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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어떻게 그림지도를 할까
도리이 아키토시 지음 / 대교출판 / 1999년 10월
평점 :
품절
두 달 전이었나?
내아이와 함께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녀석과 함께 서로 크레용을 잡고서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끄적거리다가 녀석은 나에게 "엄마! 사과 그려주세요~~" 하며 부탁을 한다..사과 쯤이야!...쓱쓱 그리고 위에 꼭지도 그려 넣고..사과 표면 오른쪽 귀퉁이에 잘 익어서 햇빛에 반사되는 형체까지 그려 넣는걸 잊지 않고 그려줬다.
그러자..녀석은 배도 그려달라..수박도 그려달라..포도도 그려달라..엄마도 그려달라..성민이 자기 얼굴도 그려달라...눈사람을 그려달라..항아리를 그려달라....요구가 엄청 많아진다.
그렇게 녀석의 스케치북은 녀석이 요구하는 사물을 죄다 내가 다 그려준것들 뿐이다.
녀석은 내가 그려준 그림들을 감상하며 조목 조목 짚어가며 그림 설명하기에 바쁘다.
매번 스케치북을 펼쳐들면 저자신이 그리기 보다는 엄마에게 그려달라고 매달리는 녀석의 요구를 매번 들어주면 안될것 같아 한번은 야단을 쳤다.
너 스스로 그려보라고 하면서 말이다.
엄마의 화난 표정을 보면 매번 울음을 터트리는 녀석...예상했던대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왜 우냐고 물으니 엄마가 화내서 운단다.
많이 당혹스럽고...사실 짜증도 많이 났었다.
나는 녀석이 이젠 저 스스로 그림을 그렸으면 하는 마음에 저 잘되라고 하는 말인데...녀석은 그렇게 받아들이질 않는다.
하긴....아직 세돌도 채 안된 아이에게 내가 너무 큰것을 바랬던것부터 무리가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그림이란걸 잘 못그리니까 나만의 컴플렉스로 인해 아이에게 강요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란 자괴감에 빠져 있던 차에 일년전에 사다놓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이책이 순간 눈에 띄어 얼른 빼내어 읽었다.
읽는 내내 나는 내아이에게 많이 미안했었다.
그간 내가 아이에게 행했던 언행들이 아이를 많이 주눅들게 했으며...일순간의 내욕심으로 인해 아이를 다그쳐 온 결과밖에 되질 못했다는것이 실로 말문을 막히게 했다.
내아이 앞에서 난 정말 할말이 없었다.
며칠 이책을 읽고 많이 고민한뒤 이젠 생각을 바꾸어 아이와 함께 그림을 그린다.
녀석이 다섯살이 되면 미술학원을 보내볼까? 생각했었는데...그생각을 몇년 더 뒤로 미루기로 하며..
며칠전에 아예 새 스케치북을 몇권 샀다.
이젠 이스케치북은 내아이의 자유로운 그림들로만 가득 채우리란 다짐을 굳게 한뒤...첫장을 펴고서 아이에게 말한다.
"민아!..오늘 방기할아버지(아이의 외할아버지) 병문안을 갔다 왔지?...할아버지가 아파서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민이는 어땠어?...할아버지 주사도 맞았는데 많이 아팠겠지?...우리 할아버지 빨리 낳으시라고 그림을 그려볼까?"
그랬더니...아이는 눈을 반짝 반짝 빛내면서 쓱쓱 그림을 그린다.
많이 신기하고 놀라웠다...바로 얼마전의 녀석은 "안돼! 민이는 못그리겠어~~ 엄마가 그려줘!"만 반복하던 녀석이었는데....^^
물론 녀석이 그린 그림은 그림이 아니다.
이상한 모양의 동그라미랑 길쭉한 네모가 있고...더 길쭉한 선도 있다.
이그림들은 녀석의 설명을 다 들어보아야만 이해 가능한 그림들이다.
위에 동그라미 두개는 할아버지 눈이고...거대한 네모는 할아버지 배란다.
아주 길쭉한 선은 주사란다.
거대한 네모 앞에 또 조그만 무언가가 달팽이집처럼 그려져 있다..이건 무어냐고 물으니 할아버지 앞에 앉아 있는 자기 자신이란다.
실제로 녀석은 친정아버지의 탈장 수술로 인해 병문안을 갔었더랬는데...친정아버지 앞에 앉아 아버지 팔에 꼽힌 링거와 간호사 누나의 주사 놓는걸 아주 겁먹은 표정으로 유심히 바라보았었다.
병원을 다녀온뒤로 녀석은 주사라고 하면서 화면 가득 기다란 선을 그어댄다.
그것도 색깔별로...ㅡ.ㅡ;;
그렇게 새 스케치북은 녀석의 그림들로만 서너장이 채워졌다.
엄마와 버스 타고 은행 갔다온걸 그린것과...택시를 탄걸 그린것과....아빠와 기차놀이를 한걸 그린것등!
녀석에게 사과를 그려달라고 하는것보다 녀석이 금방 직접 경험한것을 그려달라고 하니 그림이 더 풍부해지는 듯했다..그림이 이렇게 아이의 상상력과 흥미를 부추기는 놀이가 될수 있다는걸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녀석이 그린 그림을 보고서 빼먹지 말아야 하는 일이 바로 감탄스러운 표정을 지어주는 일!
손뼉을 쳐주면서 잘했다고 정말 대단하다고 멋지다고 한마디 해주면...녀석은 그야말로 용기백배의 위상으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표정이다.
왜 빨리 이러한 책들을 읽지 못하여 괜하게 아이의 마음을 아프게만 했는지...나의 무식함과 나의 게으름을 많이 탓했다...하지만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녀석이 마음껏 자신의 상상의 세계를 펼칠수 있도록 옆에서 오버액션을 취하며 너무 멋진 그림을 그렸다고 많이 많이 칭찬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