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드슬럿> 을 읽다가, ‘내스티 우먼‘ 이란 용어에 얽힌 단락을 접했다. 내스티(nasty)란 단어는 못된, 끔찍한, 불쾌한이란 뜻을 가진 형용사다. 그렇다면 내스티 우먼(nasty woman)은 나쁜 여자 또는 못된 여자, 끔찍한 여자란 뜻이 된다.

일단 책의 1 장만 겨우 읽었는데, 1 장의 소제목은 ‘헤픈 매춘부들과 추잡한 레즈비언들‘ 이다. 강한? 제목들과 달리 읽어 보면 언어의 시간적인 뜻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약간, 띵~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예를 들면, ‘서(sir)‘와 ‘마담(madam)‘이란 단어는 300 년 전에는 두 단어가 격식을 갖춘 인사말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담‘이란 단어는 조숙하거나 자만한 아이를 나타내다가, 서서히 정부나 성판매자를 지칭하다가, 결국에는 성판매업소를 운영하는 여성을 일컫게 되었다. 반면 ‘서‘는 처음의 의미 그대로 남아 있다.
‘마스터(master)‘와 ‘미스터러스(mistress)‘도 마찬가지다.
이 용어는 옛날 프랑스에서 영어로 넘어 온 말인데, 권위를 가진 위치에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여성을 일컫는 용어만 기혼자와 성적으로 난잡한 관계를 맺는 여성을 의미하는 식으로 변화된 반면, ‘마스터‘는 가정이든, 동물이든 뭔가를 책임지는 남자를 뜻하고, 요리와 같은 어려운 기술을 획득한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39~40 쪽)
단어의 의미 변화는 곧 젠더적 변화가 되어 사람들의 인식에 고착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격식을 갖춘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는 매춘부와 레즈비언을 가리키는 단어로 변모하였고, 그 앞에 형용사를 붙인다면(부정적인 형용사들은 부러, 주로 여성을 가리키는 단어 앞에 놓아, 여성을 모욕하는 단어를 만든다고 한다.) 헤픈 매춘부와 추잡한 레즈비언이란 1 장의 소제목이 된 듯 하다.

영어라는 것의 쓰임이 이렇다니!
맥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조금 독특한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뒤로, 밈-웹에 돌아다니는 상징-역시 단어의 주권을 억압자로부터 억압을 당하는 이들에게로 돌려주는데 일조했다. 밈을 통한 재전유에서 가장 유명한 예는 아마 못되어 먹은 여자를 일컫는 ‘내스티 우먼‘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 년 대선 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내스티 우먼‘이라는 말을 한 지 24 시간이 되지 않아서, 이 장면은 ‘짤‘로, 머그잔 문구로(나도 이런 머그가 하나 있다.), 가족계획을 위한 기금 마련 온라인 캠페인 문구로 만들어졌다. 네티즌들이 이 말을 처음 한 남자로부터 빼앗아 오는 데는 하루밖에 걸리지 않았다. 인터넷은 때로 이렇게 멋진 일을 할 수 있다.(60 쪽)

내스티 우먼? 내스티 우먼 머그컵 짤?
머그컵 혹시 구경할 수 있나? 궁금해서 검색을 하다가(머그컵은 안보이더라구요!), 그 시기의 트럼프 대통령의 막말 사건을 읽게 되었다.
검색하다가 읽은 기사를 옮겨 보자면(출처를 밝히자니, 어디서 읽었는지 찾지를 못하겠다.ㅠ)
내스티란 단어는 글의 도입부에 적은 것처럼 떼쓰는 아이나 불쾌한 상황, 형편없는 물건등에 쓰이는 부정적인 형용사다.
‘부인‘이나 ‘엄마‘ 등 여성에게 쓸 경우에는 ‘주제 넘게 나댄다.‘ 또는 ‘되바라졌다‘, ‘짜증나게 군다‘라는 늬앙스를 풍긴다. 반면 같은 단어라도 남성에게 쓰면, ‘만만치 않다.‘, ‘터프하다‘라는 긍정적인 뜻으로 변화된다고 한다.
트럼프는 2016 년 TV 대선 토론회에 상대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출연하여, 마침 힐러리 클린턴이 사회보장정책의 답변을 하고 있을 때, 못마땅하여 ‘내스티 우먼‘이라고 내뱉었다고 한다.
백인 남성들이 엘리트 여성에 대한 열등감과 거부감을 이 단어로 표현하여 지지층의 호응을 얻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워런 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서 ˝바로 그 못된 여자들(nasty women)은 강하고, 똑똑하다. 그 못된(nasty) 한 표를 던져 트럼프를 몰아낼 것이다.˝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sns에서 많은 여성, 스타들까지 나서서 ˝나는 못된 여성이다.(I am a nasty woman.)˝란 해시태그를 달며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했다고 한다.
˝내가 바로 그 못된 여성이다.˝
˝못된 여성이 그런 의미라면 기꺼이 못된 여성이 되겠다.˝
는 말이 유행하였고, 클린턴 후보의 선거 구호가 되었다고 한다.

내스티란 단어는 젠더화된 모욕적인 단어였지만, 위의 일화를 통해 좋은 뜻의 단어로 변모하는 과정도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읽혔다. 물론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긍정적인 이미지로 탈바꿈하기까지는 모두가 연대하여 저항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언어가 사람의 영혼을 지배한다고 한다.
지배하는 언어에 지배당하지 않고, 계속적인 주체성을 가지게 만드는 일들이 이 책에서 계속 이야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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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3-11 07: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책나무님 시작하셨군요!! 그 부분 저는 검색까지 안 해 봤는데 그런 사연이.. 흥미롭고 열받는구만요😡

책읽는나무 2023-03-11 10:33   좋아요 1 | URL
시작은 좀 한 것 같은데 요즘은 책 읽기 진도가 잘 안 빠지네요?ㅜㅜ
지난 달부터 책 읽기 권태기에 빠진 듯 합니다.
그냥 즐기면서 천천히 읽기로 맘 먹고, 이 책, 저 책 천천히 읽고 있어요.
천천히 읽으니 검색도 해 볼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안그랬음 그냥 읽고 넘겼을 문장들인데 말입니다^^
저는 쓰면서도 이런 이야기 나만 모르고 혹시 다 알고 있는 내용인 거 아닐까? 그러면서 쓸까, 말까 고민하며 썼네요.
괭님의 댓글을 읽으며, 화난 얼굴을 보니, 음...쓰길 잘했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ㅋㅋㅋ

주말 잘 보내셔요♡