식 저변에서 들려오는 생각을 한 번씩 하곤 했다.페미니즘에 대해 크게 토론을 할만큼의 상황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런데 책을 계속 읽으면서 문득문득 어린시절부터 의아 했었던 장면들,친구들에게서 느꼈던 불쾌한 장면들,직장에서의 불쾌하고 억울했었던 장면들이 순간,순간 스치고 지나 갔었다.그리고 곰곰 생각해보니 나에겐 의견을 나눌만한 상황이 발생치 않고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들이 닥쳤을때 애써 내가 피해 살아왔었던 것이란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남자들이 많은 과를 다녔던 적이 있었다.1학년때인지,2학년때였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강의실 뒷편에 앉았는데 갑자기 동기생 하나가 다가 오더니 스스럼 없이 어깨에 손을 올려 감싸며 말을 걸어 오길래 불쾌해서 반사적으로 그 남학생의 팔을 뿌리쳤다.남학생은 많이 머쓱하였던지 내뱉는 말이 "거 엄청 비싸게 구네!"라고 했었다.나는 순간 무척 기분은 나쁜데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었기에 혼자 얼굴이 뻘개져 씩씩거렸고,졸업할때까지 그 친구와 일절 대화하지 않고,그저 그 친구 얼굴을 보는 것으로도 기분이 나빠 고개를 돌려버리는 걸로 나름의 소심한 복수를 했다고 위안 했었다.

그리 행동한 것이 다가 아니란 것을 중년이 된 지금 조금씩 깨닫곤 한다.

 

 그리고 직장을 다닐때 나는 왜 여직원들이 죽어라고 커피를 타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런 것들을 드러내 놓고 다른 직원들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그때는 내가 가장 직급이 낮은 사원이었노라고 구차한 변명을 늘어 놓지만 더더욱 이해를 할 수 없었던 장면들이 있었다.회사를 옮겨 갓 출근했던 시절이었는데 부서는 달랐지만 옆 부서에 기혼인 여자 주임님이 있었다.입사하고 몇 달 안있어 나와 그 주임이랑 트러블이 있었다. 

나는 그시절 왜 여직원이 늘 남자직원들보다 30분 더 일찍 출근하여 커피잔 설거지를 하고,직원들 책상을 닦고 청소를 하고,늘 전화업무도 여직원들이 도맡아서 하고,잔심부름을 더 많이 하는 듯한데 월급은 더 적게 받는가?에 회의감을 느꼈었다.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런 것들이 나의 표정과 행동에 드러났었던가 보다.곁에서 지켜 본 기혼인 여주임님한테 눈에 가시로 비쳐졌었나보다.모든 여직원들이 하나, 둘씩 결혼을 하고 나만 미혼인채로 남았었던  시절, 여주임님은 남자 부장님한테 "이것 보세요.역시 결혼한 여자들이 더 일을 잘하지 않나요?"란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나는 좀 어의가 없었었다.물론 업무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는 것을 인정은 한다만,결혼을 했다고 해서 회사의 갖은 잡무를 아무 거리낌 없이 도맡아 해도 당연하다는 논리가 본인을 너무 하대하는 것처럼 들렸고,같은 여자끼리 기혼과 미혼의 '차이'를 '차별'로 바라보며 스스로 격하시키는 것이 못마땅 했었지만 그시절 그 여자주임님한테 눈에 보이지 않는 갈굼을 당했던지라 완전히 눈밖에 날까봐 찍소리를 못했었다.시간이 지나 서로 화해를 하고 좋은 사이를 유지하긴 했었지만 살아오면서 나는 그 주임님을 한 번씩 떠올릴때면 내가 잘못 생각했었던 것일까?늘 의문이 들곤 한다.남자직원들에게서 받은 불쾌감과 차별도 수없이 많았지만 같은 여자들끼리도 생각의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게 약간의 충격이었었다.감싸주기는 커녕 남자 직원들에게 여직원은 어쩔 수 없다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 버리는 상황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상황이 아닌, 어쩌면 본인의 위치도 언젠가는 남들 눈에 그리 비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사 슬금슬금 떠오르는데 그시절 나는 왜 그런 깊은 생각들을 못했고,그저 억울하기만 했었던 것일까!

아마도 배움이 짧았던 것이 아닐런지!

페미니즘과는 조금 동떨어진 나의 경험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역시 사람은 많이 배워야 해! 몇 번씩 외쳤다. 

 

 그리고 남편을 흉보는 것같아 좀 미안하긴 하지만,

남편과의 대화가 좀 흥미롭단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연애시절 지금의 남편은 뻑 하면 "여자가 어디~~"란 말을 좀 달고 있었다.어찌나 열받던지 내 앞에서 그 '여자가'란 소릴 좀 빼고 말하라고 버럭 했었다.그랬더니 뻥~한 얼굴로 나를 보더니 혹시 너도 드센 여자냐고 물었던 것같다.20대때는 페미니즘이란 단어조차 잘 몰라서 나는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먼 여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나는 그냥 그저 나 자신을 하찮케 생각진 말자!라고 생각하고 살았었기에 "여자가~"란 소리가 너무 거슬렸었다.몇 번씩 '여자'라는 단어가 올라올때마다 남편과 열심히? 논쟁을 했었던 것같았다.(아~ 그러니까 나는 타인이 아닌 남편과 페미니즘 논쟁을 계속 하고 살아왔었구나!)

