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는 끝났다.
이번명절은 수월했던 것인지,수월치 않았던 것인지,
분간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명절을 무사히 치뤄냈고
남은 연휴기간동안 마음정리도 애써했다.
설 차례상을 준비하면서 내가 며느리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딸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것인지,
헛갈렸었다.
(이유는 엄마가 돌아가신이후의 첫 명절이었던터라 어린조카를 키우는 올케의 당황스러움을 덜어주려 신랑과 의논하여 함께 음식준비를 하자고 제의했었다.
사실 우리집도 돌아가신 시부모님의 차례상을 준비하긴 하지만 시누이는 명절때는 부러 내려오질 않으시고 시동생도 멀리 타국에 있는지라 여건상 편한? 분위기일 것이라 여겨 올케를 불렀건만..)
올케는 서로의 고집을 내세우는 우리 부부사이에서 더 불편하지 않았을까?
뒤늦게 미안한감이 없지 않았으나 여튼 우여곡절 끝에 굽고,튀기고,지지고,삶고,끓이는 것들의 음식들은 우리집에서 같이 장만하여 친정으로 설 전날 들려보냈다.
음식을 싸주다보니 삶아놓은 문어에서 올케와 나는 약간의 서로의 눈치를 보긴 했었다.
내가 깜빡하고 문어를 한 마리만 사다 놓았던 것이다.
나는 내가 샀으니 당연히 '우리 차례상에 올리는 것'이라고 약간의 뉘앙스를 풍겼다만..
올케는 "어머님은 항상 제사상에 문어를 올리셨더라구요?"심각한 눈빛!!
순간 신랑 눈치도 보여 며느리여야 하는 것인가!딸이어야 하는 것인가!
10초 정도 고민을 하고선 딸의 입장에 손을 들어버렸던 것!
(아마도 신랑보다 올케의 눈치을 더 봤다는 것에 인정!)
어쨌거나 설 전부터 걱정이 많았었는데 손수 만든 음식으로 차례상을 엄마한테 차려드릴 수 있어 다행스러웠다.친정아버지는 음식할 사람이 있겠느냐고 차례상을 맞추려고 하셨었다.
예전 시어머님 갑작스럽게 돌아가신후 시아버님이 애들은 어리고 아무것도 할줄 모르는 며느리가 못미더워 제사음식을 걱정하셨던 모습이 떠올라 아빠를 뵈면 그냥 마음이 짠하다.
엄마를 생각하면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 현실이고,
아빠를 생각하면 그냥 마음이 짠하고 콧등이 시큰하다.
친정의 상황이 그러하였기에 이번 명절은 문득 문득 눈물이 좀 날뻔한 명절이어 수월치 않았던 것일테고,시댁식구들을 볼 수 없어서 부대끼는 것이 전혀 없으니 한편으론 너무 수월한 명절이었다.이걸 편하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그렇지 않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종잡을 수 없었으나 나름 이번명절 연휴에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버렸던 것이다.명절연휴에 가장 책을 많이 읽었던 해가 아니었나?싶다.빨간날이 그렇게 많아도 거의 책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바로 명절연휴인데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잡생각을 버릴 수 있었으니 나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전날 도서관에서 가방 가득 책 빌려오길 잘했다.)
설 다음날 엄마를 찾아뵙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들 말은 안해도 울적하였는데 아빠는 동네 뒷산에 오르자고 제안을 하셨다.잠을 청할까 누웠다가 평소 아빠가 운동하신다는 뒷산 둘레길이 어떤 곳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하여 아이들과 따라나섰다.
가파른 등산로가 있긴 했지만 아빠는 연세가 있으시니 그쪽길은 거들떠 보시지 않으시고 평지같은 둘레길로 올라가셨다.그래서 운동을 싫어하는 나랑 우리아들 민군도 전혀 힘들지 않고 등산?하기가 좋았다.직접 다녀와보니 등산길이 안전해 보여 안심이 되었다.
헌데 저쪽에서 마주 내려오는 젊은 부부와 아이들 둘의 모습이 보기 좋아 길을 비켜 주려는데 갑자기 내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쳐다보니 분당 사는 내친구 부부더라!
연휴에 얼굴을 보자고 연락을 할까?고민하다 바쁠텐데 관두자 싶었던차에 등산길에서 만나 서로 깜짝 놀라 한동안 말을 더듬다가... 어제 다시 만나 몇 년 만에 점심을 함께 했다.
황토숲 둘레길의 겨울 산행은 코끝은 약간 시려도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주니 이불속에서 눈을 부쳤더라면 이불에 눈물 한 점 묻혔을법한 청승과 맞바꿀 수 있어 좋았다.
이제 연휴도 끝났고,복닥복닥 아이들과 남은 봄방학만 잘 마무리하면 나는 춘삼월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아파트 뒷곁에 목련나무 봉우리가 터질 듯 말 듯 하던데
나는 며칠전부터 줄곧 그걸 감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