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정호승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강렬한 제목에 끌리어 집어들고 읽었으나,
읽는 순간도,읽은 순간도
제목의 시를 읽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글샘님의 페이퍼를 읽고 제목의 시는 원 시가 따로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하정완의 시였다는 것!
내 메모지에는 이런 시를 옮겨 놓고 있었다.
추억이 없다.
나무에게는 무덤이 없다.
바람에게는 무덤이 없다.
깨꽃이 지고 메밀꽃이 져도
꽃들에게는 무덤이 없다.
나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으로 걸어가던 들판이 없다.
첫 눈 오던 날 첫키스를 나누던
그 집 앞 골목길도 사라지고 없다.
추억이 없으면 무덤도 없다.
추억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꽃샘바람 부는 이 봄날에
꽃으로 피어나던 사람도 없다.
34.<꽃이 그냥 꽃인 날에> 장종권
문득,
나는 시를 읽는다는 것이 내겐 참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함축된 글 속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도대체 왜 그렇게 짧디 짧은 글 속에 격한 감정들을 억지로 쑤셔 넣는지,
어렵고 또 어지러웠다.
항간에 20대에 시를 읽어야 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어렸던 나에겐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고,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를 부러 멀리 하였고,
멀리 하였으므로 알고 있는 시집도,시인도 그리고 싯구도 많지 않다.
그래서 지금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럽다.
내가 알고 있고,좋아했었던 시들은
반짝이는 보석수집하듯 예쁜 싯구로 된 시들이었던 것같다.
지금은 담담하게 삶을 읖조린 시들이 더 와 닿는다.
시인들의 격한 감정들도 때론 이해가 되는 순간들도 있다.
시는 어쩌면 30,40대가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생각난 건데,시집이라고 하면 항상 어릴때(어릴때가 맞는겐지 그것도 기억이 가물가물~
10대였는지? 20대였는지? 내머릿속의 지우개.ㅠ)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꼭 떠오르곤 한다.
언제쯤 본 건지 기억이 나질 않으나 김수현작가 작품인 <목욕탕집 남자들>이란
드라마였던 것같다.목욕탕 주인의 아들 중 둘째아들네 부부가 나온다.
남성훈과 윤여정이란 배우가 부부역할을 했었을 것이다.(내기억이 맞다면!)
무뚝뚝하고 차가운 남편에게 살가운 정을 받지 못하여 쓸쓸한 마음을 항상 시집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래는 윤여정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항상 레이스가 달린 하얀 잠옷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전 시집을 읽었던 것같다.^^)
그시절엔 나도 어렸으므로 윤여정의 연기가 어찌나 실감나던지 둘째 며느리인 윤여정을 얄밉게 봤던지라 정말 윤여정 자체를 싫어했었던 것같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윤여정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항상 시집을 읽고 있던 윤여정의 모습은 나름 롤모델이었나보다.
저정도의 나이대에 읽어야 하는 책이 바로 시집인가보다~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데,
내가 지금 따라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하얀 잠자리 잠옷을 입지 않고,침대가 없어 침대에서 읽지 않는다.^^)
각설하고,
이시집을 읽을때 순간 구미가 땡겨 메모지에 옮겨 둔 시는 이것이었다.
<꽃이 꽃이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꽃이 꽃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지 않는 꽃은 꽃이 아니고 피지도 않는다.
간밤 꿈속에 몇 번이고 죽은 꽃들이 일시에 일어나
죽어도 죽지 않고 강 건너 해뜨는 마을로 떠났다.
딸이고 아내이고 어머니이신 꽃이여
의미는 아무리 퍼 올려도 비어있을 뿐이다.
없는 의미로 빈 두레박 가득 채워 퍼 올리는새벽
그래도 짙은 어둠 속에서 하늘을 찰랑거리고
일도 없는 바람은 쉼 없이 사뿐사뿐 거린다.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때에
우리는 비로소 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분명 죽을 수만 있다면 우리 언제든
살아있는 세상의 아름다운 존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이야 나 죽을래나 보다.
목숨으로 아들의 발목을 붙잡는 어머니가 그래도 어머니이다.
아직도 시를 읽으면,올곧게 모든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시에 대한 나의 난독증은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동시를 많이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애써 이유를 대 본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자주 동시집을 들려주는 편이다.
나와 같이 너무 나이 먹어 시를 접하지 마라고....
어린시절부터 시의 맛을 알고 느낀다면 아이들의 일상속에서 운율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약은 기대(?)도 해본다.
그래서 며칠 아이들에게 읽혀준 동시집을 간추려 보았다.
문학동네 동시집 시리즈중 1권으로 김은영 작가의 <선생님을 이긴 날>이다.
<ㄹ받침 한 글자>와 <아니,방귀 뽕나무>란 동시집으로 사계절 저학년 문고에서도 접할 수 있는 작가다.
김은영 작가의 동시집은 재미나기도 하고,조금 저릿저릿하기도 하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감정을 잘 살려낸 시들이 많다.
후반부 엄마를 잃은 아이의 독백같은 시에선 아이를 가만히 안아주고픈 생각이 절로 들게한다.