 그러다 서로 조심하면서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해서도 신혼시절 몇 번의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그동안 별무리 없이 잘 살아왔는데 박근혜 대통령 투표하던 그 시절 텔레비젼을 보다가 신랑이 또 "박근혜는 뽑으면 안돼! 아무것도 모르는 여잔데 허수아비로 뽑아 놓아~~~"란 말을 듣고 있는데 또 신경이 거슬려 "여자"소리는 빼라고 말했더니 남편은 혹시 같은 여자라고 뽑는 거 아니냐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데 순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었던 적 있었다.나는 그래서 박근혜가 너무 싫다.두 번 다시 여자 대통령이 나오지 않을까봐 두렵다.  

얼마전에 또 밥을 먹다가 아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남편은 또 "그 사람은 나쁜여자야~"소리를 해서 내가 또 바로잡아 주니 "어? 아빠가 미안해."하며 애들한테 사과를 했다.

그리고 나 또한 아들한테 "남자는 그러면 안돼~"라고 한 번씩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들을 사과했다.조심하려고 그리 노력했건만 그저 남의 허물을 잡기에 바빴지,정작 내가 모순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을 발견치 못했던 것이다.

 

 그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범주안에서는 여자라서 차별적 대우와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에게만이라도 이기기 위한 답변이 아닌 논리적으로 답변하고 싶고,이해시키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이해란, 원래 시키는 게 아니라 하는 겁니다.(21쪽)"라는 문구는 많은 생각들을 던져 준다.

 

 당당하게 살고 싶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밤길을 혼자 걷거나,밤중에 혼자서 택시를 탄다거나,딸아이들의 귀갓길이 걱정되고 두려워 되도록 밤에는 집밖을 잘 나가질 않게 된다.더 앞서 아들이 어떤 남자가 될지도 걱정 되지만 그보다 더욱 더 걱정스러운 것은 딸아이들이 훗날 어떤 남자를 만날지가 늘 염려스럽다.모든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잠재적 범죄자'로 만들어 버려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어쩔 수 없다.이 사회는 아직 여자로 살아가기엔 많이 불리하고,두려운 사회기 때문이다.우리아이들이 살아갈 시점에는 좀 더 나은 평등한 사회가 되길 바라기에 계속 페미니즘 책을 찾아 읽을 수 밖에 없다.책을 읽는다고 당장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생각은 여물어갈 것이다.

 

 지인 중 알바를 같이 하는 장소에 자식 같아 보이는 어린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이 있었다고 한다.어느 날 남자 손님이 음식 맛 좀 보라고 젓가락으로 주면 아무 생각없이 넙죽 받아먹는 여자알바생을 불러다가 조용히 충고를 해줬다고 한다.너 스스로가 너를 사랑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너 자신을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상대방도 너를 그리 대접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줬는데 그학생은 여적 자신한테 그런 말을 해주는 어른이 없었노라고 대답하더란다.사회 초년생들에게 어떤 직장동료와 어떤 주변인물을 만나는지도 참 중요하겠더란 지인의 말이 참 와닿았던적이 있었다.좀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있어서 올바른 장소에서 올바른 말을 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겠단 생각도 해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12-12 1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12-12 17:51   좋아요 0 | URL
좋아져야 한다고,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실상 가까운 곳에서부터 잘 고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우리집도 그렇고(좀 많이 나아져 가고 있습니다만!!^^) 하물며 아이네 남자담임샘도 늘 여학생이 그러면 안돼!!를 입에 달고 계신가 보더라구요ㅜㅜ
늘 신경을 쓰면서 공부하고 살아야할 부분인 것같아요^^

서니데이 2016-12-12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시대에,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에서도 많이 달라질 수 있는 여러가지를 제공할 것 같아요. 어느 입장에 서는지에 따라 사람은 많이 달라지고 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하니까요.
헌법에 성별에 의한 차별이 금지되어 있지만, 우리의 실제 생활에서 지금 차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이전보다 조금 더 양성의 평등에 가까워진다면 그전의 불이익과 불합리에 문제를 제기한 누군가가 있음을 생각해야 할 거예요. 그래도 우리가 성장하던 시기보다는 많은면에서 달라져있기를 바래요.
책읽는나무님 좋은하루되세요. 오늘도 여긴 으슬으슬하게 추워요.^^

책읽는나무 2016-12-12 17:46   좋아요 1 | URL
지금은 또 어떠한 세상인지는 잘 모르겠네요?경력단절 여성으로 산지가 몇 년인지~~~~ㅜㅜ
십 여 년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있지 않을까,싶습니다만~~??
앞으로는 더 나아지리라고 믿어요^^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것도 신랑얘기를 들춰냈나!!싶긴 합니다만,울남편은 알라디너가 아니기에 그냥^^
오늘 여긴 하루죙일 흐렸어요.윗지방에서 눈이 오는가?뭐 그런 생각을 했다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