동시는 따듯한 마음을 절로 품게 해주니 아이들은 정말 마구 마구 읽어야 할 책인 듯!^^
아이들아! 어서 어서 읽으렴!^^
중에서 가장 웃음이 나온 시는
<선생님을 이긴 날>
내가 무얼 잘못하면
선생님은 내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른다.
선생님이 부르니까 아이들도 내 별명을 부른다.
오늘은 아침 자습 안 했다고 또 내 별명을 불렀다.
순간 내 머릿속에서 시한폭탄이 터져 버렸다.
선생님 내 별명 부르지 마세요. 차라리 종아리를 때려 주세요.
깜짝 놀라 벌게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기만 하는 선생님
떨렸지만 속이 후련했다.
푸른책들에선 나온 신형건님의 <엉덩이가 들썩들썩> 동시집.
<거인들이 사는 나라>책으로 유명한 신형건작가의 동시집은 처음 접한다.
제목처럼 동시엔 의성어,의태어가 좀 많이 나오는 듯!^^
푸른책들에서 나온 동시집 시리즈도 눈여겨 볼만하다.
시리즈 제목 또한 <시 읽는 가족>이다.
가족 모두 시를 읽는 풍경....생각만으로도 흐뭇한 풍경들이다.
아마도 신형건 작가는 그것을 꿈 꾸었기에 동시집도 만들고,출판사도 만들고 하지 않았을까?^^
중에 눈길을 끄는 시를 하나 뽑자면,
<손톱에 끼인 때>
텃밭에서 일하고 들어온
엄마 손톱에 까만 때가 끼었어요.
마당가에서 흙장난을 하다
엄마 뒤를 쫓아 들어온
내 손톱에도 새까만 때가 끼었어요.
이제 곧 점심 먹어야 한다고
엄마는
내 손을 말끔히 씻어 주어요.
엄마,
나는 일도 하지 않았는데
엄마처럼 손톱에 때가 끼었어요!
아무렴,
너도 일을 했지!
넌 노는 게 일이잖니?
신나게 흙장난하는 게 바로
네 일이잖니?
초등생만 읽는 동시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기들도,유치원생들도 신나게 읽을 수 있는 동시집 그림책도 많다.
창비에서 나오는 우리시 그림책 시리즈와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아기시 그림책 시리즈를
즐겨 읽히는데...창비에서 나온 동시집은 초등 저학년들까지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이고,
문학동네 동시집은 주로 어린 아가들에서 유치원생까지 읽혀주면 좋을 책들이다.
문학동네 동시집은 주로 시가 동요가 된 것들이 많아 유치원생은 주로 그림을 보면서 절로 동요를 익히게 될 것이고,아기들에겐 두꺼운 하드보드지로 된 양장본이기 때문에 처음 그림책을 접하는 아가들에게 이왕이면 이런 동시집을 보여준다면 더 좋을 듯하다.
집에는 <구슬비>와 <누가 누가 잠자나> 두 권이 있는데 큰아들은 구슬비 책을 꽤 오랫동안 들여다보면서 노래를 불렀었는데 밑에 둥이들도 이 두 권을 끼고 살았던 것같다.
며칠전 <설날>책을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하여 빌려와 읽어주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는데,
음~~
음이 제대로 맞는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동요가 8절까지 있었던가? 생각보다 길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드리고, 새로 사 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무서웠던 아버지 순해지시고, 우지 우지 내 동생 울지 않아요.
이 집 저 집 윷놀이 널뛰는 소리, 나는 나는 설날이 참말 좋아요.
예전에 큰아이 유치원 시절 알림장에 적어 가는 엄마숙제(?)가 있었는데
6살무렵엔 유치원 선생님이 항상 동요를 불러주고 그것을 엄마앞에서 부르면 엄마는 잽싸게
노래 가사를 알림장에 적어줘야했다.가사를 완벽하게 적으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 주셨는데
나는 그게 참 힘들었다.
쌍둥이들은 너무나도 어렸고(두 살 이었으니~ㅠ)
내가 잘 아는 동요는 모르겠으나,생전 처음 듣는 동요일적엔
음치인 아들을 바라보며 알림장에 받아적기가 무척 곤혹스러웠다는~~
헌데 알고 있는 동요라 자신만만했었던 <설날>이란 동요에서도 조금 좌절했었던 부분이
4절에서 '호사하시고~~' 그부분이 너무 애매하여 고민했었던 시간들이 갑자기 떠올라
갑자기 웃음이 풉~
유일하게 알고 지내던 아이 친구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이엄마도 '호사하시고'에서 고민고민하던차 호사란 부분으로 둘이서 낙점시키고 적어보냈더니 호사가 맞다하여
꼭 시험에서 틀렸던 문제를 맞다고 해주신 것처럼 엄청 기뻐했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시절 이그림책이 있었다면 자신있게 적어줬을 것이고,
어쩌면 8절까지 좔좔좔 적어 줘서 아들 어깨를 으쓱하게 해줬을텐데....싶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